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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금’ 과 ‘줄’

<우리말은 서럽다> 11

[한국문화신문 = 김수업 명예교수]  지난 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국어 시험지에, “다음 밑금 그은 문장에서 맞춤법이 틀린 낱말을 찾아 고치시오.”에서와 같이 밑금이라는 낱말이 자주 나왔다. 그런데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밑금은 시나브로 꼬리를 감추고 밑줄이 슬금슬금 나타나더니 요즘은 모조리 밑줄뿐이다. “다음 밑줄 친 문장에서 맞춤법이 틀린 낱말을 찾아 고치시오.”와 같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도대체 시험지 종이 바닥에다 무슨 재주로 을 친단 말인가?  

은 시험지나 나무판같이 바탕이 반반한 바닥 또는 바위나 그릇같이 울퉁불퉁하지만 겉이 반반한 바닥에 만들어진 자국을 뜻한다. ‘자국이라고 했지만, 점들로 이어져 가늘게 나타난 자국만을 이라 한다. 사람이 일부러 만들면 금을 긋다하고, 사람 아닌 다른 힘이 만들면 금이 가다또는 금이 나다한다. 사람이 만들 적에 쓰는 움직씨 긋다의 이름꼴이 곧 이고, ‘그리다그림도 본디 뿌리는 긋다에서 벋어난 낱말이다.  

은 반반한 바닥(평면)에 자국으로 나 있는 과는 달리,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이른바 입체로 이루어진 기다란 물건이다. 줄은 흔히 공중에 걸려 있도록 치는 것이고, 반반한 바닥이라면 떨어뜨려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줄은 기다랗기 때문에 갈무리해 둘 적에는 둥글게 간추려 포개 놓아야 하는데, 이렇게 포개어 간추리는 것을 사리다라고 한다. 줄은 쓰임새를 매김말로 하여 빨랫줄, 전깃줄, 광댓줄따위로 부르고, 만든 감을 매김말로 하여 새끼줄, 동아줄, 거미줄따위로 부르기도 한다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은 생김새와 쓰임새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갈라진다. 센 힘으로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않도록 굵고 튼튼하게 만든 줄은 . 흔히 밧줄이라고 과 겹쳐 쓰지만, 씨름꾼의 샅에 매는 샅바는 그냥 로 쓰는 보기의 하나다. 실이나 삼이나 종이로 가늘게 꼬아서 조심스러운 물건을 묶을 적에 쓰는 줄은 . 배를 젓는 와 부딪칠 수도 있어서 흔히 노끈이라고 하여 과 겹쳐 쓴다. 어떤 물건을 매거나 묶거나 꿰는 데 쓰려고 맞추어 만든 줄이 이다.  

줄의 한 가지기는 하지만 너무 가늘어서 줄을 만드는 감으로나 쓰이고, 베를 짜는 씨줄날줄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쓰이는 줄은 이다. 넙적하게 너비가 있어서 허리에 매거나 머리에 두르거나 아기를 업을 적에 몸으로 감아 맬 수 있는 줄은 . ‘허리띠, 머리띠처럼 앞에 다른 말을 붙여서 쓰지만, 아기를 업을 적에 쓰는 것은 그대로 라고 부른다. 

이처럼 은 여러 가지 이름의 낱말 무리를 거느리고 있어서 힘이 세다. 그래서 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빼앗아 차지하는 일도 벌어지는 것이고, 한결 손쉽게 뜻넓이를 넓혀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뜻넓이를 넓혀 나가서 공중에 칠 수 있는 기다란 입체의 물건이 아니라 바닥에 죽 늘어서 있는 것도 이라 한다.  

못줄을 잡아 심어 놓은 벼논의 벼들도 을 지어 서 있다 하고, 행군하는 군인들도 을 지어 걸어간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평면의 종이 바닥을 가득 채워 놓은 글도 글자를 나란히 을 지어 인쇄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이런 은 보다시피 친다라고 하지 않고 짓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