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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우리 동네도 맨발 열풍이......

누가 보든 말든 묵묵히 길을 쓸어주는 마음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0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침마다 부부 함께 산길을 돌아내려 오는 산책길에 최근 달라진 것이 있다. 그것은 맨발로 이 길을 도는 분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주로 여성분들이고 남자도 있기는 한데 여름철로 접어들면서 하얀 맨발로 조심스레 길을 걷는 분들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우리 부부가 걷는 산책길은 북한산 둘레길 8구간 가운데서 은평 뉴타운 4단지 일명 폭포동아파트의 뒷길을 끼고 돌다가 안쪽 경사진 길로 내려오는 코스로 걷는 시간이 45분 안팎이라 아침 운동으로는 적절한 거리라 하겠지만 우리만 해도 신발을 신고 다닌다. 그런데 맨발로 올라오고 내려가는 분들이 점점 많아진다.

 

 

 

우리는 선림사 입구 쪽에서 먼저 산쪽 경사진 길로 올라갔다가 둘레길을 타고 내려오는 식으로 걷는데 우리 코스의 정상 부분에는 평평한 구간이 있다. 거기는 가는 입자의 흙이 많아 걷기에는 제법 안성맞춤이다. 또 경사가 급한 곳은 계단이 있고 계단에는 고무깔판도 있어 걸을 수 있다. 그렇지만 험한 구간도 많은데 여성분들이 용케도 이런 데를 맨발로 다니신다. 그것은 한 일간신문 스포츠 기자가 2년 전인가 처음 맨발걷기의 효과를 말하면서 말기 암도 고쳤다는 사례를 제시한 데 따른 현상일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정도였는데 어느새 점점 발을 벗는 분들이 많아지고 그리 험하지 않은 산길은 신발을 들고 맨발로 다니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제는 서울 시내 평지의 공원에 가면 동호인들이 그룹을 지어와서 같이 걷기도 한다. 언론들도 이제는 자주 이런 소식을 전하며 이를 전국적인 맨발 열풍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러한 열풍이 서울 서북쪽 북한산 자락을 낀 이 산길에도 불어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 맨발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분은 40대로 보이는 남자분이시다. 이분이 아침에 맨발로 우리가 다니는 길을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어놓는 것이다. 작은 자갈들은, 모가 나게 깨어진 것들이 많아 자칫 발을 상하게 할 우려가 있는데 아침마다 자주 이분이 빗질로 치워주신다. 이제는 자주 보니까 우리 부부는 가벼운 목례와 수고하신다는 인삿말을 꼭 드리는데 이분이 이렇게 길을 말끔하게 쓸어놓으시니 이곳을 도전하는 맨발족들에게 얼마나 큰 공덕이 되겠는가?

 

 

사실 지난봄에만 해도 이렇게 맨발로 걸으시는 분이 많지는 않았는데 그때도 길을 쓸어놓은 것을 가끔 볼 수가 있었다.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었다가 지는 때였다. 노란 꽃잎들이 간밤의 바람으로 지천으로 길에 떨어져 덮은 가운데 가운데에 곱게 길이 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신지 궁금했는데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그분을 직접 보게 되고 그분도 맨발로 이 길을 쓸어주시니, 이를 보는 다른 분들에게 두꺼운 신발을 벗어들고 도전하는 용기를 준 것이리라.

 

 

 

그러나 역시 산길은 산길인 것이, 지난번 큰비가 온 뒤에 흙이 파내려 가고 돌이나 나뭇등걸이 드러나는 등 편안히 맨발로 걷기가 쉬운 길은 아니다. 필자는 지난번 문경 새재 등 걷기 좋은 길을 가면서 맨발로 도전한 바 있지만 아직 이 우리집 뒷길은 맨발로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비가 그친 그다음 날 우리 집 뒤 산책로를 가보면 어김없이 그분이 와서 길을 쓸어주어 말끔한 길이 된다. 그 길을 나이 든 분만이 아니라 젊은 여성들도 하얀 발을 내보이며 걷는 모습이다.

 

 

지금 이미 열풍이 불고 있는 맨발걷기를 굳이 언급하는 것은, 맨발걷기의 장점을 부각해 더 많은 분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아침마다 사람 다니는 길을 묵묵히 쓸어주시는 그 아저씨가 고마워서다.

 

전국의 절에 가도 아침 일찍 경내를 깨끗이 쓸어주시는 스님들이 있어서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지고 착해지는 느낌인데,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아무 이익도 생각하지 않고 하루에 한두 시간 이런 봉사를 해주시니 그것이야말로 자비, 사랑, 봉사, 배려 등 갖가지 좋은 말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요즘처럼 서로 자기 이익만을 챙기며 눈에 핏발을 세우고 심지어는 싸움에 범죄까지 저지르는 세상 풍조에서 볼 때 이거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라면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 가장 아름답고 보람이 있다, 보시하면 복이 몇 배로 온다는 등등 많은 가르침을 받고도 이를 실천하지 않는 게 습관처럼 되어버렸는데, 자기 집 앞도 아니고 산길에서 누가 보든 말든 묵묵히 자기 앞길을 쓸어주어 남들이 발을 다치지 않고 길을 걷게 해주는 그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이웃사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그러기에 아침마다 걷는 이 산책길은 참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내 몸이 운동이 되는 것도 그렇지만 우리 이웃의 이런 귀하고 소중한 마음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을 위해 몸을 쓰시는 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100세 시대를 가장 건강하게 준비하고 사시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열어주신 이 길은 늘 싱그럽고 활기차고 상쾌하다.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른 지역에서는 평지에 맨발 걷는 곳을 새로 조성해 시민들이 이용하게 한다는 데, 내가 사는 은평구에서도 지금 이 북한산 둘레길 자체를 그렇게 조성하는 것은 국립공원의 자연형질을 훼손하는 것이 되어 안되는 것이고, 구파발역에서 선림사까지 이어지는 구파발천변에는 맨발 걷기길을 조성해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