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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자전거 평화기행

미군과 일본이 짓밟은 오키나와에 가다

[오키나와 자전거 평화기행 ⓵]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2015년 12월 1일. 제주도 강정에는 기어이 해군기지가 만들어지고 해병대가 창설됐다. 전국의 많은 시민이 그렇게 반대했음에도 정부는 편법을 써가며 강압적으로 군사기지를 만들어 천혜의 해안 절경이 사라졌다. 하지만 오키나와(沖繩) 나고시(名護市)의 헤노꼬 앞 바다는 강정보다 더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해안을 매립하는 미군기지 공사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보다 밀어붙이기를 훨씬 더 잘하는가 보다.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섬으로써 공통적인 역사적 불행을 겪었다. 오랜 세월 독립국이었던 오키나와는 일본에 점령당해 큰 고통을 겪었고 제주도는 삼별초와 원나라에 점령당해 심한 고통을 겪었다. 오키나와 주민은 오키나와전투 때 같은 나라인 일본군에게 살육을 당했고, 제주도 주민은 해방 후에 4・3사건으로 같은 민족인 한국군에게 살육 당했다. 그것을 기록하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오키나와에는 평화기념공원이 건립되었고 제주도에는 4・3 기념관이 생겼다.

 

   
▲ 자전거 평화기행을 한 오키나와 지도

 

군대에 대한 트라우마가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어 두 섬은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오키나와에는 새로운 미군기지를 또 만들려 하고 제주도에는 미군이 사용할 수도 있는 해군기지를 세우고 있다. 제주도 강정해안의 그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고 평화를 깨트리는 해군기지의 강압적인 건설에 대한 울분이 그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오키나와를 생각나게 했다.

여행에 잘 어울리는 작은자전거

2016년 1월 10일에 평소 함께 다니던 지인들과 함께 오키나와 자전거 평화기행을 갔다. ‘평화’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여행이 늘 그러했듯 관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보다는 평화를 더 사랑하기에 평화를 깨뜨린 곳의 현장을 답사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 작은자전거, 크기가 80x45x37(cm)인 상자면 충분하다.

 

대표적으로 간 곳이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과 일본군과의 오키나와전투 중에 평범한 주민들이 집단으로 자살한 현장인 치비치리 동굴과 거의 모든 오키나와 주민이 반대하는 새롭게 이전할 미군기지 대상지인 헤노꼬, 그리고 오키나와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자들의 이름을 적은 비가 있고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평화기념공원(沖繩平和祈念公園)이다.

이번 여행엔 보통 미니벨로라고 부르는 작은자전거를 가져갔다. 오키나와는 대체적으로 높은 산이 없고 여행기간도 3박 4일로 짧아서이다. 바퀴의 크기는 20인치이고 무게는 8킬로그램 정도로 아주 가벼워 도로주행에 적합한 자전거다. 접을 수 있어 포장하기가 매우 쉬웠다. 근처 마트에서 손쉽게 종이상자를 구했다. 접어서 넣으니 딱 맞았다. 보통 자전거를 가져가려면 분해와 조립이 필요한데 이 과정을 완전히 생략해주니 정말" 편하다.

지나친 기계화는 사회적 손실

아침 4시에 승합차를 전세내 대전에서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갔다. 그동안 공항 시스템이 변했다. 일부 외국처럼 승객이 스스로 좌석이 적힌 탑승권을 기계에서 출력해야 했다. 오로지 기계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만 해야 한다. 마치 나를 훈련시키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며 나누는 정감은 사라졌다. 이 모두가 신자유주의 영향이다.

오로지 투자 대비 자본이익만 추구한다. 여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인간적인 면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 이러한 추세라면 가까운 시일에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사람이 아닌 기계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잉여인간이 되고 나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기계에 서투른 나이 많은 사람들은 꽤 불편하게 생겼다. 기계화되면 결국 많은 노동자는 해고될 것이고 그만큼 운영비는 줄어들겠지. 그러면 공항 이용료도 싸질까? 실업자가 늘어나는 사회적 비용은 왜 감안 안 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유대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왜 손실로 계산하지 않는가?

생각해 보라. 전화를 했을 때 기계음이 들려오는 것 하고 비록 투박할지라도 직접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하고 분명 느낌과 일 처리 시간의 차이가 있지 않은가? 나는 확신한다. 지나치게 기계화가 되면 비록 경영에는 도움이 되어 소수의 주주들에게는 큰 이익을 가져다주겠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끼치는 불편을 모두 고려하면 사회 전체로 보아서는 분명한 큰 손실이라고.

씁쓸한 마음을 느끼며 탑승권을 받아 화물로 붙일 짐을 창구로 가져갔다. 크기가 작아 창구에서 바로 자전거를 싼 짐을 보냈다.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가니 다른 국적항공사처럼 자전거라고 해서 특별히 취급해주겠다며 강제로 추가 운반 요금을 내야 하는 억울함은 없어졌다.

