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철학박사/시인] 차는 사람이 달여 하늘에 올리는 공양으로 시작되었다. 맑은 샘물을 길어 불을 지피고, 어린 찻잎을 달여 두 손으로 공손히 올리는 일은 곧 자신의 마음을 부처와 하늘에 바치는 수행이었다. 한국 차문화는 이러한 공양차(供養茶)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신라 차문화에는 이와는 정반대의 놀라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람이 하늘에 차를 올린 것이 아니라, 하늘이 사람에게 차를 올렸다는 이야기. 그 주인공이 바로 오대산의 수행자 정신(淨神)이다. 《삼국유사》 「대산오만진신조」에는 정신이 오대산 신성굴에 머물며 오십 년 동안 한결같이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명예를 구하지 않았고, 세상을 떠돌지도 않았다. 다만 깊은 산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닦으며 오직 도 하나만을 바라보았다. 오십 년. 한 사람의 일생에 가까운 세월이었다. 계절은 수없이 바뀌고, 나무는 자라 숲이 되었으며, 함께 수행하던 이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났지만, 정신은 끝내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정성이 하늘을 감동하게 했을까. 《삼국유사》는 놀라운 장면을 기록한다. 정거천(淨居天)의 하늘 무리가 차를 달여 정신에게 공양하였다. 이 한 줄은 한국 차문화사에서 가장 신비롭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4년 11월 11일 밤 포크는 전주 감영 숙소에서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도구 챙기느라 첫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다음날 8시에 일어났다. 날씨는 흐리고 몸은 피곤하다. 눈이 아프다. 전양묵에게 편지를 주어 감사에게 전하라고 했다. 국한문 혼용 편지였을까? 일기에는 언급이 없다. 포크는 한글을 잘 쓰고 한자도 많이 안다. 그는 6년 동안 아시아함대 근무할 때 주로 동해에 있었다. 포크가 한국어를 독학하기 시작한 것은 1881년 말 혹은 1882년 초로 보인다. 그보다 몇 년 먼저 한국어를 공부한 외교관이 있었으니 고베 주재 영국 영사 아스턴(Aston)이었다. 그는 조선의 개항을 예견하고 한국어 공부에 열중하였다. 그는 1879년 한국어 연구서 《일본어와 한국어 비교 연구 (A comparative study of the Japanese and Korean languages)》를 펴냈다. 포크는 이 책과 프랑스 선교사들이 프랑스어(포크는 프랑스어를 익혔다)로 만든 한국어 학습 교재를 사용한 것 같다. 편지를 감사에게 전해주고 온 전양묵이 감사의 말을 전한다. 자기에게 일본어와 영어를 가르쳐 주기 원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비가 거세게 내리던 저녁이었다. 궂은 날씨라면 공연장을 찾는 발걸음도 주춤할 법했지만, 8월 28일 한국문화의집 KOUS에서 열린 팔인예의 「팔연화무」 객석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가득 찼다. 관객 대부분은 중ㆍ장년층이었으며, 곳곳에서는 외국인 관객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객석의 집중도는 높아졌고, 춤이 이어지는 동안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이번 공연은 2017년 공연을 계기로 인연을 맺은 여덟 명의 전통무용가가 오랜 시간 서로의 춤을 나누고 교류하며 이어온 네 번째 무대다. 다만 이날은 함경남도 검무의 양승미 명인이 불의의 사고로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팔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해 온 자리였기에 그 빈자리는 더욱 아쉽게 다가왔다. 이날 무대에서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설적으로 무대의 단순함이었다. 화려한 세트나 영상, 특별한 무대장치의 기교에 기대지 않았다. 그러나 비워진 공간은 오히려 무용수의 몸과 춤사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여백이 되었다. 한 걸음을 내딛고 팔을 들어 올리고 몸의 방향을 바꾸는 동작 하나하나가 공간에 선을 그었다. 의상 자락이 몸을 따라 움직이고 다시 가라앉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순욱은 조조가 아꼈던 최고의 전략가이자 정치적 동반자였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가 있었죠. 순욱은 한나라의 신하로서 조조를 도와 도탄에 빠진 한나라를 재건하려고 했고 조조는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천하를 통일한 뒤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순욱은 조조의 창업을 결사반대합니다. "조공께서 군사를 일으킨 것은 본래 한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안심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마땅히 충절을 지키고 겸양해야지, 결코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 발언으로 조조는 순욱이 더 이상 자신의 야망에 동행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조조는 전장에 있던 순욱에게 도시락 하나를 보냅니다. 