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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사람

남에게 관심을 받고자 하면 나도 관심을 주어라
[산사에서 띄우는 편지 7]

[우리문화신문=일취 스님]  초봄부터 산과 들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고 진다. 시기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는 꽃 잔치가 요란하다. 도심 길가에도 어느 한 곳 빈 데 없이 깔끔하게 다듬어진 꽃길이 행인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꽃과 사람! 꽃과 사람의 관계는 깊은 것임을 말해주는 것일까? 꽃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인지, 사람이 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물음에 답을 내리기가 묘연(杳然)할 지경이다. 하지만, 분명 사람이 꽃이 좋아 꽃을 탐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꽃의 처지에서는 꽃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꽃이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환심을 사고, 사랑을 얻기 위해서 아름답게 핀다고 보기보다는, 꽃들은 그들만의 꿈을 가지고 독특한 세계를 꾸미며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생각과 관계없이 그들만의 자유로운 세계에서 어느 곳 가리지 않고 다채로운 형상과 향기 그리고 아름다움을 뽐내며, 자연과 순응하며, 생명의 생존법칙에 따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보고 안 보고 상관없이 ‘아름답다’, ‘추하다’라는 분별과 차별에도 휘말리지 않고 그 어느 곳에서나 다소곳이 피고 지며 세상을 그윽한 향기로 품어주며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하게 꾸미며 살아갈 뿐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속셈은 다르다. 꽃이 어떤 반응을 하든 상관없이 그들 세계에 끼어들어 참견하고 관여하고 소유하려 하고 있다. 또 꽃을 옆에 두고 꽃처럼 아름답게 살기를 원한다. 사람이 꽃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꽃을 불러낸 것이다. 그런 다음 꽃을 내 것으로 소유하려는 욕망이 지배적이지만, 꽃이 진정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알 길 없고, 인간의 상상과 추측이나 동화 속에 그려지는 교감일 뿐이다.

 

이러한 특성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도 유독 흔하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상대방이 싫고 원하지도 않는데도 그 사람의 생각과 관계없이 자기 마음대로 월권행위를 하여 타자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만 보더라도 인간은 자기중심적 생각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하기에 사람은 누구나 다른 존재들이 항상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기를 바란다. 또 소소한 일에서부터 모든 일들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기 위주의 원칙과 자기 생각 방식대로 되기를 원하는 편이다. 만약 자기 생각에 벗어나면 그를 경멸하거나 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간 세상에는 미움과 다툼과 전쟁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나약하다. 그리고 갈대와 같다고들 한다. 어느 때는 혼자 살 수 있을 것처럼 큰소리치다가도 자기를 바라봐 주고 위해주는 자를 찾기 마련이다. 세상은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합체이기 때문이다. 사람뿐만 아니고 세상 모든 유정물이 다 그렇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다. 불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此有故彼有 (차유고피유)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此生故彼生 (차생고피생) 이것이 생겨남으로 저것이 생겨나고.

此無故彼無 (차무고피무)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此滅故彼滅 (차멸고피멸)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사람은 이러한 법칙 속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연기(緣起, 모든 현상이 생기고 없어지는 법칙) 관계에 얽힌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을 혼자 독불장군처럼 살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는 것은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더구나 인간은 누구에겐가 관심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

 

주위의 관심이 단절되고 남의 관심을 얻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무기력, 우울증, 결국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정신적 현상을 ‘뮌하우젠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이목을 끌거나 관심을 받기 위해 꾀병 등의 거짓말을 남발하는 병리적 환자로 가장성 장애라 부르고 있다.

 

이처럼 남에게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고 한다면, 나도 남에게 관심을 주고 베풂에도 인색하지 않을 때 그 여파가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것이 분명하건만 그렇지 않는다면 ‘뮌하우젠 증후군’ 같은 장애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옛말에 ‘德不孤必有隣(덕불고필유린)’란 말이 있다. 곧 내가 베푼 만큼 많은 이웃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뭇사람들은 ‘나 위주’의 집착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남에게 관심을 유도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건만, 결코 쉬운 일도 아닌 것 같다.

 

꽃에 견주면, 크거나 작거나 크게 다를 바 없이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로움과 거룩한 열매를 생산하는 데는 더 이상 차별과 분별이 없다. 인간도 순수한 심성(心性)은 본래 가지고 있지만 어쩌다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이기적인 생각과 인기몰이라는 선동적 발상과 전략적이고 차별적인 분별로 서로 간의 두꺼운 벽을 만들고 위화감을 조성하여 편을 가르고 있다.

