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3 (토)

  • 맑음동두천 -2.1℃
  • 흐림강릉 4.2℃
  • 맑음서울 1.6℃
  • 구름많음대전 0.1℃
  • 구름조금대구 0.7℃
  • 구름많음울산 5.6℃
  • 구름많음광주 2.9℃
  • 구름많음부산 8.8℃
  • 구름많음고창 -0.5℃
  • 구름많음제주 11.0℃
  • 구름조금강화 2.4℃
  • 구름많음보은 -2.4℃
  • 구름많음금산 -2.3℃
  • 구름많음강진군 2.9℃
  • 구름많음경주시 0.7℃
  • 구름많음거제 5.1℃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전체기사 보기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우리말에 깃든 생물 이야기》, 권오길, 지성사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7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권오길 선생님께서 우리말에 깃든 생물 이야기 1권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 티격태격, 와우각상쟁》, 2권 《소라는 까먹어도 한 바구니, 안 까먹어도 한 바구니》을 한 달 반 간격으로 연이어 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생물 수필집을 내오시지 않았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스무 해 넘게 생물 수필을 써오시는 동안 우리말의 격언이나 잠언, 속담, 고사성어 가운데 생물의 특성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고 놀라셨다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선생님께서는 글을 쓰는 내내 우리말에 녹아 있는 선현들의 해학과 재능, 재치에 숨넘어갈 듯 흥분하여 혼절할 뻔하기도 했다고 하십니다. 으~음~~ 혼절한다... 저도 글을 쓰면서 제가 모르던 것을 발견하고 흥분하여 오르가즘 비슷한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혼절할 뻔까지 하셨군요. 정민 교수도 옛 선인의 글을 읽다가, 짜릿함에 "말도 안 돼!"라고 외치며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일어나서 방안을 왔다 갔다 한 적이 있다던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경험이 있나 봅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정말이지 글을 쓰면서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정의감 있는 법관, 자제하는 검사

《법과 정의를 향한 여정》, 양삼승, 까치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7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양삼승 변호사가 《법과 정의를 향한 여정》이란 책을 내셨습니다. 양 변호사님은 1999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법복을 벗으신 뒤 변호사로 일하시면서 대한변협 부협회장, 영산대 석좌교수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고교 11년 선배이시지요. 저번에, 출판기념회에서 받은 선배님의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보니 선배님이 그동안 변협신문과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언론에 기고한 글, 한국법학원 주최의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 등 주옥같은 글을 모아 책을 내셨더군요. 선배님의 아버님은 양회경 전 대법관이십니다. 대법관님은 1971년 6월 국가배상법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할 때 위헌 의견을 내셨지요. 그리고 유신 선포 이후 그때 같이 위헌 의견을 낸 8분의 대법관님들과 함께 타의로 옷을 벗어야 했지요. 헌법재판소가 문을 연 이후 많은 위헌결정이 내려진 것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선배님도 1992년에 위헌제청을 하여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받아들여 위헌결정을 내린 것이 있더군요. 그 당시 선배님은 형사부 부장판사로 있을 때인데, 한 사건

일부러 흐르는 물로 온 산을 감싸 버렸구나

최치원, <題伽倻山讀書堂(제가야산독서당)>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7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狂噴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롱산) 미친 듯이 흘러 첩첩 바위 때리며 겹겹 봉우리를 향해 소리치니 지척에 있는 사람 소리도 알아듣기 어렵구나 속세의 시시비비 소리 귀에 닿을까 항상 걱정되어 일부러 흐르는 물로 온 산을 감싸 버렸구나 신라말 명문장가 고운 최치원(857 ~ ?)의 시입니다. 제목을 <제가야산독서당>으로 한 것으로 보아, 말년에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쓴 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운은 해인사에 머물면서 홍류동 계곡에서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시 내용으로 보아 고운은 책을 읽던 독서당에서 귀를 멍멍하게 소리를 지르며 내닫는 계곡물을 바라보다가, 문득 시상이 떠올라 이 시를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고운은 물소리를 들으며 속세의 시시비비 소리 귀에 닿을까가 걱정되어 일부러 흐르는 물로 온 산을 감싸 버렸다고 하는군요. 왜? 속세의 연을 완전히 끊지 못하고 자꾸 바깥 속세의 소리에 귀를 쫑긋거려서? 아니면 속세를 잊고자 하나, 계속 고운을 쫓아오는 속세의 소리를 굳게 차단하고 싶어서? 하여튼 가야산은 흐르는 물로 온 산을 감싸