순욱이 떨리는 손으로 그 뚜껑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네게 줄 녹봉은 없다." 곧 너와 나의 인연은 끝났고, 너를 신하로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너는 이제 필요 없는 존재다." 곧 빈 그릇처럼 너의 쓰임새는 다했으니 알아서 거취를 결정하라는 압박이었죠. 순욱은 조조의 의중을 즉각 파악했습니다. 그는 평생을 바쳐 보좌했던 주군이 자신에게 절교를 명했다는 사실에 절망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셰르파 라매쉬 씨와 호텔 부근에서 택시를 3,500루피에 하루 전세하여, 힌두교와 티베트 불교의 중요 순례지인 ‘부드나트 스투바’를 찾아갔다. 외국인 입장료는 400루피인데, 1,000루피를 주니 잔돈을 수북이 내어준다. 외국인에게 알아보기 힘든 잔돈을 잔뜩 주면 어떡하냐고 한 마디 하니 그제야 500루피와 50루피 두 장을 제대로 거슬러 준다. 자국민의 입장료는 무료다. ‘부드나트 스투바’는 원형 백색 탑 가운데에 사방을 내려다보는 눈(지혜의 눈)이 있고, 그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돌며 걷는 순례자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탑과 도로 폭만큼의 간격을 두고 상점과 사원들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다. 탑 북쪽 입구에 신발을 맡겨두고 맨발로 탑 2층으로 올라가 한 바퀴 돌았다. 사람들이 탑 주변에서 마니차(원통형의 불교 법구)를 돌리거나 경전을 외우는 등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남쪽 입구 출입문 부근에는 라마승 열댓 명이 모여 붉은 말머리(닭머리) 모양의 독특한 모자에 승복을 입고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차량에서 두 남녀가 내리자, 황금빛 우산으로 인도하고, 특유의 나팔을 불며 행진하는 모습이 보여 흥미롭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밤비행 인천에서 3만리 날아 뉴욕 (빛) 철학하려면 비행하라 했지 (돌) 철학은 순행인가 역행인가 (심) 기러기도 날지않는 밤하늘 달) ... 25. 7. 4.불한시사 합작시 지난해 5월, 필자는 스물여덟 시간 동안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을 건너 남아메리카 브라질의 상파울루에 도착하였다. 같은 불한시사 회원인 한빛 시인은 비슷한 시기, 인천에서 삼만 리 밤하늘을 날아 뉴욕에 닿았다. 나는 서쪽으로 날았고, 그는 동쪽으로 날았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떠난 두 사람은 둥근 지구의 한 하늘 아래에서 다시 이어졌다. 지구에는 동과 서가 있지만 하늘에는 본래 경계가 없다. 사람이 방향을 나누고 국경을 그을 뿐, 구름과 바람과 별빛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 우리가 철학을 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한빛은 뉴욕에 사는 손자를 만나러 갔고, 나는 남미를 여행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러나 사람은 철학을 찾아 나서지 않고도 먼 길 위에서 문득 철학과 마주친다. 익숙한 땅을 떠나 낮과 밤이 뒤바뀌는 시간을 건너다보면, 평소에는 잊고 살던 삶의 방향과 존재의 까닭을 저절로 묻게 된다. 이 합작시의 첫 구절은 한빛 시인이 발구(發
[우리문화신문=최선훈 기자]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마주하고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장례라는 시간을 갖는다. 장례는 고인을 보내드리는 마지막 의식이면서, 남겨진 사람들이 이별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장례문화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고 가족과 친척, 지인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는 모습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 가운데 장례와 관련해서는 유난히 많은 미신이 존재한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임산부는 장례식장에 가면 안 된다." "아이에게 주검을 보여주면 안 된다." "장례식에 다녀오면 소금을 뿌려야 한다." 이러한 믿음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내용도 상당히 다르다. 