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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박세리, 유태인 열차, 전쟁

새해에는 평화로 가는 좋은 소식이 있기를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7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얼마 전에 가족여행으로 처음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해 저녁 식사를 하는 옆자리에 박세리 선수 일행이 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인사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방송국의 기자였지만 대한민국의 골프사를 바꾼 세계적인 영웅인 박세리 선수를 가깝게 본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굳이 내 소개를 하며 인사를 했고, 이에 박세리 선수는 감사하게도 (죄송, 약간 취기가 오른) 필자는 물론 필자의 손주들과 기념사진도 찍어주는 호의를 베풀어주었다. 박세리 선수와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다. 30여 년의 기자생활 중에 유일하게 골프 취재, 그것도 박세리 선수가 우승한 대회를 취재하였으니 바로 2001년 8월 초 런던에서 열린 브리티시 오픈이었고 그 때 필자는 런던특파원으로 있었다.

 

 

당시 특파원은 골프 등 스포츠는 보통 취재대상이 아니어서 그 주에 나는 여름휴가를 간다고 일요일에 출발하는 동유럽 여행팀에 돈도 다 낸 상태였다. 그런데 막판에, 그것도 토요일에야 취재지시가 내려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대회 3일째에 박세리 김미현 두 한국 선수가 1, 2위를 다투고 있어 취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휴가여행 일정은 아침 일찍 폴란드로 출발하는 것이었는데 필자는 취재를 위해 부득불 그날 저녁에 베를린에서 만나자고 표를 돌리고 내 짐을 가족편에 먼저 보낸 다음 골프장으로 가서 취재에 임했는데, 일이 여기에서 아주 난감하게 꼬여버렸다. ​

 

필자는 여유있게 골프장으로 가서 박세리 선수의 모친과 인사도 나누면서 박세리 선수의 우승 장면을 취재하고 당시 런던에 같이 주재하던 MBC 이장석 특파원의 전폭협조(보통 상대사와 경쟁 관계기 때문에 이런 경우 잘 도와주지 않지만, 필자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선뜻 협조해주셨다)를 받아 현장에서의 온마이크 영상과 녹음은 MBC와 합동으로, 우승 소식을 담은 원고는 공항에 가서 필자가 팩스로 보냄으로서 일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는 베를린행 비행기를 타려고 우리 여행가이드에게 연락하니 우리 일행의 비행기가 연발되어 저녁때나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출발이 늦어짐에 따라 베를린 일정을 취소하고 내일 오후에 폴란드 크라쿠프로 가니 그리로 오란다.

 

아차! 내 짐을 가족들에 보내면서 충전기를 꺼내지 않았구나. 배터리가 떨어지면 큰일이다. 베를린 공항에서 비싼 택시를 잡아 가이드가 잡아놓은 호텔에서 혼자 자면서 내일 어딘지도 모르는 크라쿠프에 어떻게 갈지 걱정이 태산이다. 자정이 다 되어 베를린의 KBS특파원 후배에게 전화했더니 다른 데 가 있단다. 난감해서 다시 상대사인 MBC 베를린 손관승 특파원에게 밤늦게 전화하니 내일 아침 9시 25분에 동베를린역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있단다. 이튿날 동베를린역에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한국인이 한 분이 그쪽으로 간다며 태워주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그편에 동베를린역에 내려 크라쿠프행 표를 끊을 수 있었다.

 

 

간신히 아침 9시 25분에 기차를 탔는데, 도착예정 시간은 저녁 6시 30분쯤, 9시간을 나 혼자서 가야 한다. 주머니에 독일 돈도 별로 없어 점심에 빵 하나 사니 돈이 다 떨어진다. 배터리는 간당간당. 오로지 휴대전화 하나가 나의 생명줄이다. 그걸 의지하며 어딘지도 모르는 크라쿠프를 향해서 기차를 타고 간다. 가는 길은 끝없는 평원, 산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폴란드를 지나 러시아까지가 사실상의 평원이다. 옛 동독지역을 지날 때는 집들이 단출하고 서독일 지역과는 달리 조금 초라해 보인다. 아무도 얘기할 사람이 없이 혼자서 9시간을 가야 하는 여정, 특별히 읽을 책도 없이 멍한 가운데 문득 생각이 났다.​

 

"독일이 유태인들을 학살한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크라쿠프에 가기 전에 있다고 하던데(아우슈비츠는 크라쿠프 서쪽 70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바로 이 철도 위에서 기차에 실려 한 번에 수백, 수천 명 유태인이 죽음의 길로 실려 간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 철도 위에는 유태인들의 원한이 서려 있고, 이 상공에는 유태인들의 원혼이 돌고 있을 지 모를 일이 아닌가?"

