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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488. 시 한편과 바꾼 목숨

   

“대궐 버들 푸르고 꽃은 어지러이 나는데 (宮柳靑靑花亂飛)
성 가득 벼슬아치 봄볕에 아양 떠네 (滿城冠蓋媚春暉)
조정에선 입 모아 태평세월 노래하지만 (朝家共賀昇平樂 )
누가 포의 입에서 위험한 말을 하게 했나. (誰遣危言出布衣)”

위는 조선 중기의 시인 석주(石洲) 권필(權, 1569∼1612)의 시입니다. 때는 광해군 시절로 유 씨 가문이 득세하였는데 무려 일가 다섯이 동시에 급제하기도 하였고 이는 소위 '뇌물비리'에 의한 것이었지요. 이에 임숙영이라는 선비는 이러한 광해군의 행동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했고 광해군은 격노하여 임숙영의 합격을 취소시켰습니다. 이를 개탄한 권필이 “궁류시(宮柳詩)”라고도 부르는 이 시를 지었고, 매를 맞은 다음 유배길에 오릅니다. 그러나 권필은 사람들이 주는 이별주를 폭음하여 이튿날 죽었는데 시 한편과 목숨을 맞바꾼 것이지요. 시에서 말한 궁궐의 버들은 유씨를 견준 것이며, 포의는 임숙영을 가리킵니다.

권필은 송강 정철(鄭澈)의 문인으로,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은 채 삶을 마쳤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구용(具容)과 함께 전쟁을 해서라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강경한 주전론을 펼쳤지요. 또 권필은 아첨배 이이첨(李爾瞻)이 가깝게 지내기를 청했으나 거절할 정도로 명분에 분명한 선비였습니다. 권필의 무덤은 지금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상감천마을에 있습니다. 권필이 죽은 지 400년이 지난 지금 권필의 기개가 그리운 것은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