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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025년을 마감하며

병오년 새해, 새로운 시작과 성취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시기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33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2025년은 우리에게 어떤 해였을까요? 동양에서 말하는 을사년의 올해는 1905년의 을사년, 1965년의 을사년과 어떻게 달랐을까? 그것을 일일이 다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고요, 다만 우리는 그 두 을사년만큼이나 붕 떠 있는, 새로운 질서를 위한 갈등과 혼란의 연속, 그 후유증의 지속으로 특정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제대로 된 사람들이 역량을 발휘하고 세상이 질서있게 옳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면 그것을 치세(治世)라고 하고 그 반대로 소인이 판을 치고 군자가 뜻을 행하기 어렵다면 그것을 난세(亂世)라고 한다지요? 그럼 2025년 한국은 치세였을까, 아니면 난세였을까요?

 

 

한 해를 넘기면서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것은 '올해의 사자성어'입니다. 교수들이 선정한 것이라며 교수신문에 발표된 것을 보면 2025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변동불거(變動不居)'였습니다.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뜻이라고 하고요.

 

추천과 결정과정은 별도로 논하고,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양일모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정권 교체, 여야의 극한 대립, 법정 공방, 고위 인사들의 위선과 배신을 목도했다", 또 "대외적으로는 미-중 신냉전, 세계 경제의 혼미, 인공지능(AI) 혁신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였댜"라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올해가 세상이 잠시도 안정되지 않고 변화무쌍한 해였다는 뜻이란 말이랍니다.​

 

이 말은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구절로서 원 구절에는 주류육허(周流六虛)라는 말이 함께 붙어있는데 '육허(六虛)는 우주 공간의 여섯 방향인 위, 아래, 동, 서, 남, 북을 가리키고 이 모든 곳에 두루 흐른다는 뜻이므로, '변동불거 주류육허(變動不居 周流六虛)'는 세상의 이치와 변화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우주 만물 속에서 끊임없이 두루 흐른다는 뜻입니다.

 

나쁜 뜻으로 보면 세상이 안정이 안 되고 마구 불안정했다는 뜻이 되고 좋은 뜻으로 보면 만물의 변화무쌍하기에 고정된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늘 새로운 상황이 발생해 거기에 적응해야 했다는 뜻이 된답니다. 그처럼 올 한 해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에다 값어치 혼란, 인공지능에 의한 사회의 급격한 변화, 이를 따라가기 어려웠던 상황을 대변한다는 것이지요. ​

 

 

이 '올해의 사자성어'는 사자성어 자체를 공모해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몇 분의 교수들에게 의뢰하고, 그렇게 의뢰받은 사자성어를 투표로 정하는 것인데, 사자성어를 찾아내는 분들 가운데 한문학이나 동양사를 전공하신 분들이 역사나 정치 등에서 교훈 되는 말을 찾아내는 것이기에 일반 시민들의 시각에서 보는 의미와는 좀 다른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지요.

 