 

 

그때 영국 신문에서 우연히 본 아주 조그만 기사, 오스카 쉰들러의 부인인 에밀리에가 이제 조국에서 생을 정리하고 싶어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는 기사가 함께 생각이 났다. 유태인 천 명 이상을 죽음의 길에서 구해낸 오스카 쉰들러, 그 사람의 부인은 남편의 명성에 가려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했었다는 구절도 생각이 났다. (실제로 힘들게 돈을 모은 것은 부인이고 남편은 그 돈으로 독일인들에게 술을 사고 또 바람을 많이 피웠다는 소식이 나중에 알려지게 되었다.) ​

 

아무튼 그 철길을 달리며 유태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인간의 욕심과 광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전쟁으로 수많은 생명과 삶이 파괴되었다. 보통인들의 삶은 여지없이 파괴된다.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데도 국가권력은 그 모든 것을 명령 하나로 빼앗는다. 거기에 인간의 광기, 인종의 편견이 더욱 작용한다.

 

그런 역사에서의 희생자들이 떠올랐다. 이번 여행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멋진 관광지를 보는 것보다도 이렇게 혼자서라도 유태인들이 죽음의 길로 실려 간 철길 위를 혼자서 달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6시 반 경에 크라쿠프역에 도착해서 우리 여행단, 우리 가족과 간신히 합류했다. ​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박세리 선수를 보면서 벌써 21년 전의 이 혼자서 여행한 기억이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박세리 선수 취재를 하려다가 우리 가족들과 사실상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까지 긴박하고 어려운 시간을 가졌지만, 그것이 독일에서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한 그 많은 유태인의 운명과 전쟁의 광기와 그 아픔을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폴란드 평원에서 이어지는 우크라이나에서 지금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 전쟁은 전쟁을 일으킨 푸틴의 뜻대로 되지 않고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러시아 점령지역에서 지루한 참호전이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한다. 참호전이라면 1차 대전부터 수많은 젊은 청년들의 목숨이 화약 속에 사라지는 곳이 아니던가? 6.25 전쟁 때 철의 삼각지대에서 우리도 작은 산봉우리 하나를 놓고 밤낮 동안 뺏고 빼앗기는 소모전으로 수없는 청년들이 양쪽에서 죽어 나갔는데, 지금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이 바로 그렇게 땅 한 평 도시 한 귀퉁이를 놓고 서로 포탄을 쏘고 소총알을 쏟아부으면서 지도자들 대신에 목숨을 잃고 팔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

 

우리는 전쟁이라는 것이 결국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수십, 수백만의 중국인들을 곳곳에서 학살한 사실이 있음을 안다. 1939년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에 불가침 조약을 맺은 뒤에 독일은 폴란드를 점령하고 초기 3개월 동안 6만 1,000여 명에 이르는 폴란드 정치인, 장교, 지식인, 성직자 등을 처형했다. 335만 명에 이르던 유대계 폴란드인들은 90% 가까이 학살당했다.

 

소련도 1940년에 자국에 편입한 폴란드 땅에서 군인 장교, 지식인 등 2만 2,000여 명을 처형하는 카틴 학살 사건을 저질렀다. 전쟁 막바지에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바르샤바에서 시민들이 무장저항을 하자 독일군은 60여 일 동안 바르샤바를 말 그대로 초토화하고 저항군 1만 6,000여 명과 민간인 20여만 명을 죽였다. 학살만이 아니라 전투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그들의 삶의 터전이 날아가고, 가족이 흩어지고, 삶이 비참한 바닥으로 떨어졌는지 일일이 집계가 안 된다.

 

그런 전쟁이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10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어서 우크라이나는 폐허로 변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아무 상관 없는 전쟁에 동원돼 서로를 죽이고 있다. 그리고 원수가 되어 복수를 외친다. 그런 전쟁 이제 멈춰야 하지 않겠는가? ​

 

어느 한쪽이 아무 피해도 없이 이길 수 있는 전쟁은 현대에는 없다는 것을 다시 배운다. 베트남을 지원하러 간 미국이 그랬고 아프가니스탄에 진주했던 소련군이 그랬고 금방 끝낼 것이라며 호기롭게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군의 무덤이 되고 있고 동시에 우크라이나 청년과 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수세에 몰린 푸틴은 부족한 군병력을 채우기 위해 징집연령을 확대하면서 여차하면 전술핵이라고 쓰겠다며 휴전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 만큼 이제 미국도 서유럽도 러시아도 더 이상의 소모전을 끝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최후의 수단을 쓰게 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현실에서 최선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휴전회담을 하면 또 얼마나 끌지 모르지만 무조건 항복을 받는 전쟁은 있을 수 없으므로 서로 져주어야 한다. 사람들에게는 전쟁보다는 불완전하나마 평화가 훨씬 소중하다.

 

박세리 선수를 만나면서 엉뚱하게 전쟁이야기가 되살아나서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유태인들과 전쟁의 참화를 다시 생각하게 된 만큼 이제 우크라이나의 야망과 푸틴의 욕심을 서로 타협하는 선에서 시급히 전쟁이 멈춰졌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커진다. 전쟁으로 한 해가 저문다. 전쟁은 총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로 하는 것이라고 박세리 선수가 보여주지 않았던가? 새해에는 평화로 가는 좋은 소식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