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유광남 작가]
“일패공주?”
그녀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아침 식사는 혼자보다도 둘이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워요.”
일패공주는 바닥에 떨어진 토끼구이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흙이 묻어 있는 부위를 손으로 털어냈다. 그 광경을 김충선은 묵묵히 주시할 다름이었다. 건주여진의 누루하치를 독대하고자 했을 때 가장 마음에 걸리던 사람이 바로 일패공주였다. 김충선은 본의 아니게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던 터였지 않은가.
“내 건강을 위해서 와 준 거요?”
일패공주는 병사들을 향해서 나직하게 명령했다.
“전원 물러가라.”
만주를 지배하는 누르하치의 병사들은 일제히 군용견을 이끌고 물러났다. 그들은 먼발치에서 경호 태세에 돌입하였다. 일패공주가 토끼의 살점을 뜯어냈다.
“아주 잘 익었군요. 솜씨가 제법 이예요.”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소?”
“설마 당신의 방문을 내가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요?”
김충선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때의 일은 내가 사과 하리다.”
“그때의 일이라니요?”
일패공주는 되물었다. 아련한 배신감이 그녀의 폐부를 찔렀다. 그것은 오랜 고통이 되어 가슴에 사무치도록 작용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태연한 표정이었다.
“여진의 군사를 움직일 수 있도록 부탁을 하고나서, 난 왕과 타협을 하였소. 그대의 결과도 듣기 전에 말이요.”
선조의 얄팍한 수단에 의해서 이순신이 구금을 당하였고, 그런 이순신을 구명하기 위해서 김충선은 여진의 칸을 동원 하고자 일패공주에게 청했었다. 그래서 일패공주는 누르하치를 설득하기 위해서 한양을 떠나 여진으로 갔었던 일을 말함이었다. 그런데 김충선은 장예지의 도움으로 광해군을 만나고, 이순신의 진실을 밝혀줄 장계를 손에 넣어 선조와의 담판을 이루어냈다. 그리하여 무사히 이순신을 방면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 공주가 무시 되었던 것은 모두 내 탓이었소.”
“그런데 왜 이번에는 당신이 직접 여진을 찾아왔어요?”
“그 연유를 정녕 모른단 말이요?”
“아뇨. 물론 알고 있지요. 하지만 당신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듣고 싶은 거예요.”
“칸을 만나게 되면 말하리라.”
일패공주는 토끼구이의 살점을 김충선에게 건네고 자신도 입으로 가져가 씹었다.
“내가 당신을 아버님에게 안내해줄 것이라고 믿나요?”
“가로막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오.”
일패공주는 갑자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리 당당할 수 있나요? 내 앞에서 어찌 그리도 자신할 수 있죠?”
김충선은 입안에 넣은 토끼구이의 노릿한 냄새가 이상하게 싫었다.
“우리는 조선을 개벽시키는데 있어서 적어도 하나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오래 전에 확인하지 않았소이까.”
일패공주의 입가에 냉소가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