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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136. 조선시대 큰비가 계속 내리면 기청제를 지내

   

어제는 서울을 비롯하여 온 나라가 물폭탄을 맞아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으며, 큰 재산 손실이 났습니다. 천재지변이라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시대에도 큰비를 뜻하는 “대우(大雨)”라는 낱말이 무려 960건이나 검색이 되며, 비가 오지 말게 해달라고 하늘에 비손하는 “기청제(祈晴祭)”라는 낱말도 225건이나 보입니다.

우선 큰비가 왔다는 예를 보면 세종 9년(1427년) 큰비가 내려 경북 상주에서 산사태가 나 묻혀 죽은 사람이 7명, 떠내려간 집이 43채이고, 선산ㆍ의성ㆍ함창ㆍ군위에서 떠내려가 죽은 사람이 23명, 산사태 난 곳이 무려 6,779군데나 된다고 나옵니다. 지금도 큰비가 오면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아수라장이 되지만 그때는 더욱 처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큰비가 계속해서 내리면 기청제를 지내지요. 특히 벼가 익어갈 무렵 오랫동안 내리는 비는 임금이 크게 걱정할 정도인 것입니다.

태종실록 36권(1418) 8월 7일 기록에 “예조에서 아뢰기를, ‘백곡(百穀)이 결실할 때인 지금 오랫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리니, 8일에 기청제를 행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기청제를 하는 동안에는 성안으로 통하는 물길을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으며, 물을 쓰면 안 되는 것은 물론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되었습니다. 기청제 전날 밤에는 비를 섭섭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는 금지되는데 심지어 부부가 각방을 써야 했습니다. 또 이날 음(陰)인 부녀자의 시장 나들이는 일절 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祭主)도 붉은 옷차림이었습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았습니다. 마음속으로나마 굵은 빗줄기가 걷히길 간절히 빌며 이번 큰비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얼레빗 독자와 함께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