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초암거사(草庵居士) 해남에 제발로 유배간 선비 (빛) 시화에 토굴 조각 솜씨까지 (돌) 사자산 아래서 달 바위 베고 (달) 예수와 부처가 하나로 있네 (심) ... 12.20. 불한시사 합작시 초암(草庵)은 조각가 강대철의 아호다. 그는 80년대를 앞뒤로 발군의 조각 작품을 발표하더니, 어느덧 높고 깊은 정신세계에 빠져들었다. 전남 장흥의 사자산에 들어가 수행과 공부에 몰두하고, 최근 7년 동안 수행 삼아 “조각토굴”의 작업을 해왔다. 그동안 시화집을 비롯해서 소설도 발표했다. 그는 말한다. “늘 마음 바탕을 찾아 거칠어진 성정을 다스리며, 순간순간 나를 챙기며 산다”라고. 유배 길로 떠밀린 동파(東坡)나 추사(秋史)와 달리 초암은 스스로 유배 길에 올라 자신을 극복해 가고 있다. (한빛) 아랫글은 불한시사 시벗들이 '초암거사'를 시제로 쓴 4인의 합작시에 대해 겸사(謙辭)를 표현한 초암의 글이다. 그 아래는 라석의 화답글이다. 두서없이 살아온 세월 부질없이 드러나니 동짓달 눈발처럼 분분하구나 몸둥이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인생 끝자락에서 인연 닿는 벗들과 담담한 회향(廻向)*놀이 해보려 한 것이 만만치가 않구나 머물러 바라보며 산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며칠 뒤 K 교수는 체육대학의 ㄱ 여교수와 ㄴ 교수를 초대하여 미녀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ㄱ 교수는 무용학과 교수여서 무용을 전공한 미스 K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날 미스 K는 또 서울 갔다고 자리에 없었다.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미스 K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고 혹시 아느냐고 ㄱ 교수에 물어보니, 학교 다닐 때 1년 후배로서 예쁘다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나중에 미스 코리아 진에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어서 확실하지는 않다고 했다. 어쨌든 미스 K가 학교 가까이에 왔다니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식사가 끝나고 주로 무용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ㄱ 교수는 얼마 전에 경기도 안성군의 죽산면에서 열린 국제예술제에 다녀왔다고 했다. 죽산국제예술제는 ‘웃는 돌 무용단‘의 홍신자 씨가 1994년부터 시작한 연극축제였다. 무용가인 홍신자 씨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인도 철학자 라즈니쉬의 제자가 되었다. 그녀는 인도에서 3년 동안 머무는 동안에 봄베이 근처 라즈니쉬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 푸나에서 생활하였다. 홍신자 씨가 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뭇잎 한 장에 숨을 불어넣는 작가, 리토(Lito) 씨는 1986년생 일본 가나가와현 출신의 예술가다. 스스로 가진 ADHD(주의력이 조금 부족하지만 하나에 깊이 몰입하는 특성)를 남다른 몰입력과 섬세함으로 승화시켜, 2020년부터 자신만의 나뭇잎 키리에(葉っぱの切り絵, 핫빠노기리에, 스페인에서는 '나뭇잎 조각 예술(Leaf Cut Art))이라함') 세계를 독학으로 일구어 왔다. 리토 씨는 2020년, 스페인의 나뭇잎 조각 예술(Leaf Cut Art)을 처음 접하고 인생이 뒤바뀌는 듯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날마다 작품을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올렸고, 꾸준한 노력 끝에 수많은 사람의 찬사와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되었다. 나뭇잎 속에 담긴 동물들의 포근한 이야기가 리토 작품의 매력이라고 한다. 특히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알려진 '나뭇잎 아쿠아리움'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으며,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전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먼바다를 건너온 것은 한 사람의 운명만이 아니었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출발하여 중국 남쪽땅 복주를 거쳐 서기 48년 가락국 김수로왕에게 시집온 허황옥 공주는 낯선 땅에 새로운 문화를 함께 들여왔다. 기록은 그녀의 혼인과 여정을 전할 뿐, 그녀의 손에 무엇이 더 들려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 세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는 작고 조용한 하나의 씨앗이 살아 있다. 그것은 차(茶)의 씨앗이다. 나는 오래전, 그 장면을 이렇게 졸시집 《허황옥이 가락국에 온 까닭》에 적어 두었다. “옥합에 넣어 온 / 귀한 차씨를 급히 꺼내 / 대숲 오솔길을 지나 / 이슬 젖은 땅에 심었다.” 기록이 침묵한 자리를 채우는 것은 언제나 시와 기억이다. 그 씨앗은 한 이국 여인의 손을 떠나 이 땅의 흙으로 스며들었고, 이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과 함께 숨쉬기 시작했다. 가락국의 차문화는 단순한 전설에 머물지 않는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거등왕 때의 제례 기록이 전한다. 떡과 밥, 과일 그리고 술과 더불어 차가 함께 올려졌다는 내용이다(거등왕 3년, 199년 이후 제례 규정). 이는 이미 2세기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84년 11월 1일부터 44일 동안 한강 이남의 조선 남부를 탐사했다. 대학노트 약 350쪽을 여행기로 가득 채웠다. 삽화도 다수 그려 넣었다. 수많은 주막에 들렀다.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사람도 당시 그처럼 많은 주막을 들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여행기에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도 ‘주막’인 것 같다. 그가 숙박한 주막을 중심으로 그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먼저. 그가 여행기 첫 쪽에 적어 놓은 여행단 내역을 보겠다. (뒤침) 우리 여행단은 다음과 같다: 조지 C. 포크 미국 해군 소위 전양묵, 양반 정수일, 조지 포크의 수행원 가마꾼 12명 말몰이 소년 2명(11월 5일 공주에서 한 명이 추가되어 3명이 된다) 하인 1명 총계: 18명의 인원에 2필의 말, 3대의 가마 5 상자의 트렁크, 3개의 손가방, 사진기, 삼각대, 총기 상자, 돈 바구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십팔사략(十八史略, 원나라 증선지-曾先之가 펴낸 중국의 역사서)》에는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이야기, 곧 ‘관포지교(管鮑之交)’가 나옵니다. 관중과 포숙아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장사를 했습니다. 관중은 항상 이윤을 더 많이 가져갔고, 장사에도 종종 실패했습니다. 남들이 관중을 탐욕스럽거나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할 때, 포숙아는 결코 그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관중이 이윤을 많이 가져가는 것은 집안이 가난하기 때문이고, 장사에 실패하는 것은 때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누군가의 단점이나 실수를 볼 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보고 쉽게 판단합니다. 