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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다시 부활의 노래를!

배려와 사랑이 우리를 위해 땅속에서 부활한 곳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5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계절이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접어든 요즈음에 우리의 산하는 푸르기 그지없다. 온갖 봄꽃을 피워 사람들의 눈과 코, 그리고 마음까지 상쾌해진 지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나뭇잎은 갈수록 짙어져 저마다 생명력을 뽐낸다. 나무 사이 숲에 사는 동물들도 생명의 기운이 다시 살아난 기쁨을 신나게 노래하고 있다.

 

필자가 매일 가는 집 뒤의 북한산 둘레길도 예외일 수 없고, 어떤 면에서는 다른 숲의 모범이라고 할 정도로 수풀이 우거지고 뻐꾸기와 찌르레기, 까치와 까마귀, 그리고 가슴의 체증을 내려주는 딱따구리의 부리가 내는 연발총 소리가 녹음 사이에서 들여오고 있어 산책길은 그야말로 눈과 귀와 마음의 복을 잔뜩 누리게 하는 원천이다.​

 

지난가을 길가 비탈에 비스듬히 엎어져 있던 작은 석물이 동네에 사시는 분에 의해 문인석으로 벌떡 일어나서 둘레길을 도는 사람들에게 밝은 미소를 늘 보여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 그 문인석도 이 둘레길 8구간의 명물로서 점차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일반 문인석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밝고 천진스러운 미소가 이 돌을 다듬은 우리 어느 선조의 마음처럼, 밝고 포근한 민초들의 마음을 잘 드러내 주었기 때문이리라.​

 

그 문인석 옆에 얼마 전에 작은 팻말이 세워졌다. 부활비라고 했다.

 

 

현대판 비석은 돌이 아니라 단단한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거기에는 북한산 둘레길 8구간 구름정원 "길옆의 아름다운 부활"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이 글이 블로그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독자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지난해 가을에 이 문인석이 다시 살아난 이야기를 써서 필자의 블로그와 어느 신문에 올린 적이 있는데 아마도 이 문인석을 다시 세운 분이 그 사실을 더욱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그 부활의 기쁨을 오랫동안 같이 하고 싶어서 이 조그만 표지판 겸 비석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때의 부활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무릇 생명이 죽었다가 살아나면 그것을 부활이라고 부를 것이다. 생명이 아닌 무생물의 경우는 어떤가? 돌이나 나무나 금속이나 생명이 없는 것이 마치 죽은 것처럼 묻혀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오면 그것도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돌이나 금속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다가 그것이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그것은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것은 분명 부활일 터이다"​

 

이렇게 부활의 의미를 정의한 글에서 필자는 문인석이 서 있는 북한산 둘레길의 8구간부터 10구간이 예로부터 궁궐에서 근무한 내시, 나인, 궁녀들의 무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 그 무덤들이 세월이 지나가면서 돌보는 사람이 없어 무너졌고, 거기 세워진 석물들은 깨지거나 흩어져 흙에 묻혀있었는데, 이번에 나온 문인석은 그동안 지표의 흙에 살짝 덮여 비탈길에 거꾸로 엎어져 있다가 동네 주민인 한 남자분의 노력으로 다시 서게 된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그 뒤 지나가는 분들이 이 문인석 석상(石像)을 아주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하는 당연한 기쁨이었다. 석상이 다시 일어선 다음 날 석상 앞 옷자락에 사탕이 한 봉지 올라가 있었고 그다음 날에는 물과 대추 등이 올라가자, 석상 앞에는 작고 평평한 돌상(石床)이 마련되었고 사람들은 수시로 그 돌상 위에 이런저런 사랑의 선물을 올려놓더라는 것이다.

 

