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허, 이것 참...이 장군의 아드님이라 어쩔 수도 없고.”
“무슨 뜻이요?”
고진규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러자 상당히 사나워 보이는 얼굴이 되었다.
“이 공은 부친의 일이 제대로 된 것이라 생각하오?”
“무엇이 잘못 되었소?”
이울의 태도에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버리는 그들이었다.
‘정신 나간 놈일세!’
박정량과 전승업, 고진규가 이울을 외면했다. 이울은 다시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왕은 도주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왕권의 보존을 위하여 잠시 피했을 뿐이요. 부친의 일 또한 사사롭게는 인정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었으나 왜적을 목전에 두고 군기를 강화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듣기 싫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요?”
이울은 그들의 분노를 은연중에 무시했다.
“작금의 사태는 매우 위중하오. 아시겠지만 왜적은 물러난 것이 아니라 호시탐탐 재침략을 노리고 있소이다. 귀 공들은 이러한 시기에 왕과 신료들에 대한 불만만 쌓아둘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위로는 상감과 아래는 만백성들을 보존하기 위한 작업에 매진해야 할 것이외다. 이런 국면에 있어서......”
급기야 고진규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장군의 아드님이라 혹시나 하는 심정이었는데 에이!”
박정량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술 맛을 버려 버렸구만. 에이.”
전승업 역시도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참으로 기대 하였소.”
이울은 생각했다. 그들이 기대 했었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 말을 듣고 가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늦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썩어빠진 이 공의 정신이요. 어찌 그렇게 한심한 조정에 빠져 있소?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 거요?”
전승업의 질책을 이울은 마음 속 기쁘게 받아 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아직은 시기가 아니었다.
“눈은 제대로 달려 있소. 귀 역시 아직은 들을 만 하오.”
“옳지! 그렇다면 두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시오. 이 시기에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귀도 열고 들으시오. 백성들과 뜻있는 지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만일 그래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면 내 직접 두 눈을 파내고 귀를 베어 바다로 던져 버리겠소.”
전승업은 보다 과격하게 발언하였다. 술기운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여 졌다.
“스승님은 구국의 신념으로 목숨을 던지셨소. 나 전승업 역시 절대 죽음을 두려워하는 소인배가 아니오. 아시겠소?”
이울은 자리를 박차고 떠난 전승업의 뒤통수를 보면서 홀로 술잔을 비웠다.
“고맙소.”
그들의 의기에 이울은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슴을 술로 씻어 내렸다. 어디선가 밤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울려왔다. 부친 이순신 역시도 어디선가 이 밤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별로 편안하지 않을 밤이었다. 친구인 김충선 역시도 그러 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 개벽의 화두를 가슴에 품고 몸부림 치고 있을 터였다. 밤은 깊어도 새벽은 올 것이었다. 이 날은 이상하게도 달빛마저 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