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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40년 만의 호암미술관 소풍

이병철이라는 기업인의 앞선 혜안을 재확인하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5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주말에 호암미술관 공부하러 가는 것 어떠세요?"

 

문화와 예술을 좋아하는 분들의 작은 모임에서 누군가 제안하자 선뜻 좋다고 응답한 것은 아주 오래전에 가 본 호암미술관이 궁금해서였다. 40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나서다.

 

1982년 4월 용인 자연농원의 부지 한쪽에 이 미술관이 완공되어 개관기념으로 소장하고 있는 미술문화재를 공개한다고 했다. 당시까지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당대 최고의 미술품을, 심혈을 기울여 모아왔고 그것을 공개하겠다고 하니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될 때였던 것이다. 그때 당시 KBS는 다른 언론사에 앞서 단독으로 작품들을 촬영하고 해설을 붙인 영상물을 만들어 정규 9시 뉴스 시간에 7분 30초란 시간 동안 내보낸 적이 있다. 그것을 위해 필자가 미리 사흘 동안 현지에 가서 촬영 취재를 했었고 그러한 최고의 수집품 공개에 따른 반향도 컸다.

 

그곳에 간다니 문득 어릴 때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다른 분들도 그랬단다. 나는 개관전 때 받은 명품도록, 40년 동안 이사 때마다 갖고 다니던 도록을 꺼내어 다시 보았다. 신축한 미술관 건물과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각각 겉과 본체 표지로 쓴 것이 새삼스럽다.

 

 

그때는 자연농원도 호암미술관도 한적한 느낌의 시골이었고 회사 차량으로 경부, 영동 고속도로를 거쳐 현장에 갔었는데 이번엔 지하철을 타고 기흥역에서 에버랜드 라인으로 갈아타 경전철로 종점까지 온 다음 다시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 경로우대를 받는 우리들은 서울에서 거기까지 교통비 하나도 안들이고 온 것이니 좋기도 하지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렇거나 말거나 우리는 드디어 호암미술관에 소풍을 온 것이다.

 

 

미술관 터 정문을 통과해 한참을 걷는다. 40년 전 올 때는 거의 허허벌판에 갓 심은 나무들이 그리 크지 않았는데 이제는 울창하게 자라서 하늘을 가리고 서 있다. 시간이라는 존재가 빚은 요술이 아니던가?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었지만 그리 덥지가 않다.

 

 

호수 옆을 타고 박물관의 정원인 희원 본관에 이어지는 긴 길에는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정원 안에는 신라시대의 석탑을 비롯하여 이름 없는 석공들이 다듬은 불상, 벅수, 석등, 물확 등 각종 석조물들이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최근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여성 조경가 정영선 님이 설계한 이 정원은 우리 전통의 특징이라고 하는 ‘차경의 원리’를 바탕으로 옛 지형을 복원하고 석단, 정자, 연못, 담장 등 건축요소를 적절히 배치한 것인데 시원한 나무그늘을 따라 걸으며 보고 즐기기에 이만한 데가 고궁 정원 말고 또 어디 있을까? 이제는 정원이 좋아 미술관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드디어 미술관 본관 건물이다. 전에는 이 건물 앞쪽으로 계단이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계단을 없애고 잔디밭과 못을 만들어 놓았다. 미술관 본관은 불국사의 양식과 창작 동기를 많이 채용한 2층인데 1층에서는 마침 불교미술관련 전시회(지난 일요일 끝나는 일정)가 열리고 있었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라는 제목으로 젠더라는 관점, 곧 여성의 처지에서 동아시아의 불교미술을 바라보는 국제전이었다.

 

 

중국 명나라 때 스님의 가사 한 점이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부터 와 있었는데 가사 전체에 아주 정교한 솜씨로 수많은 부처를 수놓은 것이 그야말로 엄청난 불심(佛心)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또 반가운 것은 14세기 후반 고려시대에 만든 수월관음보살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이게 40년 전 개관전 때 공개가 된 것으로 당시까지 우리나라에는 고려불화가 진품이 거의 없었고 이것은 일본으로부터 구입자를 밝히지 않은 채 사들여 왔다고 당시 소개된 것인데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으로 나라에 기증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가 이번에 빌려온 것일 터인데, 여기서 다시 보니 감회가 일어난다. 더불어 한중일 관음보살도들이 나란히 걸려 각국이 여신들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했는지를 살필 수 있는 불화들, 중국 원ㆍ명ㆍ청시대의 백자 관음보살상들 등도 있었다. 추사 김정희가 쓴 반야심경 친필도 추사의 필획의 힘과 불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생각하게 하는 전시품이었다

 

 

 

되돌아보면 이병철 회장은 간송 전형필 선생 이후 근현대 우리 미술문화재의 으뜸 수집가였고 그것을 아들 이건희 회장도 이어받았다. 이건희 회장의 사후 유족들에 의해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국보 14건과 박수근ㆍ김환기와 모네ㆍ호안미로 등 나라 안팎 작가 미술품을 포함해 총 2만 3,000여점이 우리 사회에 기증됐다. 미술계에 따르면 감정평가 평균액수는 2조 원 가량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값을 매길 수 없는 수집품으로서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건희 기증품 전용미술관이 세워지면 이런 귀중한 보물들이 영구히 우리 국민의 것이 될 것이고 그 출발이 여기 호암미술관이었다.

 

근대 이후 성공한 기업인들이 많지만, 이병철 회장과 삼성가는 적어도 이 점에서는 단연 국민의 칭찬을 받을 자격이 넘친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메디치요, 폴 게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많은 전시품을 차분히 보며 공부도 하고 감동도 하고 나서 정문 쪽으로 나서는데 왼쪽 언덕에 이병철 회장의 묘소가 보인다. 생각해 보면 기업보국을 목표로 해서 가장 주요하게는 반도체를 일으켜 오늘날 우리 국민의 삶을 이만큼 윤택하게 한 사실이 있는데 거기에다 정신적인 역사문화 유산을 잘 모으고 가꾸어 문화적으로도 우리가 자랑할 수 있게 한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없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미술관, 박물관 시대를 맞았다. 곳곳에 박물관 미술관이 지어지고 운영된다. 문화가 풍성해졌다. 그러나 40년 전, 아니 그 보다 훨씬 전에는 공립 박물관도 별로 없었고, 이런 미술품을 모으고 키운 기업인들이 아주 귀할 때에 이쪽 문화의 터전을 일군 것이 아닌가? 40년 만에 다시 찾은 호암미술관에서 이병철이라는 기업인의 앞선 혜안을 재확인하고 우리 문화의 앞날을 다시 생각하는 좋은 소풍날이 되었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