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유광남 작가]
“공주는 방도가 있을 것이라 믿소.”
김충선의 믿음이 일패공주는 싫지 않았다. 밉지 않았다.
“당신은 꽤나 사람을 움직이는 재주가 있어요.”
“내 짐작이 맞았다는 거요?”
“옳아요. 하지만 수월 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은 약간의 관문을 돌파해야 해요.”
“관문을 돌파해야 한다? 일종의 칸을 만날 수 있는 자격을 시험하겠다는 것이구려.”
일패공주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 정도는 각오해야죠.”
김충선은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뿌렸다.
“칸을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어려움이라도 난 헤쳐 나갈 것이오. 어떤 시험이요?”
“내가 미리 알려준다면 어찌 시험이라 할 수 있겠어요.”
일패공주는 불빛에 상기 된 표정을 지었다. 김충선은 그녀의 미묘한 얼굴빛을 대하자 갑자기 젊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새침하게 보이면서도 애교가 내포되어 있는 야릇한 얼굴이며 표정은 충분히 사내의 감정을 뒤흔들 만 하였다.
“그...렇소?”
김충선은 가까스로 대답을 하고 그녀를 외면했다. 혹시나 자신의 심경을 상대방에게 들킬 것을 우려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일패공주가 누구인가. 그녀는 예사롭지 않은 내력을 소유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과감하고 담대하며 총명한 칸의 장녀였다.
“말투가 왜 그러세요? 날 원망하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거예요?”
“공주에 대해서 감사할 따름이요. 원망이라니요? 그럴 리가 있겠소?”
“따라오세요.”
그녀는 간략하게 말을 던지고는 몸을 일으키더니 휘 바람을 불었다. 병사들이 질풍처럼 달려왔다.
“손님에게 말을 내드려라.”
즉각 윤기가 흐르는 붉은 갈기의 말 한 필이 대령 했다. 균형 잡힌 몸집에 튼튼한 다리를 지니고 있는 준마였다.
“고맙소.”
김충선이 말 위로 올라타자 일패공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서서 달려갔다. 김충선은 망설이지 않고 그 뒤를 따랐다. 군용견들과 병사들 역시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불과 일각도 되지 않아서 멀리 여진의 막사들이 드러났다. 안도감이 김충선에게 몰려들었다. 지척에 두고 칸을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인가. 개벽을 위한 첫 발 걸음의 성패가 목전으로 도달 했다는 생각이 들자 돌연 긴장감이 바싹 들었다.
“이것이 시험이요?”
김충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지금 그의 면전에는 올망졸망한 여진족의 아이들이 십 여 명가량 몰려들어 있었다. 적게는 3 살 여 부터 시작하여 17 살 정도의 아이들이 이국적인 눈빛으로 빤히 김충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네. 통과하면 아버님을 만나실 수 있어요.”
일패공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관문은 그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식이든지 만족을 주어서 모두가 승낙해야만 통과를 인정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누루하치의 자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