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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매화마을을 돌아나가는 평창강

절개산을 찾아서 4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런 생각을 하며 적벽을 쳐다보는데, 이 교수님이 오른쪽 약간 체구가 작은 절벽 위에서 내려오는 검은 줄이 무엇인지 알겠냐고 물어보신다. 나는 순간 전깃줄인가 하였으나, 이 교수님은 저 절벽 뒤 샘물에서 물을 받아 내리는 것이란다. 그렇지. 아무것도 없는 저 절벽 위에서 전깃줄만 딸랑 내려올 리는 없겠지. 뒤를 돌아보니 가느다란 물 파이프는 어느 집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집 앞에는 평창강 힐링하우스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펜션이구나. 아름다운 매화마을에 펜션이 없을 리가 없지. 이 교수님은 주인장이 자기와 같은 천주교 교인이라고 들어가서 차 한 잔 마시자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당 한쪽에 성모마리아가 합장하면서 우리를 환영하고 있는데, 주인장이 나오면서 이 교수님을 보고 반가워한다. 그러는 사이 주인장 아내는 굳이 차 한 잔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차를 내온다. 차를 마시기 전에 절벽 위에서부터 끌어온 생수를 먼저 마신다. 의외로 연약한 물 파이프에서 생수가 힘차게 나오고 있다. 물맛이 기가 막히다. 차를 마시며 주인장 내외와 담소를 나누는데, 딸이 이대 로스쿨을 나와 서울의 어느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단다. 이 교수님이 내가 로고스 법무법인 대표라고 하니, 자연 대화는 더욱 친밀해진다.

 

주인장 내외에게 차 잘 마셨다고 인사하고 계속 강변 절개길을 걷는다. 가다 보니 또 하나 안내판이 나온다. 밭 가운데 돌무더기가 쌓여있다고 하여 ‘뒤다미’라고 하는데, 쌓여있는 돌무더기는 한강변에서는 최남단에 있는 철기시대 무덤(무기단식 적석총)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설은 임진왜란 때 죽은 왜군의 무덤이라고 하여 이담(왜담)터라고도 한단다.

 

안내판 뒤로 눈을 돌리니 짙은 녹색으로 돌무더기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들에 둘러싸여 약간 봉긋하게 솟아있는 부분이 있는데, 저것을 말함일까? 이왕 안내판을 붙일 것이면 위치도 제대로 안내를 해주어야 하지 않나? 그리고 무기단식 적석총이라면 기단이 없는(無基壇) 돌무지무덤(積石冢)을 말하는 것 같은데, 옆에 한자를 같이 써놓거나 아니면 아예 ‘기단이 없는 돌무지무덤’으로 우리말로 써놓았으면 더 이해하기 쉬울 텐데... 돌무지무덤은 고구려 전통의 무덤이다.

 

송파 석촌동 고분군에도 돌무지무덤이 있는데, 이는 백제 지배층의 무덤이다. 백제 지배층이 고구려에서 남하하였기에 그들도 돌무지무덤을 쓴 것이다. 그러므로 한강변에 보이는 돌무지무덤들은 고구려가 이곳을 지배할 때의 무덤이거나, 백제의 무덤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돌무지무덤은 처음에는 기단이 없는 돌무지무덤에서 점차 기단이 있는 돌무지무덤으로 발전해갔는데, 여기에 있는 돌무지무덤은 한강변에서 볼 수 있는 무기단식 돌무지무덤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무덤이라는 얘기이리라.​

 

그리고 또 하나의 설은 죽은 왜군의 무덤이라고? 그렇다면 응암굴의 관군과 치열하게 싸우다 죽은 왜군을 여기에 묻었다는 것일까? 그래서 왜군의 무덤터라고 하여 왜담터라고 하는 것이고... 그럼 이담터는? 아마 오랑캐 ‘이(夷)’자를 써서 이담터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희생자는 조선인이겠지만 왜군 전사자의 숫자도 꽤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왜군의 주검들은 전국 곳곳에 묻혀 백골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을 철기시대 무덤이니 왜담터니 하지 말고, 발굴하여 나오는 유골을 분석하여 정확한 것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것 밝히려고 돈 들여야 할 만큼 중요한 곳이 아니라서 이 정도 설명으로 그치나? 하긴 어느 게 무덤터인지도 정확히 설명도 해주지 않고 있는데, 그런 것까지 관심을 기울일 것 같지는 않네.

