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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사라져 가며, 이것이야말로 진리다

[산사에서 띄우는 편지 13] 만남의 법칙 2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요즘 트로트가 대중 속에 깊이 파고들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트로트를 많이 애창하고 있다. 그 노래 가운데 가수 노사연의 ‘만남’의 노래 한 구절을 음미해 보자.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 것은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아래 줄임)

 

만남이란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지만 모두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게다가 또 헤어지는 것조차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하기야 인연 따라 만났다 인연 따라 헤어지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냐만, 누구나 거역할 수 없는 법칙이기에 운명으로 돌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컨대 만남과 헤어짐 그 자체는 뜬구름 같아서 만났지만 언제 어떻게 헤어질지 모르는 묘연한 만남의 관계를 두고 그저 “정처 없이 꿈속을 걸어가는 나그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단지 인간 삶의 문제라기보다 어차피 만물의 생존 법칙에 해당하며, 자연의 순환이기 때문에 만남의 그 자체를 크게 부각하여 ‘천생연분(天生緣分)’이니 ‘지란지교(芝蘭之交)‘란 말이 어쩌면 모순일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서산대사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미혹을 일깨우고 있다.

 

우리들은 어디에서 왔다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뜬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태어나고 죽어가는 생사의 오고 감도 역시 이와 같도다.

生從何處來(생종하처래) 死向何處去(사향하처거)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세상 모든 것들은 구름처럼 만나 얽혀져 공존하다가 어느 때 홀연히 사라져가는 것들이 참모습이고 극히 자연스럽다고 할 일이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요, 또한 인간들의 분별심이며 감성과 욕망이 지어낸 드라마 같은 허상과 허구라고 설명한다.

 

한편 이러한 만남의 현상을 ‘인드라망(因陀羅網 : 많은 그물코에 구슬이 달려 있어 구슬과 구슬이 서로 비추고, 다른 모든 구슬에 거듭 비치며 그 빛이 끝없이 펼쳐지는 현상)’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인드라망이란 공존의 법칙을 말하는 것인데, 모든 존재는 독자성을 떠나 홀로 산다는 개념을 넘어, 마땅히 서로 만남으로 얽혀 살 수밖에 없다는 극히 당연한 사실을 입증해 보이는 자연현상이라 하겠다.

 

이는 비단 인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다 같이 함께 얽혀 각각의 본색과 개성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이건 동물이건, 유정 무정할 것 없이 모두 다 고유 특성을 가지고 자기들만의 세계를 추구하며 산다고 하겠지만, 수많은 존재가 빛이 되어 서로서로 비추며 조화롭게 펼쳐지는 실루엣 같은 어울림 도생(圖生)이라 하겠다.

 

그런데도 인간 사회는 독불장군처럼 자기 자신만을 고집하고 사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타의 도움 없이 홀로 잘 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자일수록 주위의 만남과 인적 지원이 끊기면 얼마 못 가 여지없이 고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켜보며 산다.

 

그 때문에 생존의 법칙 속에는 보이지 않은 숨결 하나라도, 물 한 방울, 꽃 한 송이라도 거역할 수 없는 고귀한 인연이자 나의 생명을 지켜주는 에너지이기에 너무도 감사하고 경이로운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인드라망 세계를 ‘자연의 법칙’이라 말하고, 진여의 세계(眞如世界 : 만유 제법의 본체를 진여라 하며, 우주 만유의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그대로 모습을 말함)라고도 한다. 모든 것이 하나로 시작되어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를 이룬다고도 한다. 중중무진법계는 수많은 만남으로 형성된 세계를 말한다. 인간이 모든 것을 지배한 것처럼 말들을 하는데, 모든 만물은 평등한 선상에서 차별 없는 동등한 가치관으로 서로 얽혀〔만남〕 세상을 이루고 산다.

