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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양팔이 없는 소녀를 훌륭한 화가로 키우다

《학연가연(學緣佳緣)》, 장충식 지음, 노스보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8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장충식 총장님께서 – 총장을 그만두신 지 오래되셨지만, 저는 지금도 총장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 《학연가연》이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1967년에 36살의 나이에 전국 최연소 대학 총장이 되어 평생을 단국대 부흥을 위해 애쓰셨던 총장님께서 2018년 7월부터 1년 반 동안 학교 누리집을 통해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내신 것입니다. 《학연가연(學緣佳緣)》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평생을 교육자로 사시며 맺은 인연 가운데 아름다운 인연을 글로 쓰신 것이지요.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총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세월의 무게를 더욱 실감하면서 나의 옛일을 반추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 시간 속에서 나와 배움터이자 삶터인 대학에서 맺은 인연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대학에서 맺은 인연들 가운데 선하고 좋은 매듭을 맺은 일들을 정리한 글이니 《학연가연(學緣佳緣)》으로 연재 제목을 정했다."

 

 

총장님께서 이 책을 제게 보내신 것도 제가 총장님과 한국예술종합대 최고지도자과정(CAP) 8기를 같이 다닌 인연이니, 저도 일종의 학연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에서 총장님은 모두 20꼭지의 글로 사람들과의 인연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과의 인연 이야기도 있고, 일반인들은 잘 모를 평범한 사람들과의 인연 이야기도 있습니다.

 

박 대통령과는 단국대를 종합대학으로 승격할 때 박 대통령이 밀어준 인연, 그에 대한 보은의 생각으로 다른 대학 총장들이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스스로 나서 파월부대 대학생 위문단 단장으로 월남 격전지를 방문하고, 새마을운동에도 단국대가 앞장서서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충남 청양군 장곡 마을을 부흥시킨 일 등을 말씀하십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총장님과 동갑인데, 총장님은 서울대 럭비부에 노대통령은 육사 럭비부에 있으면서 운동으로 우애를 다지셨네요. 나아가 이런 인연이 나중에 총장님이 서울 올림픽 유치, 남북체육협상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것으로 이어졌구요.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과는 이희호 여사가 처녀 시절 총장님 선친이신 범정 선생께서 유학자금을 지원하신 것으로 먼저 인연을 맺고, 다음엔 호형호제하던 김상현 의원을 통해서도 인연을 맺으셨더군요. 그리고 눈치 빠른 분들은 박원순 시장과의 인연은 짐작할 텐데, 박시장이 서울대학교에 다니다가 데모로 퇴학당했을 때, 총장님이 안기부의 경고도 무시하고 박시장을 학생으로 받아들이면서 인연이 되었구요.

 

그런데 총장님의 인품에 감동하게 되는 것은 이런 유명인들과의 인연보다 평범한 사람들과의 인연입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과의 가연을 소개하겠습니다. 오순이 교수와의 가연입니다. 45년 전쯤인가? 하루는 총장님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화면에 초등학교 4학년생이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나오더랍니다. 그런데 총장님의 눈길을 끈 것은 그 소녀가 발가락에 붓을 끼고 그림을 그리더라는 것이지요. 사고로 양팔을 잃어버린 소녀인데, 그 소녀가 바로 자라서 교수가 된 오순이입니다.

 

총장님은 그 소녀가 의연하게 발가락으로 제 뜻을 펼치는 것이 놀라웠답니다. 그러면서 놀람과 감동은 이내 걱정으로 변했습니다. 화면으로 보면 가정 형편이 넉넉해 보이지도 않던 저 연약한 아이가 언제까지 저 가상한 뜻을 지킬 수 있을까 걱정되었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오순이가 고교 졸업할 때까지 좋은 화가의 개인 지도를 받도록 후원을 계속했고, 단국대 동양화과에 지원하도록 했답니다.

 

그런데 총장님은 자신이 얘기하지 않아도 오순이 실력이면 당연히 합격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불합격이었습니다. 알아보니 미술대 학장이 두 팔도 없는 학생이 무슨 그림을 그리냐고 면접에서 F 등급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노로 머리는 뜨거워졌지만 차마 성미 그대로 화를 낼 수는 없어, 공식 회의석상에서 점잖게 말씀하십니다.

 

“그 학생은 전국 고등학교 학생 미술대회에서 1등을 해서 홍익대가 4년 장학금을 주고 특기생으로 선발하려던 학생입니다. 그런 젊은이를 내가 공부하는 데 뒤따를 여러 가지 난제를 풀어주고, 장차 외국에 유학까지 보낼 생각으로 우리 대학에 원서를 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학장님이 장애에 대한 선입견으로 입학을 거부했으니, 당신이야말로 교육자로서 능력이 의심스럽고 통찰력이 부족한 교수님이라 생각합니다.”

 

총장님이시니까 점잖게 이렇게 말씀하셨지, 저 같으면 벌써 육두문자가 나왔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총장님은 오순이 양을 합격시키고, 두 팔이 없는 오순이 양을 도와줄 수 있도록 순이 양의 언니를 단국대 직원으로 특채합니다. 오순이는 총장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1990년 학과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총장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순이를 대만으로 유학 보냅니다.

 

그리고 총장님의 오랜 친구인 대만의 저명한 화가 리치마오 교수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리치마오 교수는 오순이를 자신의 집에서 기숙시키며 2년 동안 대만 중화미술원에서 교육을 받도록 해줍니다. 이후 오순이는 중국 항저우의 국립 중국미술대에서 공부하고, 산수화 분야를 전공한 한국 유학생으로서는 중국 최초의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라는 기록까지 세우고 귀국합니다. 그리고 2004년부터 모교인 단국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총장님의 따뜻한 마음씨가 두 팔이 없는 장애소녀를 한국의 훌륭한 화가이자 교수로 길러내신 것이네요.

 

참 마음이 따뜻한 멋쟁이 총장님이시지요? 책 머리말에서 총장님은 자신이 대학의 교수, 총장, 이사장을 거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소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애정’입니다. 이런 애정이 오순이 교수와 오순이 교수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던 많은 사람과의 가연을 맺게 한 것입니다. 그런 가연을 일일이 소개하고 싶으나, 벌써 글이 많이 길어졌네요. 할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여기서 줄입니다. 총장님! 인생의 사표로서 존경하는 총장님! 당신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