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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고모와 아버지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 5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살아남은 아버지의 형제는 삼형제가 전부였다. 아버지보다 서너 살 위에 귀선이라는 이름의 누님이 한 분 계셨는데, 살아 계셨다면 내게는 큰 고모님이 되시는 분이셨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전세가 많이 불리해지자,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을 동남아로 끌고 갔고, 징병으로, 노역으로, 그리고 위안부로 수없이 잡아갔다.

 

당시 내 고모는 열일곱 살이었는데, 일본의 어느 방직공장에 끌려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시켰는지, 폐 속에, 실 먼지를 가득 넣고서 한국으로 돌아와 숨도 못 쉬고 컥컥거리시며 살다가 스물네 살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

 

그 어린 고모가 가지고 온 것은 폐 속의 실 먼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겨우 미음이나 먹을 줄 아는 갓난쟁이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홀연히 노름꾼 아비와 원한 만 가득한 어미가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부터인가 내 아버지는 할아버지 기일을 없애 버리셨다. 당신의 어머니와 단 사흘 차이 나는 기일을 없애 버리시고, 할머니 기일에 그저 밥 한 그릇 떠 놓으시는 것이 다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 할아버지 제사를 맞아 작은아버지와 사촌들도 다 모였는데, 갑자기 어디로 나가시더니 화투 한 모를 사서 오셨다. 그리고는 할아버지 국그릇을 비우시고는 그 화투를 국그릇에다가 다 쏟으시더니,

“영감은 밥보다 자식보다 노름을 더 좋아했으니 밥도 국도 줄 것 없다. 이거를 더 좋아할끼다!”

하셨다. 나도 삼촌도 다른 가족들 그 누구도 그런 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