학살당하는 자의 눈빛을 보았나요?

6·25 전쟁 뒤 재판도 없이 처형당한 보도연맹원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7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아래에 올린 사진을 보신 분들 많으시겠지요? 미 육군 소령 로버트 압보트(Robert Aborr)가 1950년 7월 무렵 대전 인근에서 찍은 사진이라는데, 《100년 동안의 폭풍우》에도 이 사진이 실렸습니다. 저자 김영란 선생은 보도연맹원 학살을 얘기하면서 이 사진을 책에 실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한때 좌익이었던 사람들도 전향하면 자유대한에서 자유롭게 살게 해주겠다며 보도연맹을 만들었었지요. 그런데 6·25 전쟁이 터지니까, 이들이 위험인물이라며 즉결처형 하도록 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학살당하였는지 정확한 숫자도 알 수 없는데, 적게는 10만 명 많게는 30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합니다. 두 발이 붙잡혀 엎드려있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움찔한 것입니다. 학살되어 구덩이에 내팽개쳐진 사람들처럼 저 사람도 사진이 찍힌 지 얼마 안 되어 학살되었을 것입니다. 죽기 직전에 애처롭게 쳐다보는 눈길에 저도 모르게 몸서리쳐집니다. 저 사람은 누굴까? 주검은 제대로 찾기나 했을까? 아무리 전쟁이라는 비상상황이라지만, 잘잘못도 가리지

존 밀턴의 《실낙원》을 읽었을 뿐입니다

《나의 꿈 나의 기도》, 주광일, 도서출판 시원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7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주광일 시인이 올해 5월 20일 4번째 시집 《나의 꿈 나의 기도》를 세상에 내셨습니다. 주 시인은 서울법대 문우회 회장을 하시면서 문우회 단톡방에 정력적으로 시를 올리시더니, 1년 5개월여 만에 4번째 시집을 내셨네요. 주 시인은 일상이 시입니다. 날마다 접하는 자연이나 사람, 뉴스 등 어느 것 하나 시와 연결되지 않는 것 없습니다. 그리고 서문을 쓴 정순영 시인의 말처럼 주 시인의 시는 천진난만하고 거짓이 없으며 꾸밈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 시인은 서문에서 주 시인의 시에 딱 맞는 공자의 사무사(思無邪)를 인용합니다. 이번 시집 《나의 꿈, 나의 기도》도 이렇게 일상에서 길어 올린 천진난만한 사무사(思無邪)의 시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렇게 일상이 흐르는 천진난만한 《나의 꿈, 나의 기도》를 감상하다 보면 봄을 맞이하고 여름 지나 가을이 오고 어느덧 주 시인의 인생 지혜가 절정에 이르는 겨울이 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 말미마다 써놓으신 시를 쓴 날짜를 보니, 시도 대체로 계절이 가는 순서대로 배치하였네요. 시집은 5부로 나뉘어 있는데, 아예 3부 제목은 <가을비에 젖은 어느 영혼>, 4부는 <낙엽지는

