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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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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의 여승>과 일엽스님 이야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수덕사의 여승’ 노래 가사입니다. 노래를 작사한 김문응씨는 어느 여승을 생각하고 작사한 것일까요? 수덕사가 비구니 절이니 많은 여승이 있었겠지만,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스님으로 일엽스님을 꼽을 수 있습니다. 《김상아의 음악편지》에는 일엽스님에 대한 글도 나옵니다. 일엽스님! 속세에서의 이름은 김원주! 그녀는 참 굴곡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에는 불가에 귀의한 것일까요? 그녀는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23살에 마흔을 넘긴 연희전문교수 이노익과 결혼합니다. 이노익은 막대한 돈을 퍼부어 꽃과 같은 아내를 출판계의 꽃으로 만들었으나,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던 김원주는 이혼하고 일본으로 유학 갑니다. 그런데 동경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동석한 한 청년 오다 세이조가 김원주에게 한눈에 반하고 맙니다. 그러나 세이조는 일본 최고 명문가의 종손인지라 집에서 혼인을 허락해줄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지만 세이조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원주를 계속 만나면서 둘 사이에는 사랑의 결실인 사내아

추억과 낭만의 노래에 빠져들었던 행복한 시간

[서평] 《김상아의 음악편지》, 김상아, 도서출판 얼레빗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매번 도서출판 <얼레빗>에서 책이 나올 때마다, 저에게 책을 보내주던 이윤옥 시인이 책을 하나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내 준 책은 그 동안 보내주던 책과는 다른 종류의 책이네요. 《김상아의 음악편지》 - 오랫동안 디스크쟈키를 하였던 김상아씨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올리고, 그 노래 앞부분에는 그 노래에 얽힌 자신의 추억이나, 그 노래를 들으며 떠오른 느낌이나 단상을 썼습니다. 그리고 노래 뒷부분에는 그 노래나 그 노래의 작곡가, 가수에 관해 쓰고요. 하나하나의 노래가 저의 감성에 들어맞는 노래입니다. 작가가 저랑 같은 세대의 사람이라 그렇겠네요. 저는 ‘김상아’라고 하여 여자분을 떠올렸으나, 사진을 보니 남자네요. 김상아 씨도 저처럼 <우리문화신문>이라는 인터넷 신문(http://www.koya-culture.com/)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김상아 ∙ 김민서의 음악편지⌟, ⌜시 마을 나들이⌟라는 꼭지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지요. 이번 글도 <우리문화신문>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네요. 저는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라는 꼭지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

아는 만큼 보인다, 수원 화성을 걸으며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찾기를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2000년 7월 전근 발령을 받고 수원지방법원으로 왔다. 그때까지 나에게 ‘수원’이라고 하면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딸기 먹으러 왔던 곳이고, 1982년 수원지방검찰청에서 4달 동안 검사 시보를 하던 곳으로 기억되던 곳이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나에게 수원이란 단지 그 정도의 피상적인 도시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2000. 7. 정말 오래간만에 수원으로 다시 오니, 수원은 예전에 내가 기억하던 그런 도시가 아니었다. 우선 법원ㆍ검찰은 화성 성곽을 빠져 나와 원천동으로 옮겨와 있었다. 예전에 내가 검사 시보를 할 때, 이곳은 그냥 한가로운 농촌의 모습이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화성 성곽은 대부분 복원되어 있었고, 그것도 단순히 복원만 된 것이 아니라,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까지 되어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니?” 그 전까지 내 고정관념으로는 문화유산이란 오래된 유산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딸기 먹으러 올 때만 하더라도 수원 화성은 여기 저기 성곽이 허물어 있었지 않은가? 내 기억에는 허물어져 있던 구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18세기 말에 축조한 성곽이, 그것도 현대에 와서 복원한

율곡의 ‘십만양병설’은 조작되었다

《서애연구》 2권을 읽고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해 봄 창간호에 이어 지난해 10월 30일 《서애연구》 2권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서애의 후손인 고교 친구 벽하가 2권을 보내왔습니다. 벽하 덕분에 서애 선생에 대해 많이 공부하게 됩니다. 2권의 첫글은 창간호와 마찬가지로 서애학회 회장인 송복 교수의 논문입니다. 이번 논문의 제목은 <류성용의 중용 리더십>입니다. 송교수님은 서애 일생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단연코 성(誠)이라고 하면서, 이를 박학지(博學之), 심문지(審問之), 신사지(愼思之), 명변지(明辯之), 독행지(篤行之)로 풀이해나갑니다. 이 가운데서 ‘박학지’를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박학지’란 널리 읽고 넓게 배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조선은 성리학 외에 다른 학문은 인정하지 않았고, 특히 주희의 학설만 오로지 숭상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주희의 학설에 이설을 다는 선비는 사문난적(斯文亂賊,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이라는 맹비난을 면치 못하였고, 박세당은 이 때문에 유배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송 교수는 정상적인 학문을 하려면 성리학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도 널리 넓게 두루 섭렵해야 한다는 것이 <중용>의

