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 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이는 만주의 호랑이로 불리는 김동삼 선생이 마지막 남긴 말입니다. 선생은 1878년 6월 23일, 바로 오늘 안동의 내앞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내앞마을(川前)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사에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한 곳으로 무려 한 마을에서 20명이 넘는 인물이 독립유공자로 포상 받은바 있으며 1910년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한 사람이 150명에 이를 정도로 독립운동의 산실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고장입니다.
김동삼 선생은 1907년 안동에 신식학교인 협동학교를 세워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비밀결사인
신민회와 대동청년단에도 가입하여 활동하는 등 경북과 경남 전체의 계몽운동가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통해 민족정신 함양을 이끌어 갑니다. 그러다가
1910년 8월 국치일을 맞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았지요.
선생은 1911년 1월에
압록강을 건너 남만주 유하현 삼원포에 도착하여 신흥학교(新興學校)를 설립하고 독립운동단체인 경학사(耕學社) 결성에 참가하였음은 물론 1914년에
농장으로 위장한 군대 조직 백서농장(白西農庄)을 건립하였습니다. 한편 선생은 1919년 2월 길림(吉林)에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을 때
이상룡과 더불어 민족대표 39인으로 참가하게 되며 이후 서로군정서 참모장을 맡아 독립군 조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선생은 1931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평양지방법원에서 10년의 중형을 받고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옮겨진 뒤 만 59살이 되던 1937년 4월 13일, 옥중에서 순국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만주의 호랑이 김동삼 선생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