 

강변을 따라가던 길은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이제 강변을 떠나 우리가 출발한 성 필립보 생태마을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정표는 이제부터 가는 길은 오솔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강변길이나 오솔길은 보통명사인데, 이름이 너무 평범하지 않은가? 좀 더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만한 산뜻한 이름을 붙일 수는 없었을까? 이를테면 강변길은 김삿갓의 싯구에서 따와 은삼척(銀三尺)길?

 

오솔길을 가다 보니 누군가 길가에 샌드백을 걸어놓았다. 동네사람이 아침 산책을 하다 여기서 샌드백 좀 두들기다 가는 것인가? 샌드백을 보던 김 교수님의 눈빛이 다시 반짝인다. 그다음은 안 봐도 비디오다. 퍽! 퍽! 퍽! 김 교수님이 샌드백을 향하여 날카로운 잽을 날린다. 샌드백을 보니 나도 오래간만에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대전에서 공군 법무관으로 근무하던 신혼시절에 집에 샌드백을 걸어놓고 열심히 두들겼었지. 그때 3분 동안 샌드백 두들겼는데, 겨우 3분간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그러면서 3분씩 15회를 뛰는 프로권투 선수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었지.

 

오솔길이 끝나고 조그마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혹시 이 길이 아까 우리가 횡단했던 그 도로? 역시 내 예상대로 아까 우리가 횡단하던 곳이 나타난다. 여기서 왼쪽으로 다시 가면 아양정이 나타나고, 계속 가면 또다시 강변길이 나타나겠구나. 우리는 오른쪽으로 아까 걸어 내려왔던 절개길로 다시 올라간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길은 내려가면서 이윽고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내려선다. 시계를 보니 1시간 40분 동안 절개길을 걸었다.

 

 

눈앞에는 다시 성 필리보 마을의 성당이 보인다. 성당 뒷마당에는 많은 장독대가 놓여 있다. 아까는 성당 앞마당에서만 어슬렁거리다가 곧바로 절개길 가는 것에만 신경 쓰느라고 장독대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었다. 그런데 성당 뒷마당에 왠 장독대? 이곳이 생태마을 아니던가? 생태마을에선 유기농 콩을 사서 구수한 된장으로 발효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 필립보 마을의 된장과 청국장이 유명하다고 한다.

 

이제 이 교수님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아까 평창강 힐링하우스 앞에서 바라보던 적벽 위 전망대로 가는 것이다. 적벽 밑 매화마을에서 올려다만 보았으니 그 적벽 위에서 매화마을과 이를 감싸도는 평창강을 감상하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지. 이왕이면 아까 그 적벽 밑에서 가파른 산길을 기어 올라가고 싶었으나, 건너갈 다리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 가파른 곳에 길도 없으니, 그쪽으론 처음부터 올라갈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지.

 

우리는 차를 타고 4km 정도를 한참 빙 돌아 다리를 건넌다. 길은 다리만 건너는 것이 아니라 산으로도 어느 정도 올라간다. 덕분에 산을 오르는 길은 줄어들었다. 차에서 내려 계곡 상단부를 올라간다. 계곡 왼쪽은 어느 정도 높이까지 나무를 다 잘라놓았는데, 한쪽에는 나무 밑둥까지 다 뽑아 쌓아놓았다. 무얼 하려고 이 아까운 숲을 다 없앴지?

 

