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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면 일어나 골목을 쓸고 / 낮이 되면 문을 닫는데 / 행인이 지나가는 긴 골목이 너무나 깨끗하였네 / 밥상을 들어 눈썹까지 올리는 /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 / 누가 알았으랴? / 행랑에도 양홍(梁鴻)이 있었음을”
위 내용는 조선 후기 시인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이 펴낸 책 ≪추재집 秋齋集≫ 가운데 <추재기이(秋齋紀異)>에 있는 시입니다. 한양 조동(棗洞, 현재 을지로 2가와 장교동 사이) 안씨 집 행랑에 품팔이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늙은이였는데, 닭이 울면 일어나 문 앞 골목은 물론 멀리 이웃 골목까지 깨끗하게 쓸었습니다. 그리고는 문을 닫고 혼자 앉아 있으므로 집주인조차 얼굴을 보지 못하였지요.
하루는 집주인이 우연히 그 여인이 남편에게 밥상을 올리는 장면을 보았는데, 밥상을 남편 눈썹에까지 올려 마치 큰 손님을 모시듯 공경하였습니다. 그걸 본 집주인은 아마도 남편이 덕이 높은 선비라고 생각하여 예를 갖추어 만나려고 하였지요. 그러나 노인은 사양하며, “천한 것이 주인에게 예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는 잘못된 일이므로 제가 떠나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어디론가 떠나버렸지요. 조수삼은 이런 기인을 책에 소개하면서 세상에는 명예도 부귀도 없으나 빼어난 덕망과 인품을 지닌 인재가 숨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추재기이>에는 양반이나 선비가 아닌 이런 기인들을 71명이나 소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