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지방의 시소(試所, 과거를 치르던 곳)에서 보내온 낙복지(落幅紙)를 지금 서쪽 변방에 내려보내야 하겠습니다만, 겨울철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에 헐벗은 백성이 옷을 만들어 입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모든 벼슬아치에게 낙복지를 나누어 준 다음 옷을 만들어오도록 하여 변방에 보내도록 하소서.” 위 내용은 인조실록 19권, 6년(1628) 9월 17일 자 기록입니다,
낙복지란 과거 시험을 본 뒤 나온 불합격된 답안지를 말하는데 왜 변방에 보내라 했을까요? 예전 솜옷을 지을 때는 옷감과 옷감 사이에 솜을 넣고 꿰맸습니다. 이때 무턱대고 솜만 넣어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솜이 옷감 안에서 뭉치고 아래로 처집니다. 이를 막으려고 실로 듬성듬성 누비지만 이것으로 솜이 뭉치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낙복지를 활용하면 촘촘하게 누비지 않아도 솜이 미끄러지고 분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온 효과를 낼 수 있지요.
이는 닥나무 섬유가 여러 갈래로 켜켜이 얽혀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확실하게 막아 주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낙복지는 솜을 둔 표면이 울퉁불퉁해지는 것을 막아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솜을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옷감 사이에 닥종이로 만든 과거시험장의 낙복지를 대고 누벼 만든 옷으로 혹독한 겨울을 살아 냈으니 여간 요긴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낙복지로는 승려들이 입는 납의를 만들기도 했으니 솜과 옷감이 귀한 시절 과거시험 낙방지인 낙복지는 단 한 장도 버릴 것 없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