그것은 올해의 사자성어 2위로 발표된 '하늘의 뜻은 일정하지 않다'라는 뜻의 '천명미상(天命靡常ㆍ26.37%)', 3위로 발표된 '소문을 듣고 학자들이 오리 떼처럼 몰려들어 좌석이 가득했다'는 뜻의 '추지약무(趨之若鶩ㆍ20.76%)' 등이 우리 사회의 현상을 대변하기가 어려운 성어란 느낌이 드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일부에서는 전반적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는 국내 정치에 대한 교수들의 부정적, 비판적 뜻이 후보로 정해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올해의 사자성어'는 1995년부터 일본이 '올해의 한자'를 뽑아 발표하는 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에서는 일본 한자능력검정협회라는 데서 한 해의 세태를 반영하는 한자(漢字)를 전국에서 모집해 가장 응모 수가 많은 한자를 12월 12일 한자의 날에 발표를 하는데, 올해의 한자는 곰을 뜻하는 웅(熊)이 선정되었고 그 까닭은 일본 전국 각지에서 곰 피해가 잇따르고 13명이 숨지는 등 인명피해에다 그것이 경제활동에도 영향을 준 것이 감안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쌀 부족과 가격 폭등을 반영한 '쌀 미'(米)가 간발의 차로 2위에 올라 일본의 세태나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일본의 '올해의 한자' 선정의 영향으로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국가언어자원 연구센터에서 2006년부터 올해의 한자를 '한어돌아보기(漢語盤点)'란 이름으로 발표하고, 대만이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한자문화권에서 해마다 시행하고 있기는 합니다. 아무튼 어떤 형식으로든 글자나 문자, 혹은 성어로 한 해를 정리하는 것은 의미가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현대를 살면서 우리가 정치와 사회가 안정된 치세 속에서 살았다는 생각보다는 참으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왔다는, 곧 난세를 살아왔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겠지요. 1년여 전 계엄 선포라는 정치적 큰 변동에서 비롯되어 탄핵과 선거를 거치고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고, 전 정권의 공과에 대한 비판적 논의와 새로운 정책의 등장 등이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급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지난 한 해의 평가는 각자가 처한 위치와 처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올해를 넘어서 새로운 해를 맞으면서 이러한 큰 변화의 의미를 동양의 지혜라고 할 주역에서 찾아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들여다볼 괘는 64괘 가운데 44번째인 '천풍구'라는 괘입니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은 '푸른 뱀의 해'로 지혜와 변화를 상징하는데, 일부 역학자들은 한국이 겪고 있는 극심한 혼돈과 격변의 시기를 천풍구(天風姤) 괘의 '만남과 변화'의 원리에 따라 풀이합니다.

 

천풍구( ䷫ 天風姤) 괘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 ☰) ) 괘와, 바람을 상징하는 손(巽 ☴) 괘가 아래위로 나란히 있는 괘로서 하늘 아래로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뜻하기에 만남을 의미한다고 역학에서는 봅니다. 다만 그것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 변화의 흐름 속에서의 만남입니다. 송나라의 유명한 성리학자인 이천(伊川) 정이(程頤, 1033~1107) 선생은

 

“하늘 아래에 있는 것은 만물이며 바람이 불어 접촉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만물과 만나는 모습이다. 또 하나의 음효가 처음 아래에서 생기니, 음이 양과 만나는 것이므로, 만남이라고 한 것이다.”(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878쪽) ​

 

라고 이 괘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5개의 양의 효를 1개의 음의 효가 치고 올라오는 형상이므로 새로운 기운이 솟아올라 만드는 형상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이 괘는 새로운 만남, 변화, 유혹, 그리고 음의 기운이 성장하면서 기존 질서에 새로운 에너지가 유입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역 천풍구 괘는 치세와 난세의 전환점ㆍ조짐을 상징하며, 이것은 또 작은 음의 기운을 경계하라는 교훈으로 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주역 천풍 괘가 말하는 그런 흐름이 과연 있었던 것으로 믿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바람을 통해 나라와 사회가 바뀌는 과정이었다고 보고 싶은 것이지요.

 

 

그렇다면 다가오는 새해는 우리에게 어떤 해가 될 것인가? 사실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보기 위해 우리가 올해의 의미를 사자성어로 굳이 정의해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요즈음 우리들의 선생은 인공지능인 것 같습니다. 기존의 지식과 정보, 역학자들의 분석까지도 다 받아서 갖고 있는 큰 두뇌인 만큼 인공지능을 통해 을사년(乙巳年)에서 병오년(丙午年)으로 넘어가는 것이 어떤 전환점인가를 물어보니 이렇게 말합니다.​

 

"을사년은 나무(목)와 불(화)의 기운이 만나는 해로, '목생화(木生火)'의 흐름이 특징입니다. 새로운 시작과 변화, 성장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시기였습니다. 병오년은 불(화)의 기운이 가장 강하게 타오르는 해로, 을사년의 불씨가 병오년에는 세상을 밝히는 불길로 이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을사년에서 병오년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변화의 불씨가 성장의 불꽃으로 이어지는 전환기이기에, 새로운 시작과 성취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의 예측을 믿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새해를 긍정적으로 보고 성장의 희망을 걸어보는 것, 그것이 2025년의 사자성어로 발표된 '변동불거'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정한 한 해의 정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동식 인문탐험가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