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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땡볕 논배미 피 뽑다 오신 아버지 / 펌프 꼭지에 등대고 펌프질 하라신다 / 마중물 넣어 달려온 물 아직 미지근한데 / 성미 급한 아버지 펌프질 재촉하신다 / 저 땅밑 암반에 흐르는 물 / 달궈진 펌프 쇳덩이 식혀 시린물 토해낼 때 / 펌프질 소리에 놀란 매미 제풀에 꺾이고 / 늘어진 혀 빼물은 누렁이 배 깔고 누워있다"
- 고영자 '펌프가 있는 마당풍경' -
무더운 여름날 펌프가 있는 마당 풍경이 수채화 같습니다. 아직은 더위가 남아있지만 일주일 뒤면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이고 머지않아 귀뚜라미 소리도 들려 올 것입니다. 아주 더 예전엔 우물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가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수돗물을 쓰기 전에는 한동안 집집이 마당 가에 펌프가 있었습니다. 펌프는 압력작용을 이용하여 관을 통해 물을 퍼올리는 기계입니다.
널찍한 마당 한켠에 놓여 있던 펌프는 값싼 철로 되어 있어 녹물이 많이 묻어났습니다. 그러나 마시는 물은 물론이요, 여름철엔 펌프로 달려가서 물을 퍼내어 등목을 했으며 아이들은 커다란 고무 함지 속에 물을 받아 땡볕 수영을 즐겼지요. 집안의 유용한 물 푸는 기계인 펌프는 물을 퍼 쓰고 난 뒤에는 물이 빠져버려 다음번에 쓸 때는 반드시 마중물을 넣어야 합니다. 멀리서 귀한 분이 오시면 마중을 나가는 것처럼 70년대 우리의 마당 한켠에서 우리에게 유용한 물을 제공하던 펌프는 마중물로 퍼 올려지는 신기한 요술단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