따라서 이를 하나의 전통적인 규칙처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과거에는 질병과 죽음의 원인을 지금처럼 정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위생환경과 의료기술도 현재와 달라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례 과정에서 감염이나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지금보다 컸다. 이런 경험적인 생활지혜에 종교적ㆍ민속적 믿음이 더해지면서 여러 가지 금기와 관습이 만들어지고 세대를 거쳐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장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올여름에 우리나라는 무척 더웠다. 2026년 8월 2일 경남 양산의 최고 기온이 42.5도까지 올라가 기상 관측 사상 최고로 더웠던 날로 기록되었다. 질병관리청은 2026년 8월 26일 기준으로 올해 응급실을 찾은 누적 온열질환자 수는 3,859명, 사망자 수는 34명이라고 발표하였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뜨거운 여름은 해마다 계속될 것으로 염려된다. 유럽 역시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곳이다. 독일에서는 올해 여름 불볕더위 관련 사망자가 약 1만 4천 명으로 추정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올해 불볕더위가 반복되면서 7,300명 이상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도되었다. (초과 사망이란 통상 일어난다고 기대되는 사망을 훨씬 넘어서 발생하는 사망을 말한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습도가 낮은 유럽의 여름은 한국의 여름과는 다르다. 우리나라처럼 습도가 높고 숨이 턱턱 막히는 그런 더위가 아니고 북대서양 난류와 편서풍 덕분에 한낮에도 나무 그늘로 들어가면 견딜만하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금방 선선해진다. 우리나라에서 열대야는 밤의 최저 기온이 25도를 넘는 날을 말한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차 한 잔에도 역사가 흐른다. 차는 산사의 선방이나 문인의 서재에서만 향기를 피운 것이 아니다. 전쟁으로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묶고, 잊힐 뻔한 조상을 다시 불러들이는 제단 위에서도 말 없는 역사가 되었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넘어 삼국을 통합해 가던 격동의 시대, 그 중심에 김유신과 문무왕이 있었다. 두 사람은 군신(君臣)이면서 외삼촌과 조카 사이였다. 김유신의 누이 문명왕후가 문무왕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더 깊이 거슬러 올라가면 그 혈맥은 모두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에게 닿는다. 김유신은 김수로왕의 12세손이었고, 문무왕은 어머니 문명왕후를 통하여 수로왕을 자신의 15대 시조로 받들었다. 그러므로 이들의 통일은 신라가 가야ㆍ백제ㆍ고구려를 정복한 승자의 역사만이 아니었다. 가야의 혈맥이 신라 안에서 다시 살아나 통일을 이루고, 마침내 그 조상을 차향으로 기린 생명의 역사이기도 했다. 김유신은 595년 신라에 귀속된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증조부 구형왕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이었고, 할아버지 김무력과 아버지 김서현은 신라의 장군이 되었다. 그의 집안에는 가야의 멸망과 신라로의 귀속, 차별과 수용, 전쟁과 화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다음은 1884년 11월 10일, 전라감영 선화당에서 이루어진 포크와 김성근 감사와의 대화다. 포크: "(왜 조선에 왔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한 데 이어) 여기 오면서 보니까 놀고 있는 땅들이 많더군요. 잘 개간하여 농작물을 생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라감사 김성근: "우리 조선은 수백 년 동안 쌀을 자급자족해 왔습니다. 지금 농토로도 충분합니다." 포크: "생산을 많이 하여 무역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역은 여러 장점이 있습니다. 지금 잘 사는 나라들이 모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김성근: (갑자기 얼굴색이 어두워지며) "여태껏 우리 조선은 그런 걸 몰랐습니다. 조선도 서서히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포크:(여권, 통행증, 민명익 소개편지 등을 보여 주며) "나주에 갈 참인데 잘 도와주십시오." 김성근: "아이쿠, 거긴 가지 마십시오. 갈 곳이 못 됩니다. 거기 가면 고생만 하실 겁니다." 포크: "이미 계획된 일정입니다. 갈 생각입니다. 나주에 가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조선 증기선의 취항을 위하여 수로와 포구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지요. 나의 나라 미국에 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