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는 오래전 4·1아우내 만세운동의 현장이었던 아우내(병천, 竝川)에 수년 동안 머무르면서 유관순 열사의 기념관과 생가, 열사를 기념하는 공원을 나의 산책 코스로 정하고 거의 날마다 그곳을 거닐었다. 그러면서 나는 유관순 열사의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는 《김구응 열사 평전》(틈새의 시간 출간)을 쓴 전해주 성공회 신부의 말이다. 전해주 신부는 충남 아우내(병천) 성공회교회에서 사제로 지내면서 뜻밖에 ‘4·1아우내 만세운동’의 주역이 유관순 열사(이화학당 유학생, 당시 17살)가 아닌 당시 지역 유지이자 아우내에 첫 근대식 학교인 청신의숙(靑新義塾)을 세우고 더 나아가 성공회에서 운영하던 진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김구응 열사(당시 32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글줄깨나 쓰는 신부'로 알려진 전해주 신부는 아우내 성공회교회에 부임한 뒤, 4년 뒤에 맞이할 성공회교회 100돌을 기념하기 위한 ‘100주년 교회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교회사(敎會史) 집필을 위해 교회에 보관되어 오던 1920년~30년대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인물이 김구응 열사였다. 그 자료는 강애단 신부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성공회와 아우내(병천)의 역사는 깊습니다. 1904년 무렵, 성공회 선교사들이 이곳 아우내에 들어와 맨 먼저 한 일은 교회 설립이 아니라 진명학교 등 학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김구응 선생은 성공회에서 세운 진명학교에서 제자를 키우면서 한편으로는 사재를 털어 기숙형 학교인 청신의숙(淸新義塾)을 세워 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무렵 거국적인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김구응 선생은 제자들과 지역 유지들을 규합하여 4월 1일 아우내장날을 기해 ‘4·1아우내만세운동’을 주도하셨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일제의 총칼에 어머니와 함께 현장에서 순국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이는《김구응열사평전: 4·1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 이하 김구응열사평전》을 쓴 전해주 신부의 이야기다. 어제(4월 1일) 낮 2시, 충남 천안의 성공회 병천교회 시몬관에서는 아우내만세운동 104주년을 맞아 아주 특별한 추념 행사가 열렸다. 그동안 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이면서도 역사에 묻혀있었던 최정철(1854~1919.4.1.순국), 김구응(1887~1919.4.1. 순국) 열사의 삶을 조명하는 책 《김구응열사평전》(틈새와시간 출판)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김구응열사평전》출판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