《최명길 평전》에는 찾은 몹시 청렴한 명 사신

오로지 원칙만 고집하는 근본주의, 나라를 망친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6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한명기 교수의 《최명길 평전》을 읽으면서 황손무라는 명의 사신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 중국에서 오는 사신은 대국에서 왔다고 오만불손하고, 조선이 상납하는 선물을 당연하게 받습니다. 그뿐입니까? 조선은 임금의 책봉 문제 등으로 아쉬운 처지에 있을 때 사신에게 뇌물을 상납하는데, 사신들은 당연히 뇌물도 챙길 뿐만 아니라, 선물이나 뇌물이 기대보다 적으면 오히려 이것밖에 안 되냐는 식으로 나왔답니다. 인조도 쿠데타를 일으켜 임금이 되었기에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명의 책봉에 매달렸습니다. 그리하여 1625년 6월 명의 사신 왕민정, 호양보가 왔을 때는 인조는 이들을 접대하기 위해 20만 냥 가까운 은을 지출합니다. 거의 2년 치 호조 경비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하니, 정통성 없는 임금 때문에 조선의 등골이 휠 정도였군요. 그런데 병자호란이 터지기 직전 1636년 8월 말 사신으로 온 황손무는 그동안의 여느 사신과는 달리 ‘몹시’ 청렴한 인물이었습니다. 얼마나 청렴하였으면 한 교수는 ‘몹시’라는 단어를 썼을 정도였을까요? 황손무는 당연히 뇌물을 요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접대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접대가 있다면, 술을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미생물’일 수 있다

《기생일까? 공생일까?》, 권오길, 지성사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6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스승의 날 지나 고교동기 선종이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춘천에 사시는 권오길 선생님께 갔다 오자고요.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께 스승의 날 감사 전화를 드리면서 한 번 찾아뵙겠다고 하였는데, 선종이 덕분에 빨리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림성심대학교 총장으로 있는 영식이에게도 연락하여 5월 23일 같이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제가 글 제목을 《기생일까? 공생일까?》라고 하고는 선생님 이야기를 하니 좀 이상하지요? 이날 선생님께서 주신 책 제목이 《기생일까? 공생일까?》입니다. 생물수필 1세대이신 선생님은 그동안에도 수많은 수필을 쓰셨는데, 이번에 책으로 나온 것은 《기생일까? 공생일까?》이군요. 선생님은 그동안 50여 권의 책을 쓰셨으니, 참 대단하시지요? 선생님은 단순한 생물수필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에서 우리 토박이말을 많이 쓰셔서 ‘과학계의 김유정’이라고도 불리십니다. 자연에 있는 ‘기생’, ‘공생’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에 친숙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복습한다는 기분으로 책을 펼쳤는데, 그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생, 공생관계에서도 잘 모르는 것이 많네요. 그뿐만 아니라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던 기생, 공생관

미ㆍ중 패권 경쟁의 험난한 파고를 넘으려면?

《최명길 평전》, 한명기, 보리출판사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6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진회보다 더한 간신’, ‘강상윤리를 내팽개친 원흉’ - 조선시대 이런 악평을 들어야 했던 인물이 누구일까요? 짐작하시겠지만 최명길 선생입니다. 최명길은 청나라의 침입으로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렸을 때 사람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강화를 끌어내어 조선의 사직을 지킨 인물입니다. 당시 조선의 형편으로서는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 말고는 도대체 해답이 없음에도, 척화파 대부분은 강화니, 항복이니 말만 꺼내도 마구 공격하였지요. 만약 척화파의 주장대로 끝까지 항전했다면 청군은 하삼도까지 내려가 조선의 전 국토를 유린하고 수많은 백성을 죽음의 계곡으로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척화파에게 대다수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권리가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면 조선의 땅과 백성을 그 정도의 질곡에서 멈추게 하고 벗어날 수 있게 큰 역할을 한 최명길의 업적은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리학 근본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조선에서 최명길은 저런 오명을 벗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 와서 그런 오명은 어느 정도 벗겨졌다고 하더라도, 최명길은 척화파를 훨씬 능가하는 평가를 받아야 함에도 여전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