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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우리가 타임캡슐에 담을 것은

세상을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기록으로 남겨야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7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94년 11월 29일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경내의 한 광장에서는 정도(定都) 600돌을 맞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일상을 길이 후손에 전해주자는 타임캡슐을 묻는 행사가 열렸다. 앞으로 400년 뒤 서울을 수도로 정한 지 1000년이 되는 해에 공개하자며 1994년 당시 서울의 삶을 전해줄 수 있는 기념품과 기념물 등을 축소하거나 실물 그대로 높이 2미터, 지름 1,4미터 크기의 보신각종 모양의 캡슐에 밀봉해 공원 한가운데에 묻은 것이다. 그리고 그 땅은 서울 천년타임캡슐광장이 되었다.

 

 

 

서울시 주도로 묻은 이 타임캡슐에는 벼ㆍ보리 등의 씨앗을 비롯해, 서울시 항공사진필름 2천 장, 우황청심환, 초중고 교과서, 숟가락, 버스 토큰, 1회용 라이터 등과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1면으로 장식된 신문의 마이크로필름 등 30년 전 당시의 우리 생활상을 나타냈던 문물들이 실물, 영상기록, 마이크로필름, 축소모형의 형태로 타임캡슐 안을 장식하고 있다.

 

실물로는 기저귀, 담배, 팬티스타킹, 남녀 수영복, 현미효소 등 건강식품, 신용카드, 부동산 매매 계약서, 주요 작물 씨앗, 피임기구, 인공심장, 상품권, 공무원 급여명세서, 자동차 면허증, 초중고 시험지, 무선전화기, 화투, 각종 복권 등이 수집되었고 축소모형은 우리별 1호, 94년도 시판 승용차, 전동차, 퍼스널 컴퓨터, 굴착기 등이 매장되어 있다.

 

CD. LD 등 영상기록에는 남녀 아동복, 남녀 한복, 각종 가정의례, 프로야구, 증권회사 객장, 용산 전자상가, 남대문시장, 백화점, 24시간 편의점, 구멍가게, TV 공익광고, 복덕방, 대통령 하루 일정, 오렌지족, 노래방, 씨름 등이 담겨 있어서 그야말로 1994년 서울을 중심으로 한 한국 역사가 실물로 담겨 있다고 하겠다.

 

 

서울에서의 타임캡슐광장 조성 이후 경상북도에서도 도(道)가 생긴 지 100주년을 기념한다며 2년 뒤인 1996년에 문경새재 제1관문 뒤편에 당시 경상북도내 23개시군의 정보와 기념물을 매장한 것을 필두로 1999년 대전광역시, 2001년 인천시, 2013년에 부산시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시도에서 타임캡슐을 제작해 묻는 행사를 가졌다. 중앙이나 지방의 관공서 행사와는 별개로 각 민간 회사나 단체들이 타임캡슐을 묻는 행사도 서기 2천 년을 앞뒤로 유행이 되었다.

 

각 지방이나 전국에서 타임캡슐을 만들고 묻고 하는 것은 지역 행정가들의 실적용 전시행사의 성격이 없지는 않지만, 현대 우리들의 삶을 미래에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워낙 역시기록이 영세하고 과거를 알 수 있는 유물들도 많지 않아, 당대의 우리들이 역사의 보존이라는 책무를 공감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된다. 1971년에 충남 공주의 무령왕릉에서 1천5백여 년 전 백제시대의 타임캡슐이 한꺼번에 우리에게 쏟아진 것처럼 아득한 미래의 우리 후손들에게도 이 타임캡슐이 후대들에게 대박이 되었으면 하는 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타임캡슐이 처음 시작된 외국의 경우 특별한 타임캡슐들이 많이 묻히고 이미 공개되기까지 해서 그야말로 시간의 증언자로서 역할하고 있다. 영국령 홍콩에서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을 맞아 1897년 묻어둔 타임캡슐이 1977년 개봉됐고, 1913년에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한 교회에 묻혔던 타임캡슐이 2013년에 개봉되었는데 안에는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신문, 잡지 부터 전화기, 옷, 모자 등 다양한 물품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월 스트리트 기업인연합'이라는 단체는 1914년에 미국 독립전쟁에서 뉴욕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미국의 새로운 상업허브로 태어난 것을 자축하기 위해 타임캡슐 안에 당시 기업인의 주요 관심사였던 차, 커피, 향신료 교역에 관한 실물과 각종 물품장부 등 자료와 실물을 담았는데 100년인 2014년에 캡슐을 열고 보니 100년전 그 날짜 뉴묙터임스가 있었다고 한다.

