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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머니 캐도 커피는 역시 맥심이 조타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 4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대정읍 모슬포 레이더기지를 내려와서 유명하다는 제주 보말 칼국수 식당을 찾았다. 아버지는 국수를 무척 좋아하셨다. 밥은 적은 밥공기로 한 그릇 이상 드시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국수는 무척 사랑하셨다. 특히나 막 끓여낸 소면이나 칼국수는 제법 큰 그릇에 드려도 마다하지 않고 다 비우시곤 했다.

 

제주에서는 갯바위에 붙어있는 작은 소라 종류를 보말이라 부른다. 그 알맹이를 빼내어 참기름에 마늘이랑 같이 넣어 잘 볶다가 보말 삶은 물을 부어 다시 한번 끓인 뒤국수를 넣어 끎인 것을 보말칼국수라 부른다. 처음 드시는 것이지만 차림이 국수이다 보니 아버지는 국물까지 제법 많은 양을 비우셨다.

 

내가 아버지께 무슨 음식을 사 드린 것이 몇 번이었나 생각해봐도 그다지 많이 떠오르진 않았다. 국수를 비우신 아버지는 커피를 찾으셨다. 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커피는 일명 달달이 라고 부르는 다방커피다.

 

한국전쟁 당시 보급계 이등중사를 하셨던 내 아버지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커피를 처음 맛보셨다고 했다. 커피에 설탕과 전지분유가루를 타서 마시면 그것이 그리 맛있으셨다고 늘 말씀 하곤 하셨다. 당신의 방 큼지막한 소파 옆에는 늘 맥심 모카골드 스틱커피와 설탕그릇, 그리고 전기포트를 비치하고 지내셨다.

 

주무시다 새벽에 일어나셨을 때,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시다가도,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의 전용 머그컵에 달달한 커피를 타서 드셨다. 커피는 달아야 한다는 것이 커피에 대한 내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머니머니 캐도 커피는 역시 맥심이 조타...”

다른 커피를 드셔 보시길 권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늘 이 광고 문구를 읊으며 그리 말씀하셨다.

 

 

제주 여행 때도 아버지에게 정말 맛있는 커피를 사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제주도 최남방 커피볶는집> 이라고 쓰여 있는 커피전문 카페로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마치 태풍이 오는 것처럼 비바람이 카페의 커다란 통 유리창을 몹시도 두들기고 있었고, 그래도 커피를 볶고 내리는 카페 안의 냄새는 무척 좋았다. 나는 비 오는 날 커피 향은 정말이지 향수 그 자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날 그 카페 가득 풍겨 나오던 커피향기는 내가 아버지와의 여행 내내 생각나는 그런 좋은 기억이었다.

 

아버지에게 갓 내린 원두커피의 맛을 보여 드리려던 내 계획과는 다르게,

잘 내린 과테말라 안티구아 커피에 우유와 설탕을 잔뜩 부어 드시며,

“맥심보다 못하다...”라고 하셨다.

허탈했다.

 

구십 년을 사신 아버지에게 무언가 새로운 경험이란 것이 그다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느껴가는 여행이었다. 당신이 살아오시며 겪어낸 그 수많은 일들 속에 지금 겪고 있는 경험들이 신기하다거나 새롭다고 하지 못할 만큼, ‘당신의 인생은 그만큼 험난하셨구나’라는...

 

결국 숙소인 호텔에 들어가면서 편의점에 들러 <맥심모카골드>와 설탕 한 봉지를 사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