 

당선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도 그렇다지만, 배우나 가수들은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그들은 팬들의 관심과 인기를 먹고 산다. 가수들의 출연료가 인기 등급에 따라 다른데, 요즘 최고 인기를 얻는 가수의 1회 출연료가 1억원이나 된다고 하니 서민들의 전세금과 맞먹는다. 그들은 팬들에게 노래로써 관심을 얻는다고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러한 특성이 없기에 무대 아래서 열심히 손뼉을 보내는 쪽에 설 수밖에 없다.

 

그다음은 몸소 행동으로 관심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대 위건, 무대 아래 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관심을 얻는다는 것은 인기몰이가 아니라, 들녘에 곱게 핀 들꽃처럼 담백하고 청순한 품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누가 그를 싫어하고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꽃은 아무에게나 자기 몸을 내어준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여러 행사장을 돌아보면 꽃바구니, 화환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꽃은 주최 측의 행사를 빛내주기 위해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성스러움과 부유함을 상징하고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그 탓에 세간에서는 어떤 행사나 기념일에 화환이 많이 들어오면 그날 행사 주인공의 위세와 덕망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행사는 촌각을 다투듯 진행되는 곳도 있는데, 행사에 사용되었던 꽃들은 행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 많던 꽃들은 쓰레기장으로 사라진다. 꽃을 아름답게 여길 때는 언제였고, 무심하게 버려질 때 그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 민요 ‘창부타령’ 한 대목을 보면.

 

한 송이 떨어진 꽃을 낙화 진다고 서러워 마라

한 번 피었다 지는 줄은 나도 번연히 알건마는

모진 손으로 꺾어다가 시들기 전에 내버리니

버림도 쓰라리거든 무심코 밟고 가니 긴들 아니 슬플소냐 (아래 줄임)

 

이렇게 꽃은 필요에 따라 순간 몸을 희생하는 1회 용품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꽃뿐만이 아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참혹한 전쟁사들을 돌이켜보면 그때그때 병사들은 전장에서 총알받이나 1회 용품으로 사용되었던 적이 수없이 많았다. 꽃을 한 번 쓰고 버리듯 인간의 마음은 수시로 달리하는 변질적인 생각들이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 항상 꿈틀거리고 있다. 그 때문에 관심을 주고 믿음을 주고 서로 죽도록 사랑하는 관계라 할지라도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마음이 변하여 멀어지고 서로 등 돌리고 원수같이 살아갈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이런 현상들은 한두 번 경험한 일들이 아니다, 역사 적으로도 서로 협력과 동맹을 약속해놓고도 매정하게 서로 적이 되어야 했던 사실들이며, 동족끼리 싸움도 수없이 많았다.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을 바탕으로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소설에서도 보듯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나의 삶을 타인에 의해 송두리째 도륙당한 사건들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너무 많다. 그 가운데 꽃이 피었다 지기도 전에 꺾이는 사실들이 너무 많았다.

 

꽃은 꺾일 때 꺾이더라도 언제나 우리에게 따뜻하고 포근한 전율을 가슴 깊이 채워주고 시든다.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점일 것이다. 꺾임이 있을지라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희생정신일 것이다. 우리 모두 꽃과 같이 산다면, 꽃과 같이 다른 이에게 훈훈한 전율을 전하고 자비를 베풀어 준다면 더없이 살기 좋은 사회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금강경(金剛經) 제33분.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세상을 떠나 적멸에 들다)의 귀절이다.

 

何以故 須菩提 如我昔爲歌利王 割截身體 我於爾時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하이고 수보리 여아석위가리왕 할절신체 아어이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무슨 까닭이냐 하면, 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사지가 갈기갈기 찢길 적에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었느니라.”

 

가리왕은 칼로 수행자의 몸을 베면서 말하기를 “아픈가?” “아프지 않다.” 가리왕은 수행자의 몸을 갈기갈기 찢으면서 물었다. “나를 원망하는가?” 수행자는 “나라는 아상(我相)이 본래 없거니 어찌 원한이 있겠는가?”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예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체를 외면하는 자들도 있지만, 봉사의 선행을 알면서도 선뜻 나설 선심(善心)이 생기지 않아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 용기 있게 당당하게 이익과 직업에 관계없이 남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선인(善人)들을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본다. 어느 한 편 사회를 어지럽히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사회를 정화하고 아름답게 꾸며 나아가고 있다. 꽃이 몸을 던져 우리에게 기쁨을 주듯 우리 곁에는 꽃과 같은 천사들이 있기에 오늘도 많은 사람이 악인(惡人), 선인(善人) 할 것 없이 더불어 기쁨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