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날도 K 교수는 아내와 2시간 뒤에 할인점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K 교수는 2층에 있는 책방에 들렸다. 신간코너에 가서 이책 저책 들여다보기도 하고, 여행에 관한 책과 베스트셀러 진열대를 둘러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수필 코너에 가보니 앗, 《진하게 블랙으로》라는 책이 눈에 띄지 않는가! 단 한 권 남은 책을 꺼내어 보니 출판년도가 1991년으로 찍혀져 있었다. 아마도 절판되기 전 마지막 한 권이 몇 년 동안 K 교수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표지를 넘기다 보니 미스 K의 젊었을 때 사진이 전면에 나타났다. 눈이 아주 총명해 보이고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하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K 교수는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고 책을 샀다. 나온 지 7년이 지난 1998년에 책의 정가는 3,800원이었다. 소설은 6개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장의 제목이 평범하지 않고 특이했다. 제1장 조금 슬프게 제2장 조금 부드럽게 제3장 조금 화려하게 제4장 더 세게 제5장 조금 가볍게 제6장 다시 처음부터 추상적인 장 제목을 읽으면서 K 교수는 불경스럽게도 선정적인 내용을 연상하였다. 집에 들어온 K 교수는 밤새워 책을 통독하였다. 쪽수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어제 해껏 바람이 불었으면 했던 제 바람이 이루어졌습니다. 밤에는 바람을 맞으며 걷기가 힘들 만큼 세게 불었고 오늘 아침에도 한들한들 나뭇가지가 흔들거릴 만큼 여리게 불다가 가끔은 나무가 흔들릴 만큼 세게 불고 있어서 한결 시원해서 좋습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의 날씨는 어떤가요? 오늘 알려드릴 토박이말은 '해나다'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쓰시는 '해내다'를 잘못 쓴 말이 아니랍니다. 아주 쉽게 생각하면 이 말의 뜻을 바로 어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나다'는 말보다는 '해가 나다'꼴로 많이 쓰기 때문에 '해나다'는 말이 낯설게 느끼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날씨가 흐리지 아니하고 개다'는 뜻도 있고 '해가 구름 속에서 나와 볕이 나다'의 뜻도 있다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해가 나다'는 말과 바로 이어지는 것은 둘째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요즘 날씨가 오란비(장마)철 답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하고 또 들으실 겁니다. 오란비(장마)철에는 해난 날이 많지 않은데 요즘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이렇게 해난 날도 다음 이레(주)가 되면 좀 달라질 거라고 합니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4대강 사업의 네 번째 목표는 지역 발전이다. 4대강에 보를 막으면 상류에 호수가 만들어진다. 호수를 이용하는 각종 레저ㆍ관광 시설을 만들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다. 강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4대강 사업이 끝나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4대강 사업에 찬성하였다. 강 주변 주민들이 4대강 사업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니 지역구 국회의원들 역시 4대강 사업을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4대강 사업 이후 낙동강 주변 여러 도시는 새로 만들어진 호수를 중심으로 하여 자동차 캠핑장과 체육시설, 수상 레저 시설 등을 만들었다. 금강 유역의 여러 도시도 수상 레저 시설을 만들었다. 이러한 위락 시설을 많은 사람이 이용해야 지역 발전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복병이 나타났다. 수상 위락 활동을 하는 시기는 기온이 높은 여름철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여름철은 수온이 높아져 녹조가 증식하는 계절이다. 녹조가 번성하여 냄새가 나고 녹조라떼처럼 보이는 녹색 강에서 수상 위락 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2021년 8월 25일 탐사 전문 매체 뉴스타파의 보도 <예고된 죽음: 4대강 10년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딸기, 체리, 코코넛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동물의 위장을 거쳐야 싹이 잘 나는 식물입니다. 식물들은 무조건 맛있는 열매를 동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의 위장을 매개로 해서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 위한 전략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새뿐만 아니라, 곤충, 심지어 물고기와 같은 다양한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식물도 있습니다. 