그러나 포숙아는 그 행동 뒤에 숨겨진 상황과 본질적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관계는 비난과 단죄가 아닌, 이해와 통찰 위에서 꽃피울 수 있습니다. 포숙아의 이 무조건적인 믿음이 관중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세(勢)가 되어줍니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주군을 섬기게 되면서 잠시 떨어져 지냅니다. 훗날 제나라의 군주가 된 제 환공(桓公)은 포숙아를 재상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포숙아는 단호히 거절하며 이렇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욕지미래 선찰이연(欲知未來 先察已然)'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구절이지요. 미래를 알고 싶거든 먼저 이미 지나간 일이 어떠했는가를 살피라는 말입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닙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우린 종종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점술이나 예언에 의지하곤 합니다. 그러나 선인(先人)들은 가장 확실한 미래의 예언서가 바로 역사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의 본성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시대와 관계없이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번성했던 문명이 어떤 까닭으로 몰락했는지, 한 개인이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살펴보면,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와 미래에 닥칠 가능성을 미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 곧 '이연(已然)'을 '선찰(先察)'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억하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성공했던 경험에서는 핵심 요인을 추출하고, 실패했던 경험에서는 근본적인 원인을 반성하여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능동적인 자세입니다. 과거는 미래를 위한 가장 비싼 수업료이자, 피와 땀으로 얻은 교훈이 담긴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답사 중간 지점을 통과하여 청도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어제 오전부터 목이 부어 약을 먹기 위해 저녁으로 미음을 한 그릇 먹었다. 대원들이 챙겨준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다. 답사단의 리더로서 소통이 원활해야 하는데, 말하기조차 어려우니 답답한 마음이다. 오늘 저녁까지 따뜻한 물만 먹는데도 넘어가지 않는다. 내일의 여정을 위해 서둘러 자리에 누웠다. ▶알백대(阏伯台, 상구(商丘), 11km분) : 알백은 제곡의 아들로 약 4,500년 전 상(商)나라의 시조로, 불을 관장하는 '화정(火正)'이라는 직책을 맡았기에 그를 모신 곳을 ‘화신대(火神台)’라고 부른다. 끝없이 펼쳐진 산둥 평원에서 위로 솟은 알백대는 도성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사당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계단 뒤편으로 가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인 화성대(火星台)가 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별자리를 보고 농사 시기를 결정했던 만큼 고도의 문명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알백의 봉호(임금이 내려 준 호)가 '상(商)'이었기 때문에 이 언덕을 '상구'라고 부르게 된 것에서 지명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특히 넓은 광장 중앙에 화상(華商)의 시조 왕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진의 영랑시인 생가 기다리기만 하면 모란 피나 (돌) 기다리지도 않으면 안 피나 (빛) 때 되면 피고 때 되면 지거늘 (초) 꽃이 피고 지던 저 세월 넘어 (달) ... 24.12.29. 불한시사 합작시 세모의 바람이 스산하던 날, 남도의 끝자락 강진에 이르러 우리 불한시사 다섯 벗들은 고요한 한옥 한 채 앞에 섰다. 그곳은 김영랑의 숨결이 아직도 머물러 있는 생가였다. 담장은 낮고, 뜰은 비어 있었으며, 모란은 아직 깊은 겨울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적막한 빈 뜰에는 이미 한 편의 시가 조용히 피어 있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오래된 시비는 마치 오랜 벗처럼 우리를 맞이하며, 보이지 않는 꽃의 시간을 가만히 들려주고 있었다. 겨울의 침묵 속에서도 꽃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기다림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영랑의 시는 기다림의 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시간을 견디는 기다림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절정이 다가오기를 향한 내면의 미묘한 떨림이며, 동시에 그 절정이 스쳐 지나갈 것을 미리 아는 상실의 시대 예감이기도 하다. 모란은 단지 한 송이 꽃이 아니다. 피기 전에는 설렘으로 가슴을 적시고, 피어나는 순간에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도올 김용옥은 K 교수보다 2살 위이다. 도올은 고려대 생물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신학대학 역시 중퇴하고 고려대 철학과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그 뒤에 그는 국립대만대학교에서 철학 석사,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철학 석사,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 교수는 도올을 학자로서 존경한다. 그의 책을 대부분 읽었다. 도올은 동양철학자로서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김용옥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자였고 매우 박식하였다. 그는 매우 다양한 주제에 관하여 책을 썼다. 연극, 영화, 미학, 태권도, 기철학, 중국의 고전, 기독교 성서 등등 수많은 주제에 관하여 수많은 책을 썼다. 그가 1999년 11월에 교육방송(EBS)에서 시작한 <노자와 21세기> 강의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3개월 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경상남도 마산에 살고 있던 평범한 주부 이경숙 씨가 도올의 노자 해석을 비판하였다. 이경숙 씨는 자기의 주장을 2000년 11월에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출간 직후 “전문 학자가 아닌 평범한 주부가 당대 최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