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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10분이 주는 자유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7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윤재윤 변호사는 수필집 《잊을 수 없는 증인》에서 ‘10분이 주는 자유’에 대해 얘기합니다. 재윤 형이 예전에 인천지방법원에 근무할 때입니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로 출퇴근을 하는데, 운전시간이 1시간에서 1시간 10분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윤 형은 운전시간을 1시간 이내로 줄이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씁니다. 이렇게 1시간 이내로 줄이려다 보니 앞차가 좀 느리게 갈라치면 슬그머니 짜증도 났고요. 그리고 출근시간이 1시간을 넘긴 날은 하루 출발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렇게 출퇴근 전쟁을 벌이던 어느 날 출근길에는 남동 인터체인지에서 차들이 꼼짝하지 않습니다. 앞쪽에서 충돌사고가 난 것입니다. 어쩌겠습니까? 나들목(인터체인지)에 들어섰으니 차를 돌릴 수도 없고, 차를 들고 사고 지점을 넘어갈 수도 없고... 이때 재윤 형은 창문을 내리고 길가를 바라다봅니다. 글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 재윤 형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창문을 내리지 않았을까요?

 

그때 재윤 형의 눈에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이 들어옵니다. 코로는 싱그러운 풀냄새가 들어오고요. “여기에 이렇게 꽃이 많이 피어있었던가?” 평상시에는 1시간 목표를 위한 운전에 집중하느라고, 길가의 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때 재윤 형의 머리에 의문이 떠올랐답니다. 직접 재윤 형의 얘기를 들어보지요.

 

“누가 출근 시간을 1시간으로 정해놓은 것일까? 1시간과 1시간 10분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10분 더 걸린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 나는가? 순전히 내 마음이 1시간을 고집했을 뿐이다. ‘1시간’이 시간 관리의 효율상 심리적인 마지노선이었던 것이다. 10분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날 이후 1시간을 고수하려는 출근길의 긴장은 사라지고 도로 주변 풀과 나무를 바라보며 즐길 여유가 생겼다. 10분의 포기가 출근길 전체를 바꾼 셈이었다.

 

재윤 형의 글을 읽자니, 《힘》이라는 책에서 틱낫한 스님이 운전하다가 정지표지를 만나면 이렇게 하라며 말씀하시던 것이 생각납니다.

 

 

“편안히 뒤로 기대앉아서 20~30초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지금 이 순간에 도착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이 호흡과 하나 되면 운전은 더는 고통이 아니라 즐겁고 평화로운 수행이다. (가운데 줄임) 이제 당신은 빨간 불을 볼 때마다 평화로워질 수 있다. 이전에는 그것들을 보면 빨리 가야 한다는 마음에 조바심이 났지만, 이제는 그저 느긋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입가에 웃음까지 띨 수 있다.”

 

저도 예전에는 교차로를 지날 때면 ‘불 바뀌기 전에 빨리 지나가야지’ 하며 조바심을 냈는데, 지금은 불이 바뀌면 팃낙한 스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몸을 풀 수 있는 시간이 왔구나’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고개도 돌려보고, 주위도 돌아봅니다.

 

그리고 재윤 형이 인천지방법원 출퇴근 운전 얘기를 하시니, 저도 수원지방법원에 근무할 때 운전하던 생각이 나는군요. 퇴근하여 경부고속도로로 올라서면 항상 양재나들목부터는 차가 정체됩니다. 차가 많이 밀릴 때면 달래네고개 넘기 전부터 정체되고요. 요새는 슬기말틀(스마트폰) 앱을 보고 차량이 얼마나 정체되는지 알 수 있는데, 그때는 고속도로 교통상황판을 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차가 달래네고개부터 밀린다고 하면 분당으로 빠져나가 청계산 옛골로 와 고속도로 옆길로 하여 양재까지 가지요. 그리고 운전하면서 바로 옆의 고속도로에 밀려 있는 차들을 보면, ‘자식들! 고생이 많구먼!’ 하면서 휘파람 불며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그렇게 휘파람 불 준비를 하면서 고속도로를 쳐다보는데, 어?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입니다. “아뿔사! 속았구나!” 이날은 업데이트가 안 된 고속도로 교통상황판을 믿다가,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게 된 것이지요.

 

또 재윤 형이 마음을 편히 하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고 하시니, 저도 얘기하고픈 것이 있네요. 저는 예전부터 하루 12,000보를 걷기 위해 운전대를 놓았습니다. 아침에 집에서 출발하면 손목에 찬 시계가 자동으로 걸음 수를 기록하는데, 사무실 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등으로 올라가는 걸음 수를 고려하여 하루 목표를 12,000보로 잡은 것이지요.

 

 

그렇기에 약속 등으로 어디 갈 때도 웬만한 거리는 걷습니다. 그렇게 거리를 걷다 보니 전에 차를 타고 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더군요. 보도블록 사이의 그 좁은 틈으로 비집고 머리를 내민 작은 풀꽃도 보이고, 무심코 먼 데 하늘을 바라보는 노점상의 얼굴에도 눈이 가고... 그렇게 걷다가 눈에 꽂히는 풍경이 있으면 슬기말틀 사진기를 꺼내어 찍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쫓기는 것 같던 마음도 여유로워지는 것 같더군요.

 

재윤 형이 말하는 10분이 주는 자유! 여러분도 그 자유를 누려보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