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유광남 작가] 새벽의 한기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서릿발처럼 내리 꽂혔다. 만주의 북풍은 예사롭지 않게 대지를 훑었다.
“시리다.”
김충선은 추위를 넘어선 한파에 몸을 도사렸다. 이미 봄이 왔건만 만주의 얼어붙은 벌판은 얼음장 같은 바람을 동반하고 있었다. 이순신과 작별을 고하고 여진을 통일한 누르하치를 만나기 위해서 머나 먼 길을 떠나왔지만 아직도 길 위에 머물러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이로구나.”
김충선은 독백처럼 중얼 거렸지만 그 벌판의 끝에 목적지가 있음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여명이 채 밝기도 전에 서둘러서 야영을 끝내고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이제 거의 건주여진의 누루하치와 상면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시장 끼가 몰려들었다.
“요기를 좀 해야겠군.”
김충선은 봇짐에서 건량을 뒤적였다. 비어 있었다. 간밤에 마지막을 잠결에 씹어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흘간의 행군 끝이었던 탓에 너무도 피곤하여 요기와 잠을 동시에 해결했던 것이다.
‘바스락’
김충선의 촉각이 순간적으로 예민해졌다. 그의 손이 옆구리에 닿는 순간에 이미 매끈한 여인네의 손가락 같은 암기가 잡혀졌다. 손으로 잡았다고 느끼는 동시에 이미 암기는 예리한 파공성을 울리면서 발출되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목표물에 적중 되었다.
“미안하구나.”
김충선은 풀 숲 사이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토끼를 들어올렸다. 암기는 토끼의 귀를 관통하여 나무에 꽂혀 있었다. 김충선은 모닥불을 피우고 토끼의 가죽을 벗겼다. 일본에서 소년병 시절에 훈련 받아 터득한 생존의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적당히 고기가 익어 갈 무렵 모닥불의 연기는 벌판 위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연기에 동반된 토끼의 살타는 냄새는 후각이 무섭게 발달 된 맹견들의 코를 자극했다.
“으르릉...와왕”
개들의 아우성 소리가 새벽바람을 타고 벌판을 가로 질렀다. 김충선은 개의치 않고 토끼 고기를 제대로 굽기 위해서 꿰고 있는 나뭇가지를 돌렸다. 토끼의 익어가는 냄새가 허기진 배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구수했다. 그러나 개떼의 울음소리가 점차 가까이 들려오지 않는가.
“이제 거의 익었는걸.”
김충선이 군침을 삼키면서 토끼 고기를 막 들어 올리려는 순간에 개떼가 몰려들었다. 모두 세 마리였고 이빨을 일제히 드러내며 김충선을 노려보았다. 들개로는 보이지 않았다. 김충선은 그 개들이 군용의 맹견임을 익히 아는 듯 했다.
“너희들에게 나눠주고 싶지만 내가 워낙 시장하다.”
김충선은 여유 있는 자세였다. 맹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는 재차 토끼구이를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에 이번에는 일진의 바람소리와 더불어 인마가 달려들었다. 무장을 하고 있는 병사들이 우르르 등장한 것이다.
“아침 먹기 참 힘들구나.”
김충선이 푸념하고 있을 때에 병사들 속에서 날렵한 인형이 한 명 뛰어 내렸다. 여인이었고, 그녀를 목격한 순간에 김충선은 그만 토끼 구이를 손에서 떨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