방랑시인 김삿갓의 가련기시(可憐妓詩)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可憐行色可憐身 가련행색가련신 可憐門前訪可憐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가련차의전가련 可憐能知可憐心 가련능지가련심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도 능히 가련한 이 마음 알아주겠지. 방랑시인 김삿갓이 가련이라는 기생에게 쓴 가련기시(可憐妓詩)라는 시입니다. ‘가련(可憐)’이라는 기생 이름에 빗대기 위하여 연마다 ‘가련(可憐)’을 넣어 시를 지었네요. 역시 김삿갓다운 시입니다. 김삿갓은 함경도를 방랑하다가 함흥에서 가련이라는 기생을 만나 3년간 걸음을 멈추고 아늑한 시간을 보냅니다.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길위에서 떠돌던 김삿갓이 어떻게 한곳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을까요? 그만큼 가련이 김삿갓을 휘어잡았나요? 그런 점도 있겠지만 김삿갓이 가련을 만나기 전에 두 번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련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떤 인연을 느낀 점도 작용하였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금강산 불영암 암자에서 공허스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시로서 김삿갓과 의기투합하여 서로의 시세계를 논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공허는 떠나는 김삿갓에게 함흥에 가거든 가련이라는 기생을 만나보라고 하였

따스한 햇빛이 고개를 내민다

[맛있는 서평] 정진국 시인의 시집 《가을엽서》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김화 정진국 시인의 시집 《가을엽서》가 어느 날 저에게 배달되었습니다. 제가 시집 선물을 많이 받아봤지만, 정진국 시인은 그동안 저에게 시집을 선물한 시인과는 또 다른 분입니다. 정 시인은 예비역 준장입니다. 육군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군문에 있었지요. ‘장군과 시인’이라는 조합이 어딘가 어색한 느낌을 준다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무인이 시를 쓴다고 하니 언뜻 호탕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우국충정의 시가 연상되기도 할 테고요. 그러나 정 시인의 시는 그런 시와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정 시인의 시를 감상하면서 저에게 떠오르는 단어는 ‘풍경시인’입니다. 정 시인은 주위에서 만나는 풍경을, 특히 숲의 풍경을 시로 많이 남겼습니다. 시인의 말을 들어보지요. 어렵고 힘들 때마다 십여 년간 함께 걸어온 숲은 나의 진정한 친구요. 보금자리였음을 인정합니다. 아름다운 숲은 나에게 상큼한 새벽을 열어주기도 하였고, 칠흑 같은 밤길에 등불처럼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지나온 결실을 잘 거두어 새로운 씨앗을 자연에 한 톨 한 톨 심어가는 참된 시인이 될 것입니다. 다시 다가올 가을을 위해... 정 시인은 군문을 떠난 이

미즈호 마을, 광기의 일본인들 한인을 학살

《Colors of Arirang》이 고발한 일본인들의 잔학성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4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일제시대 왜놈들의 우리 민족에 대한 집단적 학살이 많았지요? 3.1 운동 후 국내에서 학살로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제암리 교회 학살사건이네요. 만주에서는 청산리 전투에 대한 보복으로 화룡현 장암동, 연길현 와룡동 등 한인촌을 휩쓸며 독립군도 아닌 일반 백성들을 학살하였고, 연해주에서는 1920년에 블라디보스크의 신한촌과 우수리스크 한인촌 등을 돌며 한인 백성들을 학살하였지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일본군에 의한 조직적 학살이라고 하면, 관동대지진 직후에는 광기의 일반 일본인들이 한인들을 학살하였구요.​ 그런데 《Colors of Arirang(이정면ㆍ류승호ㆍ승률ㆍ서용순, 이지출판》을 보니 사할린에서도 일반 일본인들이 한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그것도 1945. 8. 15.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직후인 8월 20일에서 25일까지 한인들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아리랑 답사대는 그 학살이 일어났던 미즈호 마을도 찾았습니다. 도대체 이들이 왜 한마을에 같이 살던 한인들을 살해하였을까요? 일본인들은 자기 조국이 패망하면서 자기네가 살던 마을이 하루아침에 적국 소련땅이 된 것에 어느 정도 패닉 상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럴 때 한인들이 소련군에

무궁화가 나라꽃이 될 수 없는 까닭

강효백 교수의 《두 얼굴의 무궁화》를 읽고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4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꽃은 무궁화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을 불렀고, 무엇보다도 애국가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가 나오니까요. 그런데 왜 무궁화가 나라꽃[國花]인지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사실 무궁화는 공식적으로 나라꽃으로 지정된 것도 아닙니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가 ‘무궁화가 왜 나라꽃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파고들어 《두 얼굴의 무궁화(국가상징 바로잡기)》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강 교수는 전세계의 나라꽃을 조사해보니, 세계 각국은 나라꽃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5가지 특성을 보유했거나, 보유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⓵ 지리성 : 원산종이거나 자생지가 분포하고 있거나 국토 대부분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한 꽃 ⓶ 민주성 :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적 지정이 아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선정한 꽃 ⓷ 역사성 : 예로부터 그 나라의 신화, 역사, 문학과 예술에 중요한 지위와 역할을 차지한 꽃 ⓸ 접근성 : 국민 대다수가 좋아하고 국민 일상생활에 쉽게 접할 수 있는 꽃 ⓹ 상징성 : 국가와 민족의 특징과 전통을 대표할 수 있는 꽃이거나 세계적으로 희귀한 특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