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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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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제국의 황녀가 된 창녀 테오도라

《비잔티움 연대기(존 줄리어스 노리치)》 속의 흥미로운 이야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친한 선배의 딸이 얼마 전에 서점극장 ‘라블레’를 열었다길래 한번 가보았습니다. 서점을 방문했으니 당연히 책을 사야겠지요? 세계문학서점을 지향하는 서점이라 눈에 보이는 것은 거의 다 문학에 관한 책입니다. 그런데 저는 역사와 지리를 좋아하는지라 혹시 그런 책은 없을까 하여 둘러보니, 《비잔티움 연대기》라는 650쪽이 넘는 두꺼운 책(존 줄리어스 노리치 지음, 남경태 옮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1권이 아니라 3권짜리 책이고, 3권은 850쪽이 넘습니다. 비잔틴제국이 330년부터 1453년까지 인류 역사상 제일 오래 지속된 나라이니, 이야깃거리가 많아 이렇게 두꺼운 책이 3권이나 되겠지요. 저는 이번 기회에 비잔틴제국의 역사를 공부해보고자,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두꺼운 책이 3권이나 되니 좀 부담되기는 했지만, 꼬마 때부터 잘 알고 있는 선배 딸이 서점을 열었다니, 이왕이면 책값 좀 많이 쓰려고 3권짜리 《비잔티움 연대기》에 지갑을 열었습니다. 《비잔티움 연대기》를 나의 독서 시간인 오가는 차 안에서만 주로 읽고 있으니, 며칠 전에야 겨우 다 읽었습니다. 2권 뒤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비잔티움의 역사는 성직자

매창과 촌은의 사랑

그리운 마음, 가락지 얼마나 헐거워졌는지 보세요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여라 교과서에도 나왔던 매창의 시입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단지 매창의 시로 외우기만 하였지, 매창이 말하는 이별한 님이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매창이 말하는 님은 촌은(村隱) 유희경(1545~1636)입니다. 촌은은 원래 천민이었으나 13살에 아버지가 죽었을 때 시묘살이를 하다가 남언경의 눈에 띄어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촌은은 특히 상례(喪禮)에 밝아 상례에 대해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천민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통정대부까지 하사받았습니다. 그리고 광혜군 때는 인목대비 폐모 상소를 거절하여, 인조반정 후 인조는 이를 가상히 여겨 가선대부로 품계를 올려주었습니다. 촌은은 46살 때 부안의 매창이 시로서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부안으로 매창을 찾아갑니다. 당시 촌은은 백대붕과 함께 풍월향도라는 모임을 만들어 시를 나누었기에, 매창에게도 풍월향도의 소문은 들어갔었나 봅니다. 그래서 촌은이 찾아왔을 때, 매창은 촌은

허균,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다

허균과 매창의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妙句堪擒錦 淸歌解駐雲(묘구감금금 청가해주운) 偸桃來下界 竊藥去人群(투도래하계 절약거인군) 燈暗芙蓉帳 香殘翡翠裙(등암부용장 향잔비취군) 明年小桃發 誰過薜濤墳(명년소도발 수과벽도분) 신묘한 글귀는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고 청아한 노래는 머문 구름도 풀어 헤치네 복숭아를 딴 죄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세상을 떠나네 부용꽃 휘장에 등불은 어둡기만 하고 비취색 치마에는 향내 아직 남아있는데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때쯤이면 누가 설도의 무덤을 찾으리 1610년 허균은 부안의 기생 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창 계생을 애도하며 쓴 시입니다. 매창이라면 황진이와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기생 시인 아닙니까?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실린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하는 그녀의 시를 외우려고 하던 것이 생각나네요. 부안에서는 지금도 매창을 기려 매창공원도 조성하고 해마다 매창문화제도 열고 있습니다. 그런데 허균이 어떻게 매창을 알게 되었기에 그녀를 애도하는 시까지 썼을까요? 허균은 1601년 조운판관(漕運判官, 조운선의 정비, 세곡의 운반과 납부 등을 관장하는 종5품 관직)이 되어 전라도에 내려갔

‘보리 베는 노래’와 손곡 이달

어렸을 때 좋아했던 수제비, 쌀이 떨어져 간 탓이었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田家少婦無夜食(전가소부무야식) 시골집의 젊은 아낙은 저녁거리가 없어서, 雨中刈麥林中歸(우중예맥림중귀) 빗속에 나가 보리를 베어 숲길로 돌아온다. 生薪帶濕煙不起(생신대습연불기) 생나무는 축축해서 불은 붙지 않고 入門兒女啼牽衣(입문아녀제견의) 문에 들자 딸애가 울며 옷자락을 당긴다. 손곡(蓀谷) 이달(李達)의 <예맥요(刈麥謠)>, 곧 보리 베는 노래입니다. 저녁거리가 없어 빗속에라도 보리를 베어와야 하는 가난한 농가의 풍경을 노래하였군요. 그런데 보리도 완전히 익지 않았는데, 먹을 게 없으니 미처 익지 못한 보리라도 베어왔어야 하는 건가요? 이제 땔감에 불을 붙여야 하는데, 비에 젖은 생나무는 축축하여 좀처럼 불이 붙지 않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울면서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깁니다. 배가 고프다는 것이겠지요. 보릿고개. 지금은 보릿고개가 없어졌지만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봄이 되면 식량은 바닥나는데, 보리가 익으려면 아직 좀 더 남아있는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야 보릿고개라고 하면 먼 나라 얘기로 들리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하여도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가수 진성도 자신