 

 

다만 기록성이 훼손된 사례도 있다. 1966년에 미국 센트레일리아에서 마을 창립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을 묻고 창립 150주년이 되는 2016년에 개봉 예정이었으나 마을의 석탄 광맥에 붙은 불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바람에 1984년부터 주민 대부분이 떠나 유령도시에 가까워진 데다 2014년에 개봉해 보니 캡슐 안에 물이 차서 내용물이 상당수 손상되었다고 한다.

 

1999년 5월25일 현대그룹은 창립기념일을 맞아 현대건설 임직원 4,500명의 목표와 미래상을 담은 타임캡슐을 계동 사옥 마당에 매설하였는데, 10년 뒤 개봉하려다 회사 사정 등의 문제로 2019년으로 미뤄졌고, 다시 회사 경영상의 변화 등으로 노사가 개봉을 미룬 상태가 아직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인천선학초등학교 재학생 1,983명과 교직원은 20년 뒤 나에게 쓰는 편지, 당시 내가 가장 아끼던 물건, 가족사진 등을 묻었는데. 20년 뒤인 지난해 7월 19일 교장과 학생 500여 명이 모여 타임캡슐을 개봉해 보니 빗물이 들어차 내용물이 대부분 훼손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 이제서의 타임캡슐 30년을 지나고 보니 기록성의 훼손 문제와는 별개로 이런 시도가 조금은 뜬금없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 든다. 6백 년, 천 년 전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흔적은 무기물의 형태여서 우리들이 보고 알 수 있으나, 요즘 우리들의 삶은 LD, CD롬이나 마이크로필름 등 사이버 공간으로 들어가 있어서 그 공간을 재생해 주는 미디어 기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문명의 변화추세를 보면 이런 것들이 과연 수백 년이 흐른 다음에도 남아있을 수 있는지를 걱정하게 된다. 경상북도의 경우 자료들을 컴퓨터 A플로피에 담았는데 수백 년 후에 이 기기가 남아있지 않으면 이런 자료들은 쓰레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30년이나 지금의 우리들의 삶의 유물들이 과연 100년 뒤, 200년 뒤 후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단순히 타임캡슐에 묻힌 껍데기의 삶보다도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관건이 아니냐는 것이다. 곧 1994년이란 시점에 묻은 유물만으로는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왔는가를 제대로 전해주기 어려워 보인다.

 

마찬가지로 타임캡슐 30년이 지난 2024년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가 얼마나 한심한가를 보라. 정치권은 맨날 권력의 정당성을 뒤흔들려 하고 이를 막으려는 일에 시간이 다 지나가고, 이른바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법안도 정쟁에 가려지다가 어느 날 이름도 내용도 모르고 무더기 통과되고 만다. 무슨 임명동의는 모조리 거부되고 있고, 또 거부권이 행사된 법률들이 다시 등장하고 또 재포장으로 등장해 사람들이 정치라는 말을 혐오하도록 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 세계 최저 출산율, 새계 최고의 자살율 등등 우리 사회의 면면을 보라. 이런 것들이 기록되지 않는 우리들의 타임캡슐이라는 것이 아득한 후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수백 년에 한 번 개봉 시점을 설정하는 것도 안일한 발상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옛날 왕조시대처럼 그 전 왕조의 역사를 다시 쓰는 정사(正史) 편찬이 없어지고 나날의 인쇄출판물들이 역사의 재료로 기록되는 시대인 만큼 굳이 너무 오랜 시간의 경과를 정하고 그때만의 유물들만 모아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그나마 기록이라는 것도 정치적인, 집단적인 이해나 유불리에 따라 변질되는 이런 시대에 말이다.

 

 

 

오늘 우리 사회를 풀 정치적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우리들의 삶은 팍팍하고 캄캄하고 힘들다는 호소를 들을 때면 천여 년 전에 조상들이 바닷가에 침향(沈香)을 묻는 의식이 생각난다. 고려시대 말 우리나라 온 나라 곳곳의 바닷가에서는 주민들이 함께 침향을 묻는 의식을 가졌는데, 당시 이것이 각박한 현실의 고통을 넘는 밝은 미래에의 기원의 뜻이 강했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묻은 타임캡슐도 우리들이 겪는 이런 어려움을 후손들이 더 겪지 말아야 한다는 염원을 받아 당대 현실에 대한 증언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대의 모습을 무작정 타임캡슐에 담아 전해주는 것보다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그것을 기록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남긴다는 식으로 인식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우리들이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을 바꾸고 정치인들의 역할을 바꾸고 정치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 한 해 우리들이 그리 원하던 국민을 위한 바른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한 해가 마감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시대의 타임캡슐 매설 30년이라는 시점을 맞이하게 되니 문득 우리 시대의 타임캡슐에 진정 무엇이 담기어야 하느냐는 문제를 고민해보게 된다,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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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인문탐험가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