지나가는 분들이 석상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을 그렇게 표시하는 것인데, 그 전에 이 문인석이 어느 사람의 무덤을 위해 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젠 이 둘레길의 마스코트로 부활해서 이 길을 걷는 모든 분에게 밝은 웃음으로서 평안과 위로와 기쁨을 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 사실이 다시 그 옆에 세워진 작은 팻말 겸 비석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명 부활의 기쁨이 전해지지 않는 곳이 있다. 문인석이 있는 곳에서 몇십 미터 떨어진 둘레길 옆에 지난가을 이후 이곳에 만들어진 작은 돌탑을 둘러싼 신경전이 여태껏 계속되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난가을, 이 계곡에 대한 사방작업이 끝난 뒤에 계곡 옆 언덕받이에 누군가가 작은 돌탑을 만들었는데 며칠 후에는 누군가에 의해 그게 무너져 있었고 그게 다시 세워졌다가 며칠 뒤 무너지는 일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가 바뀌면 해결될까 했지만, 올해에도 여전히 세우고 부수고 하는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돌탑을 쌓는 분은 왜 이렇게 부수려 하느냐고, 이러면 당신의 운명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성 글을 써서 걸어놓기도 했는데 그다음 날 보면 경고장이 땅에 떨어지고 돌탑은 다시 무너져 내려 있다. 날마다 둘레길을 돌며 이 갈등을 보아야 하는 우리들의 마음도 이 때문에 참으로 아프다.

 

 

 

 

다만 이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돌탑은 원래 길가에는 하나만 만들었고, 조금 안으로 들어간 계곡 옆에도 또 만들어놓아 7개나 되는데 그것은 그대로 있고 큰길 가의 것만 무너지고있는 것이다. 큰길 가의 것도 한때 두세 개나 만들어놓기도 했는데 그렇게 만들어놓으면 곧 허물어지곤 했다.​

 

왜 이런 현상이 계속되는가? 아니, 길가에 조그만 돌탑을 세우는 것이 큰 문제가 되거나 어느 분에게 몹시 기분 나쁜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왜 굳이 무너트리려 하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과정을 반년 이상 지켜보아야 하는 필자로서는 세우는 분과 부수는 분, 두 분 처지에서 차례차례 생각해보게 된다.

 

먼저 돌탑을 세우는 분은 이렇게 길옆에 돌을 세우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라고 물으실 것 같다. 과거 우리는 전통적으로 마을 입구나 길 어귀에 서낭당(성황당)이 있고 거기에 돌을 모아서 위로 쌓아놓고 거기에 새끼줄을 치기도 하고 장승을 세워 이정표와 함께 길을 다니는 분들의 평안을 빌었는데 이 돌탑이 그것과 다를 까닭이 없다.

 

또 무슨 가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닌 만큼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안도 아니니 길옆에 작은 돌탑을 세워놓고 같이 보고 싶다는 것인데 본인이 보고 싶지 않으면 안 보면 그만인데도 그걸 꼭, 그것도 남이 해놓은 것을 부수어야 하는가? 다른 분들은 아무 말도 없고 좋게 보고 지나가는데 왜 그분은 이 돌탑을 좋게 봐주지 않고 매번 부수어, 이곳에는 세우지 말라는 거센 항의를 그렇게 하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반면 부수는 분의 처지에서 생각해보자.​

 

맨 처음 이곳 계곡의 사방공사 이전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때에는 물길 속에 작은 돌탑이 꽤 많이 세워져 있었고, 그것에 대해서 물길을 막을 수 있어서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고 계곡이 말끔하게 정비된 이후에 다시 골짜기 옆에 돌을 쌓아서 경관을 나쁘게 하더라는 것이다. 엄연히 은평 구청에서 나와서 공적으로 다듬어놓은 경관인데 거기에 불교의 돌탑 같은 것으로 세우려 하기에 맨 처음에는 그냥 지켜보는데 곧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니 이것은 안 되겠다고 탑을 허물었는데, 곧 저주를 담은 것 같은 경고문이 달리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사람들이 다니는 이곳에는 세우지 말라는 뜻, 그 뒤 사람들에게 잘 안 보이는 곳에 세운 것은 손을 대지 않고 존중해 준다는 의사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통해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경고문구가 기분이 나쁘고 해서 이것은 계속 그냥 둘 수가 없다. 그래서 나름 공개되는 쪽에는 세우지 못하게 계속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어쩌면 이 돌탑들을 부수는 분은, 탑이란 개념이 불교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이 돌탑을 불교적인 방식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독교에서는 나 외에는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는데, 그래서, 탑을 일종의 우상숭배로 보고, 그것을 못 하게 하자는 것은 아닐까? 이분은 그래도 안쪽에 서 있는 7개의 돌탑은 건드리지 않는 것을 보면 당신이 그게 좋다고 열심히 만드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으니, 안쪽의 것은 허물지 않고 놔둘 터이니, 바깥에는 여러 개를 세우지 말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탑을 부수는 분이 이런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생각에서 시작되었든 간에 돌탑은 불교의 탑과는 기본 출발점이 다르기에 굳이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해석할 일은 아니다. 다만 쌓는 분도 나름대로 전통적인 서낭당 생각을 가지고 좋은 뜻에서 하시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부수는 분으로서는 쌓는 분의 생각을 좀 배려하고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돌탑을 서낭당 개념으로 봐준다면 이 돌탑은 그저 가정과 가족과 이웃과 마을의 평화와 소원을 전하는 작은 마스코트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의 상식적인 기준으로는 충분히 인정할만 하다고 하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서낭당(성황당)은 예전 우리 한국인들의 마음의 제단이었다고 얼마 전에 돌아가신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그를 유명하게 한 저서 《흙속에 저 바람 속에(1984)》에서 말했다;​