‘덕릉’이라고도 부르는 덕흥대원군 무덤

선조의 아버지였지만 추존왕이 되지 못한 사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창빈 안씨 무덤을 얘기하자니 창빈 안씨의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무덤도 생각이 납니다. 덕흥대원군의 무덤은 경기도 기념물 제55호로 상계동에서 덕릉고개를 넘어 남양주시 별내동으로 내려가다가 왼편에 있습니다. 고개 이름은 고개 근처에 덕릉이 있다고 하여 덕릉고개라고 합니다. 고개 밑에 3호선 종점인 당고개역이 있으니까, 이를 당고개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당고개는 당고개역이 있는 마을에서 수락산역쪽으로 넘어가던 고개를 말합니다. 당집이 많아서 당고개라고 한 것이지요. ‘덕릉’이라고 하면 왕릉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근처에 ‘덕릉’이라는 왕릉은 없습니다. 덕릉은 덕흥대원군의 무덤을 말합니다. 그런데 ‘릉’이라는 이름은 임금과 왕비의 무덤에만 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덕릉은 정식 이름은 아닐 것인데, 어떻게 하여 덕흥대원군의 무덤을 덕릉(德陵)이라고 부르고, 또 고개 이름에 ‘덕릉고개’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여기에는 재미있는 야담이 스며있습니다. 추존왕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생전에 임금이 되지는 못했지만, 아들이 임금이 되는 바람에 사후에 임금으로 추존되면 추존왕이라고 하지요. 이를테면 성종의 아버지 덕종, 인조의

동작동 국립묘지의 중종후궁 창빈안씨 무덤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라는 절도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나라 사람치고 동작동 국립묘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6.25 전쟁 때 전몰한 국군장병들을 한 곳에 안장하기 위하여 1955년에 국군묘지로 설치되었지요. 그러다가 1965년 국립묘지로 격을 높이면서 독립유공자, 순직 경찰관, 대통령 등도 이곳에 묻혔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을 위해 공이 큰 사람들이 묻혀 있는 곳이지요. 그런데 이곳에 이런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무덤이 있습니다. 바로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의 무덤도 이곳에 있습니다. 그러면 언뜻 “왜 창빈 안씨의 무덤도 이곳에 모셨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원래 창빈안씨의 무덤이 먼저 이곳에 있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국립묘지를 설치하던 당국자는 국립묘지와 상관없는 창빈안씨의 무덤을 다른 곳으로 쫓아내고픈 생각을 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오랜 세월 이곳에 먼저 터를 잡고 있던 임금의 후궁을 쫓아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창빈 안씨는 중종의 후궁일 뿐만 아니라 선조의 할머니이기도 합니다. 곧 1567년 명종이 자식이 없이 죽자 후계 왕의 결정권을 쥐고 있던 명종비 인순왕후는 창빈 안씨의 손자인 하성군을 임금으

호랑나비의 꿈을 담은 집 호접몽가(蝴蝶夢家)

윤경식 건축가ㆍ최진석 철학자의 철학이 담긴 좋은 건축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사무실로 여성잡지 《노블레스(Noblesse)》가 배달됐습니다. “어? 잘못 배달된 것 아닌가?” 제가 평소에 여성잡지를 보는 일이 없거든요. 미용실에서 머리 깎으며 가끔 여성잡지를 뒤적이는 일 외에는... 그래서 발신인란을 보니 ‘윤경식’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윤경식 씨는 저와 같은 이비엠(EBM) 포럼회원인 건축가입니다. 포럼의 등산셀인 <이산저산>의 등산대장을 맡고 있어, 평소 ‘윤 대장’이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앞으로 윤 대장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윤 대장이 왠 여성잡지를 나에게?” 갸우뚱하면서 포스트잇 인덱스로 표시해놓은 쪽을 펼치니 금방 의문이 풀렸습니다. 바로 윤 대장이 전남 함평에 철학자 최진석 교수를 위해 지은 호접몽가(蝴蝶夢家)에 관한 기사가 실렸더군요. 함평이 고향인 최 교수가 고향집 마당에 ‘새말 새몸짓 기본학교’ 강의동을 지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누구에게 건축을 의뢰할까 하다가, 평소 건축에 철학적 사유를 덧입히던 윤 대장이 생각나서 윤 대장에게 부탁을 한 것이지요. 최 교수는 우리 사회가 이젠 뭔가 새로운 철학,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할 때라 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

소확행, 내려놓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사람들에게 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지혜를 알려주는 언론인 배연국님은 자신의 책 《소소하지만 단단하게》에서 28개의 소확행을 4개의 상자에 담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가운데 ‘내려놓기’에 담긴 소확행이 내 눈길을 끈다. 욕망으로 눈이 이글거리는 인간의 정글 속에 살다보니 우선 제목 ‘내려놓기’부터 내 마음을 잡는 것이다. 배연국님이 들려주는 사하라 사막의 잿빛모래쥐는 묘한 습관이 있다. 건기가 다가오면 잿빛모래쥐는 궁핍할 때를 대비하여 온종일 열심히 풀뿌리를 모은다. 잿빛모래쥐가 무사히 건기를 지내려면 2kg 정도의 풀뿌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잿빛모래쥐는 이렇게 필요한 양이 다 차도 계속하여 풀뿌리를 모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풀뿌리를 모으는 데에 열중할 때 누가 방해라도 놓으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불안해한단다. 이렇게 모으다 보니 심지어는 너무 많이 모은 풀뿌리가 썩어버릴 정도인데도 잿빛모래쥐의 풀뿌리 모으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 식으로 잿빛모래쥐가 모은 풀뿌리의 양은 10kg이 넘게 된다.​ 이게 비단 잿빛모래쥐에만 해당하는 것이겠는가? 오늘날 인간사회에서도 잿빛모래쥐 같은 인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