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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보리 베는 노래’와 손곡 이달

어렸을 때 좋아했던 수제비, 쌀이 떨어져 간 탓이었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田家少婦無夜食(전가소부무야식)  시골집의 젊은 아낙은 저녁거리가 없어서,

雨中刈麥林中歸(우중예맥림중귀)  빗속에 나가 보리를 베어 숲길로 돌아온다.

生薪帶濕煙不起(생신대습연불기)  생나무는 축축해서 불은 붙지 않고

入門兒女啼牽衣(입문아녀제견의)  문에 들자 딸애가 울며 옷자락을 당긴다.

 

손곡(蓀谷) 이달(李達)의 <예맥요(刈麥謠)>, 곧 보리 베는 노래입니다. 저녁거리가 없어 빗속에라도 보리를 베어와야 하는 가난한 농가의 풍경을 노래하였군요. 그런데 보리도 완전히 익지 않았는데, 먹을 게 없으니 미처 익지 못한 보리라도 베어왔어야 하는 건가요? 이제 땔감에 불을 붙여야 하는데, 비에 젖은 생나무는 축축하여 좀처럼 불이 붙지 않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울면서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깁니다. 배가 고프다는 것이겠지요.

 

보릿고개. 지금은 보릿고개가 없어졌지만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봄이 되면 식량은 바닥나는데, 보리가 익으려면 아직 좀 더 남아있는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야 보릿고개라고 하면 먼 나라 얘기로 들리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하여도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가수 진성도 자신이 어렸을 때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던 심정을 노래 <보릿고개>로 남긴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다행히 그렇게 배를 쫄쫄 굶는 보릿고개는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나놓고 보니 우리 집도 쌀독이 바닥을 드러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수제비를 끓여주셨지요. 가끔은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밀가루 반죽을 방망이로 얇게 미신 후, 칼로 가늘게 잘라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으셨지요. 칼국수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저는 어머니가 수제비를 만들어 준다고 하면 기쁘게 “예!”하고 대답했고, 아버지가 칼국수를 만드실 때면 옆에서 군침을 흘리며 지켜보았지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쌀이 떨어져가니 밀가루 음식을 만드시는 거지만, 저는 특식이 나온다고 좋아했습니다. 그게 집에 쌀이 떨어져 가서 그랬다는 것은 한참 뒤에 제가 커서야 알게 되었지요.

 

손곡의 시 얘기하다가 보릿고개를 넘어가 버렸습니다. 손곡 이달(1539~1612)은 조선 중기의 시인입니다. 당시(唐詩)를 잘 지어 최경창, 백광훈과 함께 삼당시인이라고 불렸지요. 세 시인이 비슷한 취향이니, 같이 어울려 다니며 시를 많이 지었다고 합니다. 손곡은 영종첨사 이수함과 홍주의 관기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입니다. 그러니 뛰어난 재주를 가졌지만, 조선에서는 신분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농가의 배고픔을 가슴 아파하는 ‘예맥요(刈麥謠)’ 같은 시도 지었을 것 같습니다.

 

손곡은 허균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허균의 형 허봉이 자신의 친구 이달에게 자신의 남동생 허균과 누이동생 허난설헌에게 시를 가르치게 하였지요. 그래서 훌륭한 재능을 지닌 스승이 서얼이라는 신분으로 불우하게 지내는 모습에 허균이 가슴 아파하여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스승을 존경한 허균은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지어 스승을 기렸고, 또 스승의 시를 엮은 《손곡집(蓀谷集)》이라는 시집도 만들었습니다. 이달의 호 손곡은 그가 살던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에서 따온 것입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호를 따오는 경우가 많았지요? 당장 퇴계(退溪) 이황, 율곡(栗谷) 이이가 떠오르네요.

 

 

손곡리에 가면 손곡 이달의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위 시는 바로 이 시비에 새겨져 있는 시입니다. 손곡은 이 마을에 살면서 동네 아낙네가 보리 베어오는 모습을 보며 이 시를 지은 것이지요. 저는 전에 손곡리에 직접 가서 이 시비를 보았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원래 손곡 시비를 보러 갔던 것은 아닙니다. 임경업 장군 추모비를 보러 갔던 것이지요. 임경업 장군도 어렸을 때 이 동네에 살다가 충주 달천으로 이사가 갔거든요. 그래서 임장군 추모비를 보는데, 근처에 또 하나의 비가 있어, 무슨 비인가 하며 갔더니 바로 손곡 시비였던 것입니다. 답사의 또 다른 묘미는 바로 이렇게 뜻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입니다.

 

불우했던 시인 손곡 이달. 가난한 백성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던 시인 손곡 이달. 마지막으로 손곡이 불일암의 인운 스님에게 보낸 시 한 편 더 감상하며 글을 마칩니다. ‘불일암’이라 하니 법정스님이 생각나는데, 인운 스님이 계시던 불일암이 법정스님이 계시던 그 불일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寺在白雲中(사재백운중) 흰 구름 가운데에 절이 있어

白雲僧不掃(백운승불소) 스님은 흰 구름 쓸지 않네

客來門始開(객래문시개) 객이 와서 문을 열어보니

萬壑松花老(만학송화노) 온 골짜기마다 송홧가루 날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