물론 그 국적항공사의 운송약관에는 그런 내용이 공지되어 있다. 하지만 누가 그 약관을 자세히 보는가? 창구 담당자가 묻는다. ‘자전거인가요?’ ‘예’ 끝이다. 특별 수송이 필요한 목록에 포함되어 있으니 추가 요금을 내라는 말이 없다. 늘 이 문제에 부딪쳤는데 기분이 산뜻하다.

아침을 굶든지 기내식을 포기하든지

비행기는 9시 40분 정시에 떠났다. 도착 예정 시간이 11시 55분이다. 비행시간은 불과 두 시간 남짓이다. 그런데 국제선이어서인지 한 시간쯤 지나니 기내식이 나온다. 아침을 준 건가? 아니면 점심을 준 건가? 아침을 먹은 지라 먹을 마음이 별로 나지 않는다. 반쯤 남겼다.

비행기는 정시에 도착했고 입국수속도 금방 마쳤다. 공항 한 구석에서 자전거를 모두 조립하고 자전거 포장에 사용했던 상자들을 함께 모아 하나로 만들어 바로 옆 국내선 공항의 물품보관소에 맡겼다. 1시 반쯤 모든 출발 준비가 끝났다. 기내식을 좀 먹은 덕분에 점심은 다시 안 해도 되어 그만큼 시간과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 나하 공항 출발에 앞서

 

오키나와 본섬의 남북 길이는 약 150킬로미터이고 폭은 좁은 곳이 4킬로미터에서 넓은 곳이 약 28킬로미터인 남북으로 길쭉한 섬이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보다 대만에 더 가깝다. 넓이는 제주도의 약 1.5배 정도이며 인구는 136만 명을 넘고 중심도시인 나하시(那覇市)는 약 33만 명 정도 된다. 연평균 기온은 22도 정도로 겨울임에도 비교적 따뜻한 날씨이다.

나하 공항을 나와 모노레일 역을 바라보고 왼쪽 방향 도로를 이용해 58번 국도에 접어들었다. 공항 주변에는 일본군 자위대 기지가 보인다. 예전 미군기지를 할당받은 것이다. 오늘 들를 곳은 요미탄손(讀谷村)에 있는 치비치리가마이다. 가마는 자연동굴을 뜻한다.

기노완시(宜野灣市)에 들어서니 헤노꼬로 이전한다고 한 미군 후텐마 기지가 보인다. 시 중심에 아주 넓게 자리를 잡고 있으니 시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이전하기로 합의했는데 그 장소가 오키나와 밖이 아니고 또 내부인 북부 헤노꼬 앞바다를 매립해 이전한다니! 그래서 주민의 반대가 끊임이 없다.

오키나와의 평화를 파괴하는 미군기지

일본 전 면적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주둔하고 있어 본토에 비해 500배에 해당하는 기지가 있는 셈이다. 미군기지는 오키나와 본섬의 20%나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적 효과는 2013년 현재 현민 총소득의 5%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미군기지를 제주도로 이전해 전체 섬 면적의 20%를 차지했는데 경제적인 효과가 5%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제주도 도민이 그것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을까?

 

   
▲ 오키나와 한 미군기지, 미군기지 뒤에는 새롭게 이전할 미군기지 대상지인 헤노꼬가 있다.

 

미군에 의한 사고 또한 엄청나다. 1955년 9월에 6살 유아를 성폭행해 살해한 사건인 유미코짱 사건, 미군 제트기 추락사건, 헬기 추락사건 등 수없이 많은 사건이 있다. 또한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면서 내는 폭음은 가히 폭력일 수밖에 없다.

1995년 9월 3명의 미군에 의해 12세 소녀가 납치되고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기화로 시내 중심에 있는 후텐마기지를 이전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조건이 충분한 대체시설이 완성되어 운영 가능할 때란다. 그 대체시설 후보지가 오키나와 밖이 아니고 나고시 헤노꼬 앞바다로 선정된 뒤 지금까지 주민들은 저지투쟁을 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96년 미국과 일본 정부는 헤노꼬 해안을 매립해 길이 2.5km에 폭 730m의 대체기지 건설을 합의했으나 실제로 미국은 1966년부터 헤노꼬 기지 건설을 이미 계획하고 있었다. 2005년 헤노코 이전은 재검토되고 2009년 후텐마기지를 최소한 외부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집권한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도 약속을 실천하지 못하고 실각했다.

2010년 후텐마를 섬 밖으로 이전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고, 2011년 오키나와 지사는 기지를 즉각 반환하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2012년에 미군은 후텐마기지에 사고가 잦은 수직이착륙기를 일본에서 최초로 배치하여 주민의 공분을 샀다. 2015년 11월 오키나와 지사 선거에서는 헤노꼬 신기지 건설을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무소속 오나가 다케시가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