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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겨루다’와 ‘다투다’•‘싸우다’

<우리말은 서럽다> 7

[한국문화신문 = 김수업 명예교수]  세상 목숨이란 푸나무(풀과 나무)건 벌레건 짐승이건 모두 그런 것이지만, 사람은 혼자 살지 않고 여럿이 함께 어우러져 산다. 핏줄에 얽혀서 어우러지고, 삶터에 얽혀서 어우러지고, 일터에 얽혀서 어우러져 사는 것이 사람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살자니까 서로 아끼고 돌보고 돕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겨루고 다투고 싸우기가 십상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이 많아지니까, 겨루고 다투고 싸우는 노릇이 갈수록 뜨거워진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지난 일백 년에 걸쳐, 침략해 온 일제와 싸우고, 남과 북이 갈라져 싸우고, 독재 정권과 싸우며 가시밭길을 헤쳐 와서 그런지 삶이 온통 겨룸과 다툼과 싸움으로 채워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 삶이 온통 싸움의 난장판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는데, 겨룸과 다툼과 싸움을 제대로 가려 놓고 보면 그래도 세상이 한결 아늑하게 느껴진다. 정작 싸움은 그렇게 많지 않고 다툼과 겨룸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겨룸은 무엇이고, 다툼은 무엇이며, 싸움은 무엇인가? 

· 겨루다 : 서로 버티어 승부를 다투다.
· 다투다 : 의견이나 이해의 대립으로 서로 따지며 싸우다. 승부나 우열을 겨루다.
· 싸우다 : , , 무기 따위를 가지고 서로 이기려고 다투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겨루다다투다’, ‘다투다싸우다겨루다’, ‘싸우다다투다라고 풀이해 놓았다. 모두 그게 그거라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어떻게 서로 다른 세 낱말을 같은 뜻으로 뒤엉키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어지러운 세상이 낱말의 참된 뜻을 뒤흔들지라도 국어사전이 그것을 바로잡아 주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헷갈리는 사람들이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말 겨루다•다투다•싸우다의 차이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겨루다는 치우치지 않는 가늠과 잣대를 미리 세워 놓고 힘과 슬기를 다하여 서로 이기려고 맞서는 노릇이다. 맞서는 두 쪽이 혼자씩일 수도 있고 여럿씩일 수도 있지만, 가늠과 잣대는 두 쪽을 저울같이 공평하게 지켜 준다. 미리 세워 놓은 가늠과 잣대는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반반한 처지를 만들어 주고, 오직 힘과 슬기에 따라서만 이기고 지는 판가름이 나도록 지켜 준다.  

모든 놀이와 놀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늠과 잣대를 바탕으로 삼아 벌이는 겨루기라 할 수 있다. 온갖 운동 경기 또한 겨루기를 가장 두드러지게 내세우는 놀이로서, 심판이라는 이름의 가늠과 잣대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며 바로잡아 주는 겨루기다. 이런 겨루기는 푸나무나 짐승이나 그 밖에 다른 어떤 목숨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사람에게만 있는 보배로운 노릇이다. 사람은 이런 겨루기로 나날의 여느 삶에서 맛볼 수 없는 공평함의 값어치를 배우며, 꿈꾸는 세상을 살아 보고, 사람다운 삶을 맛볼 수 있다. 

싸우다다투다는 둘 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지켜 주는 가늠과 잣대 없이 서로 이기려고 맞서는 노릇이다. 어떤 수를 쓰든지 서로 이기려고만 하면서 싸우고 맞서는 노릇이다. 여기서도 맞서는 두 쪽이 혼자씩일 수도 있고 여럿씩일 수도 있지만, 두 쪽을 공평하게 지켜 주는 가늠과 잣대가 없으니 혼자건 여럿이건 따질 것도 없다. 그러면서도 다투다는 목숨을 걸지도 않고 몸을 다치려고도 하지 않아서 거의 삿대질이나 말로써만 맞서는 것이다. 그래서 말다툼이 가장 흔히 이루어지는 다툼의 한 보기다. 어찌 보면 목숨을 걸지도 않고 몸을 다치지도 않으려는 가늠과 잣대가 서로의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싸우다는 몸을 다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뿐더러 끝내는 목숨마저 떼어 놓을 마음으로 맞서는 것이다. 이겨야 한다는 오직 한 가지 과녁만 있을 뿐 그 밖에 어떤 가늠과 잣대도 없는 것이 싸움이다. 그래서 싸움은 어느 쪽이 목숨을 잃거나, 무릎을 꿇고 빌거나, 또는 두 쪽이 모두 힘이 다해서 싸울 수가 없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나서서 뜯어말려야 그친다. 그리고 맞서는 두 쪽이 여럿씩일 적에도 다투다는 아무리 많아야 몇 십 명을 넘지 않지만, ‘싸우다는 많으면 몇 십만 또는 몇 백만 명씩 무리를 지어 맞서기도 한다. 이른바 세계 대전같은 것들이 그런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