앵두는 새들이 열매를 먹고 씨앗을 멀리 떨어진 곳에 배설하면서 번식하고, 블루베리는 곰의 도움을 받습니다. 특히 일부의 식물은 동물의 위장에서 소화과정을 거쳐야 딱딱한 껍질이 부드러워지고 그것이 발아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일부 씨앗은 발아를 위한 특정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잠 자는 상태를 유지합니다. 동물의 위장을 통과하면서 씨앗 내부의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 휴면 상태가 깨어나고 발아가 시작될 수 있지요. 그뿐만 아니라, 동물은 씨앗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켜 새로운 서식지를 제공합니다. 새들은 딸기와 체리를 먹고 멀리 날아가 배설하며, 배설된 코코넛은 바닷물을 타고 다른 섬으로 이동합니다. 이렇게 씨앗은 동물을 통해 다양한 환경에 퍼져나가고, 그곳에서 새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은 어제보다 바람이 더 세게 불어서 햇볕도 덜 뜨겁다는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하늘에는 구름 하나 없어서 아침 해라고는 하지만 뜨겁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이렇게 해껏 바람이 불어 주면 좋겠습니다. 오늘 알려드릴 토박이말은 '해끔하다'입니다. 이 말을 듣거나 보신 적이 있으실까요?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말이고 나날살이에서도 더러 쓰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보신 분들이 계시지 싶습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조금 하얗고 깨끗하다'라고 풀이하고 있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사물이나 그 빛이)곱고 조금 희다'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풀이를 보더라도 '해끔하다'는 우리가 흔히 쓰는 '희다', '하얗다'라는 말과는 말맛과 속살이 다른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우리말이 다른 나라 말과 다른 것이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희다', '하얗다'라는 말이 있어 그냥 '희다', '하얗다'라고 해도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해끔하다'라거나 이보다 더 느낌이 큰 말인 '희끔하다' 라는 말로 그 맛과 느낌을 달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말집(사전)에 있는 보기월을 보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K-민주주의의 원년, 이 특별한 해에 잘 호응하는 책 권태면의 《가지 못한 길》이 나왔다. 이 책 《가지 못한 길》의 마지막 구절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길을 간다. 민족의 역사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흘러간다.” 이 책을 낸 권태면은 외무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엘리트 외교관이다. 그는 높은 관직에의 욕망보다는 지식인의 고뇌를 품고 살아온 서생 외교관이다. 그동안 그가 썼던 책을 보아서 그렇다. 《밖에서 바라본 한국》은 한국의 사회문화를 내부자와 외부자의 두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리 역사 속의 외교관》은 신라 이래 우리 역사에서 외교활동을 한 인물들을 탐사한다. 《북한에서 바라본 북한》은 그가 업무상 북한에 살면서 쓴 체험적 관찰기이다. 《구별연습》은 그의 시를 엮은 시집이다. 나는 그의 외교부 동료이자 애독자다. 이번에 나온 《가지 못한 길》은 분단체제 속에서 고뇌하는 한 외교관이 오랜 숙려 끝에 세상에 내놓은 노작(勞作)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소위 외교관으로 35년을 살았다. 그것은 늘 세계지도를 옆에 두고 보면서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 보는 직업이었다. … 수십년간 남북의 외교관들은 수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날마다 걸어 오는 길에서 어제까지 못 본 봉숭아꽃을 보았습니다. 어제도 피어서 그 자리에 있었지만 제 눈에 띄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제 눈에 들어왔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같은 자리에 씨앗이 떨어져 싹을 틔워 자라서 꽃을 피울 때까지 제 눈에 띄지 않다가 비로소 눈에 띈 것은 예쁜 꽃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것은 하얗고 또 어떤 것은 붉은 빛깔을 입고 있었지요. 제가 하고 있는 토박이말 살리는 일도 곧 꽃을 피워 많은 분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더욱 애를 써야겠습니다. 오늘 알려드릴 토박이말은 '해껏'입니다. 