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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무섭다’와 ‘두렵다’

[우리말은 서럽다 26]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토박이말은 우리 겨레가 이 땅에 살아오면서 스스로 만들어 낸 마음의 집이다. 우리 몸에는 우리 겨레의 유전 정보가 들어 있듯이, 토박이말에는 마음 정보가 들어 있다. 몸에 들어 있는 유전 정보는 쉽사리 망가지지 않으나, 말에 들어 있는 마음 정보는 흔들리는 세상에 맡겨 두면 단박에 망가진다.

지난 백 년 동안 우리는 무섭게 흔들리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토박이말을 지키고 가꾸고 가르치지 못했다. 흔들리는 세상을 타고 일본말이 밀려와 짓밟고 미국말이 들어와 휘저어 뒤죽박죽이 되었다.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오며 갈고닦아 마련한 겨레의 마음 정보를 온통 망가뜨린 셈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네 마음, 우리네 느낌과 생각과 뜻과 얼은 토박이말과 함께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것이다.

토박이말 ‘무섭다’와 ‘두렵다’의 쓰임새도 그런 보기의 하나다. 이들은 말할 나위도 없이 모습도 속살도 서로 다른 낱말이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어느 누가 이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고 가려서 쓸 수 있는가?

· 무섭다 : 어떤 대상에 대하여 두려운 느낌이 있고 마음이 불안하다.
· 두렵다 : 어떤 대상을 무서워하여 마음이 불안하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무섭다’를 두려운 것이라 하고, ‘두렵다’를 무서운 것이라 풀이해 놓았다. 참으로 쓸모없고 답답한 풀이다. 국어사전이 이런 꼴이니 어디서 뜻가림을 제대로 배워 올바르게 쓸 수가 있겠는가?

 

   
▲ 아이는 주사맞으면 아프다고 무섭다 하고, 엄마는 검사결과가 암으로 나올꺼봐 두렵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무섭다’나 ‘두렵다’나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드러내는 낱말이다. 무섭다는 느낌과 두렵다는 느낌은 모두 내가 이길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처지에서 일어난다. 내가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거나 이길 수가 있으면 무섭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다. 이런 면에서 ‘무섭다’와 ‘두렵다’는 서로 비슷한 바탕에서 빚어지는 느낌이라 하겠다.

그러나 느낌을 일으키는 힘의 말미가 서로 다르다. ‘무섭다’는 느낌을 일으키는 힘의 말미가 무엇이며 어떠한지를 알고 있을 적에 빚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두렵다’는 느낌을 일으키는 힘의 말미가 무엇이며 어떠한지를 모르고 있을 적에 빚어지는 느낌이다. 이만큼 두 낱말은 뚜렷하게 서로 다른 속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아버지에게 호된 꾸중을 들으면 무섭지만 두렵지는 않고,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화가 나신 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우면 두렵지만 무섭지는 않다. 깜깜한 밤중인데 마당에 무슨 기척이 있어 방문을 열고 나서려고 하면 두렵고, 마당에서 두리번거리다가 마루 밑에서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는 고양이를 보면 무섭다. 호랑이는 언제 어디서 보아도 늘 무섭고, 하느님은 언제 어디서 마음에 떠올려도 늘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