 

이러한 가운데 인간이 ‘세상을 산다’라는 자체 역시, 여러 만남을 통하여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자기의 뜻을 펼쳐가는 가운데 자기 뜻과 목적과 행복을 성취하며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인과법칙(因果法則 : 모든 일이나 사물은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이고, 원인이 없이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칙)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인과법칙이라고 하기보다는 ‘자연의 법칙’이 더 근원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의 법칙이란, 물리적으로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기후, 토양, 온도, 빛, 물, 바람 할 것 없이 생물들이 존재할 수 있는 제반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생존법칙에 따라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법칙이라 하겠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의 순환 속에서 인간도 예외 없이 수없는 생멸을 반복하고 있는데 필연적이라 할 수 있는 ‘인과의 법칙’과 ‘만남의 법칙’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세계를 일컬어 ‘진여의 세계’라고 말한다.

 

만남이란 모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근원이며 삶의 원동력이다.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본능적 행위이며 모든 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매개체이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명분은 서로 만남의 관계 속에서 생긴다. 다수 만남의 공동체 속에서 공유하며 가치관을 확립하고 목적을 성취하는 모든 행위를 일축하여 “산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산다는 가치관에 대해서 일장춘몽(一場春夢)이나 남가일몽(南柯一夢), 삼일천하(三一天下), 한단지몽(邯鄲之夢)이라고 일축하고 있는데,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꽃밭을 나르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속에서 “지금 내가 나비로 변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것일까?.”라는 말한다. 현실과 꿈, 인간과 자연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또한 변화무쌍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구분되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하나의 큰 흐름 안에서 변화하고 상호 작용한다고 하였고, 모든 존재가 서로 만남으로 얽히고설킨 가운데 생존한다는 것을 인드라법칙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삶을 꿈이라 하기엔 사실 모호하다. 철학적 분석을 통하여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온전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 운운하기에도 망설여진다.

 

《금강경(金剛經)》에서는 「일체 유위법은 꿈ㆍ환영ㆍ물거품ㆍ그림자와 같고, 이슬 같고, 또한 번개 같다. :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라고 하였으니, 꿈과 물거품과 같은 현실 속에서 내 삶을 어떻게 가치성을 높이고 애정을 가지고 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묘연해질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제가 오늘이 아니고 오늘이 내일이 될 수 없다.

 

모든 존재도 바로 이 시간이 흘러가면 변하여 흘러가는 구름처럼 지금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보고, 듣고, 맛보고, 기쁨과 슬픔을 뚜렷하게 느끼고 있으며 현란한 삶에 취해있다. 시시각각 부와 권력과 쾌락에 이끌려 가고 있다. 이것만큼은 사실이다. 살아있다는 증거며 그리고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며 소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꿈이나 허상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충실하고 여법하게 진실성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진실성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멸(生滅)의 변천과 삼세(과거ㆍ현재ㆍ미래)를 통해 이어지는 생성과정과 생존의 값어치에 대해서 모르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역사적으로 밝혀진 다양한 존재들의 생물학적 근거와 생물들의 진화와 변천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여기에서 생물의 생멸 과정을 살펴보면,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생물의 생성 형태를 구류중생(九類衆生 : 과거 생에 지은 선악의 행위에 따라 금생에 몸을 받을 때 아홉 가지의 형태로 태어나게 되는 중생의 모습)으로 구분하고 있다.

 

구류중생이란, ① 태로 태어난 태생(胎生). ② 알로 태어난 난생(卵生). ③ 습한 곳에서 태어난 습생(濕生). ④ 변화하거나 스스로 업력에 의하여 갑자기 화성(化成)하는 화생(化生). ⑤ 빛이 있어 태어난 유색(有色). ⑥ 빛이 없이 태어난 무색(無色). ⑦ 생각이 있어 태어난 유상(有想). ⑧ 생각이 없이 태어난 무상(無想). ⑨ 생각이 있지도, 없지도 않게 태어난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이라 말한다.