둘레 사람한테 '해껏'이라는 말을 아느냐고 물으니 처음 듣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뜻 같으냐고 물었더니 뭔지 모르지만 가벼운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사는 고장 사투리로 '가볍다'를 '해껍다'라고 하는데 '해껍다'는 말이 떠올라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떠 있는 '해'와 아랑곳한 말이라고 했더니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오늘 하루 종일 일만 했어." "너 하루 종일 그것 밖에 못 했어?" 우리가 살면서 '하루 종일'이라는 말을 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잠시 세계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더니 이런 일이 있었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중국이 아니라 인도라는 것이다, 인도는 2023년 4월 기준으로 인구가 14억 2,577만 명으로 중국의 14억 2,6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온다. 정확한 숫자는 차이가 있지만 그 나라의 인구수 측정치에다 출산율, 의료환경에 따른 유아생존율 등을 살펴서 추정된 것이란다. 어떻거나 인도 인구가 세계 1위다. 인도의 출산율은 중국(1.2명)보다 높아 인구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고, 인도의 젊은 인구 구조(30세 미만 50% 이상)가 노동력과 소비 시장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 그 차이가 더 벌어져, 순위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인구가 늘기는커녕 줄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급증하던 1978년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을 도입했던 중국은 21세기 들어 출산율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중국의 연간 출생아 수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1,000만 명을 밑돌았고, 전체 인구 역시 3년 내리 줄었다는 점이다.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중국은 2016년에 ‘두 자녀 허용’ 정책을 전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7월의 청포도 육사의 고향 생각나는 칠월 (돌) 청포 입고 온다던 님 그리워 (빛) 알알이 주저리 아리 쓰리랑 (심) 맑고 푸른 세월 그 언제인가 (달) ... 25.7.3. 불한시사 합작시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7월에는 이육사의 시 "청포도"와 함께 그의 고향이 생각난다. 그곳은 도산서원과 그리 멀지 않은 안동 예안이다. 글쓴이는 어릴 적에 나의 아버지 고향이기도 한 예안을 여러 번 찾았다. 마을 가운데에 시인의 생가인 오래된 기와집이 있었다. 그는 퇴계의 13대 후손이고 그의 집은 '참판댁'이라 불렸다. "청포도"의 시를 교과서에서 배우고 다시 찾았을 때는 동네 어디에도 푸른 빛의 청포도는 없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머루색 검은 포도밖에 없어 아쉬웠었다. 그러나 청포도의 싱그러움을 연상시키는 '청포(靑袍)'와 '은쟁반' 그리고 '하얀 모시 수건' 등 우리 고유의 토속적인 정감을 북돋우는 맑은 시어들을 잊을 수 없다. 세월이 흘러 글쓴이는 한중수교 이전에 북경으로 유학하러 갔다. 거기서도 시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이육사가 북경대학의 사회학과를 다닌 적이 있어, 나에게는 공교롭게도 아득한 선배이자 동문이다. 당시 문리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옥순 교수가 얼마 전에 낸 책 《최소한의 인도수업》을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이 교수는 저와 같은 <나눔문화> 회원으로, 예전에 <나눔문화>에서 중동 여행을 할 때 같은 여행단 일원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여행 중에도 계속 책을 가까이하던 것을 기억하고 책을 보내주셨네요. 이옥순 교수는 인도 델리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인도연구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그동안에도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인도 현대사》, 《인도는 힘이 세다》 등의 책을 낸 그야말로 인도 전문가지요. 책 제목이 《최소한의 인도수업》인 것으로 보아 우리가 ‘교양인으로서 인도에 대해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내용을 담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이 교수는 2013년 7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삼성경제연구소가 시작한 SERI CEO에서 ‘나마스테 인디아’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동안의 강의 내용 가운데 우리가 꼭 알았으면 하는 내용을 골라 이 책에 담은 것입니다. 강의 내용을 담은 것이라 책 제목에도 ‘인도 수업’이라 했겠군요. 인도는 땅덩어리로 보나, 역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