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고려청자 장물아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905년 오늘(12월 21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초대 통감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는 만주 하얼빈역에서 독립투사 안중근이 쏜 총에 사살되었지요. 이는 대한제국 침탈의 원흉에 대한 응징이었습니다. 이토는 일본의 조선 침략 정책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었는데 그뿐만이 아니라 그는 고려청자 장물아비였다고 합니다. 1906년에 서울에 왔던 미야케라는 일본인이 쓴 회고기 <그때의 기억-고려고분 발굴(도굴)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당시 예술적인 감동으로 고려청자를 모으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대개는 일본으로 보내는 선물감으로 개성 인삼과 함께 사들이는 일이 많았다. 이토 히로부미 통감도 누군가에게 선물할 목적으로 매우 많은 수집을 한 사람이었는데, 한때는 그 수가 수천 점이 넘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런데 고종임금도 이토 히로부미가 고려청자를 보여주자, 이 나라엔 없는 물건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조선사람들은 고려청자를 몰랐습니다. 조선사람들은 조상의 묘에 손을 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기에 일본
-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 2025-12-21 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