 

여기에 초라하기는 하나 그지없이 은밀한 한국인의 제단이 있다. 길 가던 사람들은 누구나 발걸음을 멈추고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마음속의 소망을 빌어왔던 곳이다. '아들을 낳게 하옵소서', ' 세끼 밥이나 잘 먹게 하옵소서', '장터로 나간 서방님을 편히 돌아오게 하소서', '들곡식이 잘 여물도록 하소서', '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고 '잠들게 하소서'...

 

그들은 이렇게 크고 작은 소원들을 서낭당 장승들에게나 빌어 바칠 수밖에 없었다. .... 우리는 거칠고 굳은 그 손으로 바친 '돌덩어리'에 참으로 많은 사연이, 짙고 짙은 기구(소망)가 배어있음을 알고 있다. 누가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었던가? 오다가다 만나는 그 장승 밖에는 누가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 사람이 있었던가?

 

 

이렇게 보면 둘레길 입구의 작은 돌탑은, 오늘날 멀리 마을 입구의 서낭당이 없어진 지금, 변형된 형태의 서낭당으로 압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돌들이 모여서 작은 탑을 이룬 것은 곧 예전 서낭당의 현대적인 부활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굳이 무너트리고 부수어 못 하게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4월에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는 죽령길을 걸어서 넘어간 적이 있는데 거기 산길 모퉁이에도 저렇게 돌탑이 서 있는 것을 보면 길가의 돌탑은 그런 정도의 의미로 보면 될 것 같다.​

 

자 이제 긴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문제에 관한 한은 그것을 보는 우리 일반인들의 생각도 중요한데, 우리가 이 돌탑을 불교식의 우상숭배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부수는 분이 돌탑을 그렇게 계속 부수는 것을 이해하고 손뼉을 쳐주기가 어렵다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적어도 입구에 하나쯤은 돌탑을 살려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돌탑을 쌓으시는 분에게는, 어쨌든 종교적인 의미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싫어하는 분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입구에 한 개 정도만 상징적으로 세우고, 더는 자극하지 않는 것은 어떨까? 뒷쪽에 7개의 돌탑은 무너지지 않고 있으므로 그것을 이분의 배려라 생각하시고, 쌓는 분도 그 점 배려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야 지난가을부터 근 1년 가까이 지속되는 쌓고 부수고 하는 돌탑 관련 긴 마찰이 정리될 수 있지 않겠는가?

 

 

북한산 둘레길 8구간은 구름정원길이다. 이곳은 땅 위만이 아니라 땅속에도 수많은 옛사람들의 혼과 마음이 묻혀있고 살아나고 있다. 이 모든 마음은 지금의 우리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삶이란 금방 일어났다가 흩어지는 구름이요, 흘러가는 물이다. 그러니 아웅다웅 싸우지 말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부여받은 삶을 의미있게 사세요. 지금 생명을 받아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데, 그 복을 모두가 서로를 위해 마음을 쓰면 당신의 삶은 의미가 있고 더 큰 복을 받을 것이요.... 그런 말을 우리들에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곳은 우리들이 걸어야 할 진정한 삶의 길인 배려와 사랑이 우리들을 위해 땅속에서 부활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자연과 하늘의 섭리,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알고 우리의 생각의 사이클을 맞추는 동조(同調)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산 둘레길에서 사랑의 부활 노래를 다시 부르자.

 

덧붙임) 오늘 아침에 보니까 앞의 탑이 두 개가 서 있다. 이상해서 뒤쪽으로 가보니 7개의 탑 중 절반이 무너져 있었다. 다시 갈등이 커지고 있는 것인가? 여름 더위도 오는데 양보와 배려의 마음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