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자의 아름다운 초상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938년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 벅은 1963년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소설로 펴냈다. 《살아 있는 갈대(Living Reed)>. 사실과 상상이 잘 버무려져 있다. 주인공 김일한은 진보 개혁 사상을 품고 있다. 그는 1883년 가을 조선 첫 방미사절단(‘보빙사’)의 고문격으로 동행한 바 있어 나라 밖 세상을 본 바 있다. 그의 부친과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보수주의자들이다. 펄 벅은 일한의 부친을 눈앞에 보이듯이 잘 그려낸다.일한이 둘째 아들이 나왔다는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하러 갔을 때의 장면이다. “좋은 소식이다. 좋은 소식이야!” 노인은 소리쳤다. 쭈글쭈글한 주름살이 웃음으로 치켜 올라가고, 얼마 안 되는 회색 수염이 그의 턱 위에서 떨린다. “네, 아이는 어제 아침나절에 났는데, 잘생겼고 튼튼하며 큰 놈보다 약간 작은 정도입니다. 외양은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이의 귀를 생각하고 잠시 멈춘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음 말을 기다리다가 재촉한다. “그 애의 왼쪽 귀가 좀 온전치 못합니다. 사소한 흠입니다만…” “김씨 가문에 흠이란 없느니라. 틀림없이 네 처가인 박씨의 혈통에서 온 것이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