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오표는 제거해야 할 장예지의 등 뒤로 바싹 다가서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막연한 시선으로 하천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살아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어쩌면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 역시 젊은 특권이 아닐까. 오표는 스스로 위안을 했다. 그녀의 고통을 마무리하는 역할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오표는 침통에 숨겨진 오독침(五毒針)으로 그녀의 목덜미 양쪽에 자리한 천주혈(天柱穴) 중 한 곳을 찔러 버리고 그녀의 등을 슬쩍 밀어 청계천으로 밀어버리면 그만 인 것이다. 그녀는 포청에 의해서 단순 추락사로 기록될 것이었다.
“혹시 우리 구면 아닌지요?”
그 삶과 죽음이 엄숙한 순간에 불쑥 이방인 한 명이 끼어들었다. 갓과 도포를 착용한 선비가 장예지에게 수작을 걸고 있었다. 오표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의외의 방해자로 인해서 노여움이 잠시 끓어올랐다.
‘동반하여 죽을 자?’
선비는 넉살 좋은 생김새였다.
“소생은 승정원 주서(注書)로 있는 구대일이라 하외다만.”
장예지는 낮선 인상으로 접근해 온 구대일로 해서 잠시 혼란스러운 눈길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사람이 별로 머리가 영특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재주가 하나 있소. 그것이 무엇 인고 하니 사람을 식별하는 일이지요. 남자는 아니고 여인, 그 중에서도 아리따운 용모의 소유자는 평생을 잊지 않소이다.”
장예지는 그가 어떤 목적으로 주절주절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이어진 말은 확실히 장예지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며칠 전에 우연히 낭자가 몽고말에 강제로 태워져 달리는 것을 목격했소이다. 그 날은 내게 있어 아주 인상적이었던 것이, 각별한 친구 한 명도 황급한 일이 있어서 허둥대는 날이었지요. 혹시 이 분의 성명은 낭자도 들어 아실 거요. 이순신장군 말이요. 내 친구는 그 구국의 영웅 이순신장군을 구하기 위해 매우 동분서주 했던 날 이었소. 설마 삼도수군통제사로 조선을 위기에서 구한 장수의 명성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요?”
장예지는 별안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친구 분의 함자가 어찌 되시나요?”
구대일은 그저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내 뱉은 말이었으나 상대방의 반응은 예상보다 놀라웠다.
“그는 조선인이 아니오. 아니지... 내 친구는 이제 조선인이요.”
“본래 그 사람은 일본인이었던가요?”
이번에는 구대일이 훨씬 놀랐다.
“내 친구를 알고 있소?”
“어쩌면요.”
장예지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면서 구대일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 친구는......”
“김충선이라 하지요?”
장예지의 입술에서 사야가의 이름이 떨어지자 구대일은 다리의 난간을 움켜쥐었다.
“이런 인연을 보았나?”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