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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188. 자신의 머리털을 잘라 내조한 시인 삼의당 김씨

   

“달 하나가 두 곳을 비추는데
두 사람은 천 리를 떨어져 있네
원컨대 이 달 그림자 따라
밤마다 임의 곁을 비추었으면"

위 노래는 삼의당 김씨가 지은 ‘가을 달밤(秋夜月)’이라는 시입니다. 남편을 과거 시험장에 보내고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지요. 진안 마이산 탑사로 오르는 길목에는 삼의당 김씨와 남편 하립을 기념하는 큼지막한 부부 시비(詩碑)가 서 있습니다.

삼의당(三宜堂) 김씨는 1769년(영조 45) 10월 13일 전라북도 남원 누봉방(樓鳳坊)에서 태어나 같은 마을에 살던 담락당(湛樂堂) 하립과 18살에 혼인하게 됩니다. 이들 부부는 나이는 물론 생일과 태어난 시도 같아 하늘이 점지해준 배필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혼인 첫날밤 칠언절구 사랑의 시를 주고받을 정도로 부부금실이 아주 좋았지요. 또 이 부부는 중년 무렵 선영(先塋)을 지키려고 진안 마령면(馬靈面) 방화리(訪花里)로 이사하여 이 마을에서 시문을 쓰면서 일생을 마칩니다.

삼의당은 집안 형편이 어렵자 자신의 머리털을 자르기도 하고 비녀를 팔면서 남편이 과거준비에 전념하게 했으나 남편은 끝내 등과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학문에 힘쓰도록 권했으며 본인 스스로 시문에 힘써 유고집인 《삼의당고(三宜堂稿)》2권을 남기는데 여기에는 시 99편과 19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삼의당 김씨는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이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1504~1551), 남편의 학문적 자세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던 강정일당(1772~1832)과 함께 시문학에 빼어나면서도 가문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여성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