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유광남 작가] 칸으로 행세하는 누루하치의 자식들이니 그들은 모두가 공주이며 왕자의 신분이었다. 하나하나 눈여겨보니 어딘지 모르게 늠름하면서도 왕족의 특권인 오만한 자태도 엿보였다. 특히 제일 나이가 들어 보이는 첫 째 패륵은 누나가 데려온 김충선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방자한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난 그가 어떤 재주로 우리 형제들을 만족 시킬지 정말 궁금해.”
나이는 16세나 17세 정도 되어 보였고 허리에는 호랑이 가죽의 허리띠에 짧게 보이는 호신용 패검을 착용하고 있었다. 손목에는 금빛의 장식물을 감고 있었는데 움직일 때 마다 경쾌한 짤랑 거리는 소리가 일어났다.
“우리 집안의 장자죠. 패륵왕자라고 해요”
일패공주는 미소를 머금은 채 동생을 소개했다. 김충선은 패륵을 마주 응시하며 친밀한 미소를 보였으나 어색하게 마무리 짓고 말았다. 패륵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내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나의 손님은 처음이니까 우리도 기대하는 바가 크지만 과연.”
누르하치의 첫째 왕자라면 향후 누루하치의 뒤를 이어 칸의 보좌에 오를 대상이니 만큼 예사롭지 않은 위치이며 형제들에 대한 영향력 역시 최고가 아니겠는가. 김충선은 누구보다도 그를 감동 시켜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패륵왕자께서는 내가 어떤 시험을 통과해야 마음에 드시겠소이까.”
“생각해본 젓은 없다. 그러나 칸께서 말씀하시길 무릇 사내라면 황야의 텅 비어 있는 들판을 혼자 걷더라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지.”
김충선에게 일패공주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해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여진의 칸 누르하치는 자식들에게 엄격하였다. 어린 아이들이 걸음마를 뗄 무렵이면 여진의 벌판을 아이 혼자서 관통하도록 떼어놓았다. 말을 타고 가서 멀리 아이 혼자 떼어두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불과 2, 3살의 아이는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서 집을 찾아왔다. 누루하치는 이 교육을 ‘매의 눈’이라 명명 했다. 이곳의 왕자와 공주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매의 눈’을 거쳤다.
“나 역시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소. 물론 매의 눈과는 좀 다르긴 하였지만, 그 역시 평범한 것은 아니었소.”
“그것이 어떤 일이었나?”
패륵이 호기심을 느낀 듯이 물었다. 김충선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면서 밖으로 나가자는 고개 짓을 했다. 여진의 왕자와 공주들이 우르르 막사 밖으로 몰려 나왔다. 그때 누군가가 김충선의 다리를 잡았다. 귀여운 생김새였으나 위엄이 넘치는 눈빛을 지닌 상반된 인상이었다. 이제 5살가량의 그가 바로 훗날 청나라의 2대 황제가 되는 홍타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