 

그 가운데 사람은 태생(胎生)으로, 씨앗이 어미의 모태에서 자라 태어난다. 새로 태어나는 것도 씨앗이 그저 원인 없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만남이 근원이다. 통상적으로 남성의 정자(씨앗)가 여성의 난자에 붙어 임신하게 되고, 열 달 뒤면 여성의 몸속에서 자란 아기가 몸 밖으로 나오게 되면 한 사람이 태어났다고 한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러고는 여성이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성은 어떠한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일까? 아니다 남성이 여성의 밭에 씨를 뿌렸기 때문에 아기가 생겨난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명심보감(明心寶鑑)》 효행편(孝行篇)에 이렇게 쓰여 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애달프고 애달프다.

    우리 부모님 날 나으시고 기르시느라 고생하셨네.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으려 하니 넓고 높은 하늘처럼 끝이 없어라.

    父兮生我(부혜생아) 母兮鞠我(모혜국아)

    哀哀父母(애애부모) 生我劬勞(생아구로)

    欲報深恩(欲報之德) 昊天罔極(호천망극)”

 

이 글처럼 우리는 아버지가 어머니 밭에다 씨를 뿌린 것이 분명하고, 어머니 밭에서 씨가 움터 싹이 트여 생명의 나무로 자란 것이 분명하다 하여 공히 엄마와 아빠의 피가 섞인 2차 공동 생명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기독교’ 구약 성경 <창세기 1장 2절>의 천지 창조에서는 구류중생 논리를 떠나 여호와가 셋째 날에 진흙을 반죽하여 인간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여섯째 날을 통해 낮에는 해, 밤에는 달과 별을 창조하였고, 하늘에는 새, 바다에는 물고기, 땅에는 짐승과 사람을 창조하였다.”라고 하여 모든 생명은 부모(암컷, 수컷)가 아니라 여호와가 창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와 반면 중국 서진시대 곽상은은 현학가로 세상 만물의 생성에 대한 철학에 두 개의 독특한 명사(名辭)가 있다 하여 독화(獨化)와 현명(玄冥)을 말하였다. 이를 살펴보면,

 

「독화설은 두 가지 방면의 뜻을 포함한다. 하나는 천지만물 생성 변화는 지극히 자연적인 것으로 그 어떤 조물주도 없으며,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에서는 종교적 신학도 없다고 부정했다. 다른 하나의 뜻은 모든 천지만물의 생성화는 서로 관계없이 각자 독립적으로 홀연히 출연한다. 한편 천지만물 생성 변화는 어떤 원인과 결과론적 인과관계로 이루어지지만, 개체 사물이 모두 독립된 존재로써 무명자생(無各自生) 각각 스스로 생멸(生滅)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불교의 연기(緣起)론에서는 그와 달리, 서로 간의 조건성, 의존설, 인과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 곧 인(因: 직접적 원인)과 연(緣 : 간접적 원인)에 의지하여 생겨남을 말하는데, 통상적으로 인연에 따라 생겨남을 말한다. 이는 현상계(現象界)의 생성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 모든 존재는 반드시 그것이 생겨날 원인[因]과 조건[緣] 아래서 연기의 법칙에 따라 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만물의 생성 과정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따지다 보면 결코 생(生)이란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앞서 기술한 아기의 정체성만 들어놓고 보더라도 ‘아버지의 아기냐?, 어머니의 아기냐?’를 논쟁하기보다 아버지 고환(睾丸) 속에 정자(精子)는 어디서 왔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 때문에 태어난다는 것,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 모두 다 어려운 숙제일 따름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살아 있기에 느끼고, 사유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진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모든 것은 사라져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또한 진리이고 진실이라 하겠다.

 

서산에 지는 해, 내일 떠오르는 해는 진실이되, 오늘과 내일, 과거, 현재, 미래는 진실이 아니다. 오늘 만난 사람은 진실이로되 돌아서면 허상 같아서 진실이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