계곡을 지나 능선 위로 올라가니 왼쪽은 절개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이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 절개산 정상으로 올라가고도 싶다. 이 교수님은 전에 아들과 같이 올랐는데, 정상까지 계속 가파른 오르막이라 고생을 많이 하셨단다. 그래도 정상 가서는 근처 평창 일대를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으려니 했지만, 정상에도 사방이 나무로 가로막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단다. 절개를 지키라고 다른 곳은 기웃거리지 말라는 것이었나?^^ 여기서 정상을 올려다보아도 꽤나 헐떡거리며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마지막에 조금 숨을 가빠하며 나무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앞이 확 트인다. 바로 밑으로 평창강이 흐르고, 바로 그 건너편에 아까 차를 대접받은 평창강 힐링하우스가 보인다. 평창강은 오른편에서 흘러 내려와 매화마을을 감싸 돌아 왼편으로 흘러간다. 이 교수님 말처럼 안동 물도리동(河回)마을을 보는 듯하다. 앞으로는 산들이 펼쳐지는데, 새귀양지산부터 능선이 매화마을까지 뻗어 내려오고 있다. 평창강은 흘러오다가 저 능선에 부딪치면서 뚫고 나갈 데를 찾다가 결국 능선 끝에 와서야 돌아서 가는 것이다.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능선 끝에 넓은 퇴적물을 쌓은 것이고, 매화마을은 바로 그 퇴적지 위에 자리 잡았다. 능선을 따라 눈을 올려다보니 31번 국도가 능선의 잘록한 부분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여기선 잘 안 보이지만 31번 국도가 왼편에서 능선을 뚫고 들어가는 그 부근에 아양정도 있으리라. 그런데 31번 국도가 오른쪽으로 능선을 뚫고 나오는 바로 뒷부분 능선 위로 성 필립보 생태마을의 성당은 잘 보인다. 여기서 이렇게 내려다보니 아까 우리가 저 성당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절개길을 걸었는지 한눈에 다 들어오는구나.

 

31번 국도가 뚫고 나오는 저 능선 오른쪽 부분은 계속하여 평창강이 부딪치며 꺾여나가는 곳인데, 오랜 지질학적 시간이 지나면 평창강도 저 능선을 뚫고 나갈 수 있을까? 능선 속이 굳은 암반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세계 곳곳에서 강물은 그렇게 뚫고 나가는 경우가 많지. 그렇게 되면 말굽처럼 휘어져 흐르던 기존의 물줄기는 호수로 남게 되는 것이고, 그런 호수를 지질학에서는 소뿔처럼 생긴 호수라고 하여 우각호(牛角湖)라고 부른다.

 

전에 비행기를 타고 사하라 사막을 흐르는 나일강 상공과 시베리아 툰드라 지방 상공을 지날 때 계속 나타나는 우각호를 감탄하면서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주 상공을 지날 때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를 지나는 영산강에서 형성된 우각호를 본 기억이 나고...

 

평창강이 매화마을을 돌아나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쉽지만 돌아선다. 돌아서는 내 눈앞에서 절개산이 빙긋이 웃고 있다. 올라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 차에 올라탄다. 이제 모든 일정을 마쳤으니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우린 평창읍네로 들어가 이 교수님이 미리 맛을 보아둔 영미네 추어탕집으로 들어간다.

 

 

식당 앞에 ‘맛보시고 다시 찾는 집’이라고 써 붙여 놓았는데, 과연 자신있게 그렇게 써 붙여 놓을 만한 맛이다. 맛있는 추어탕으로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평창역으로 향한다. 평창역으로 향하는 길도 이 교수님은 우리가 지루하지 않게 뇌운계곡으로 돌아서 간다. 뇌운(雷雲), 우레와 구름이라... 우렁차게 계곡을 진동하는 물소리가 우레와 같고, 또 그런 계곡물로 인하여 물안개가 피어오르니 뇌운계곡이라고 하는 것인가? 시간 여유가 있다면 잠시 내려서 뇌운계곡을 걷고 싶으나, 우리는 차창 밖으로 흐르는 계곡 모습을 눈에 담으며 계곡을 지나간다.

 

평창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의 헤어짐은 늘 아쉬운 법. 우리는 이 교수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인사를 하고 플랫폼으로 내려간다. 이윽고 강릉에서 출발한 KTX 열차가 들어온다. 그리고 정확하게 8시 9분 기차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기차가 출발하며 나는 좌석을 기울여 뒷머리를 붙이고 눈을 감는다. 감은 내 눈 속으로 절개길이 나타난다. 나는 다시금 꿈속의 절개길을 한 발 한 발 되밟아나간다. 강소사여! 그대가 지킨 그 절개가 420여 년이 지나 우리 후손을 그대가 뛰어내린 적벽으로 이끌었구려. 적벽 위 전망대에서 매화마을을 휘감아 도는 평창강과 매화마을을 바라보던 나는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적벽에서 뛰어내린다. 문득 내 눈에 강소사가 얼핏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대로 나도 강소사를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