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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아이들’, 송곡대 전국댄스경연대회를 열어

임세혁의 K-POP 서곡 7

[우리문화신문=임세혁 교수]

 

2012년 10월 6일 자 빌보드 차트 순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2위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8년 정도가 지난 2020년 9월 5일 방탄소년단의 <Dynamite>가 빌보드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우리랑은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빌보드는 이제 한국 음악 시장의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김치와 태권도만이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과거와 달리 K-POP이라는 우리의 대중음악으로 외국에 우리를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임세혁의 K-POP 서곡’은 아무것도 없는 맨땅 위에 치열하게 음악의 탑을 쌓아서 오늘에 이르게 만든 음악 선학들의 이야기다.

 

프랑스의 문호 장 콕토의 1929년 소설 《앙팡테리블》은 불어로 ‘Les Enfants Terribles’ 곧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소설 속에서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의미는 단절된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드는 아이들을 의미하지만, 실생활에서 ‘앙팡테리블’이라고 하면 체육계에서 신인이 무서운 실력으로 치고 올라올 때 쓰는 표현이다.

 

 

아마 예술계에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오랜 시간 동안 그 계통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어렸을 때는 굉장히 높은 확률로 선배들에게 “어린 게 무섭다”라는 소리를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고 그렇게 무서운 아이들이 치고 올라오고 이제는 어른이 된 왕년의 무서운 아이들이 그들을 가르치면서 업계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가고 발전하는 것일 것이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더위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추위를 막으려 외투를 꺼내던 11월 23일에 내가 학과장으로 있는 송곡대학교 K-POP학과가 주최한 ‘전국댄스경연대회’가 서울 중랑구에 있는 송곡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다.

 

 

시작은 상당히 즉흥적이었다. K-POP학과는 신설학과의 한계로 홍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이것을 타파할 전환점이 절박하게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서 학과 실용무용 담당 교수와 이야기 가운데 경연대회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사실 경연대회는 송곡대학교 총장님이 내가 임용되었을 때부터 줄기차게 한번 계획해서 진행해 보라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에라 모르겠다, 얘기나 한번 해보자’ 하고 안된다는 소리 들을 각오하고 들이밀었는데 “이사회는 내가 설득할 테니 한번 해보세요.”라는 총장님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게 10월 초의 일이다.

 

문제는 언제 개최할 것이냐였다. 학과와 학교 이름의 홍보 목적이 있는 행사였기 때문에 입시 모집이 한창일 때나 그 이후에는 의미가 없었고 가능한 한 빨리해야 하지만 준비 시간은 있어야 했기에 절충한 시간이 수능시험이 끝나고 다음 주 토요일인 11월 23일이었다.

 

한 달 하고 보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남은 상황이라서 엄청나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같이 이야기했던 실용무용 담당 조아라 교수와 각자 진행해야 할 부분을 나눠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시간이 없으니 내 염치도 같이 없어져서 평소에는 미안해서 부탁할 생각도 못 하던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맡겨버리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와중에 특별 심사위원으로 엠넷에서 방영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 출연한 댄스팀 ‘마네퀸’의 여은지(펑키와이) 심사위원과 <스트리트 맨 파이터>에 출연한 댄스팀 ‘위댐보이즈’의 김태현(바타) 심사위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경대학교 예술교육원 외래교수인 신도훈 심사위원까지 섭외가 완료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서운 속도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예전에 상업 공연이야 많이 진행 해봤지만 학교 행사를 대외적으로 진행해 본 적은 처음이라서 몇 팀이나 참가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간이 작아질 대로 작아져서 외부에다가는 학교에서 이때까지 해본 적 없는 규모의 행사를 하겠다고 큰소리 탕탕 쳐놓고서 조아라 교수하고 둘이 얘기할 때는 참가팀이 100팀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하고 우는소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참가 신청이 시작되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첫날에만 45팀이 참가 신청했고 그다음 날부터 날마다 20팀 정도가 신청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이건 몇 팀이 오는지를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니라 중간에 조기 마감 여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개인 부문은 조기마감을 했더니 이제는 주변에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추가 신청을 받아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정치인들이 청탁받는 게 이런 건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문제는 참가팀이 많으면 행사의 규모는 커지지만, 심사 시간이 길어지고 길어지는 행사에 참가자들이 불편을 느낄 수가 있다는 거였고 참가팀을 전체 조기 마감하면 심사 시간 나누기는 편하겠지만 전체적 행사 규모가 조금 작아지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그래도 처음 하는 행사인데 욕을 먹더라도 시끄러운 게 낫다는 생각에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받자고 결정을 내렸고 그렇게 참가팀 200팀에 총 참가 인원만 500명에 육박하는 경연대회가 확정되었다.

 

산 넘어 산이라고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어 커져 버리니 걱정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당일 참가 인원들의 주차 문제와 대기실 문제, 상장 인쇄 문제와 채점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행사 당일 참가자들 안전사고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이 심적 압박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해서 조아라 교수는 자다가 악몽을 꿀 정도였다.

 

결국 현장 진행요원들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내가 가르쳤던 한양여자대학교 실용음악과 제자 가운데 믿을만하고 사람이 많이 몰리는 입시 실기 고사 진행 경험이 있는 인원들을 골라 당일 진행 도움을 부탁했고 당일 인건비가 넉넉하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제자들이 고맙게도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그렇게 주사위가 던져졌고 결전의 11월 23일이 다가왔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