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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차마고도 여행기

신라면 국물의 그 얼큰함이란... ‘그래! 바로 이 맛이었어!’

양승국 변호사의 차마고도 여행기 13. 열세번째 날(팅그리 → 장무)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아침이 밝아오고, 우리는 다시 행장을 꾸려 이제 이 세계의 지붕에서 내려가려 한다. 이 고원이 저 밑 세상과 연결되는 길고 깊기 만한 협곡을 통하여 네팔과의 국경도시 장무로 내려가려는 것이다. 방작가는 아직도 얼굴이 간 상태이지만 낮은 곳으로 가기 위해선 다시 버스 여행을 해야 한다. 그러나 티베트는 우리를 순순히 낮은 세상으로 내려 보내지는 않는다. 

 

   
▲ 팅그리에서 장무로 향하는 국도 - 아직은 티벳 고원을 지나고 있다

 

장무로 가기 위해서 다시 한 번 5,000m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산증세가 두렵더라도 티벳인들이 수많은 룽다와 타르초를 바람에 휘날리며 신께 염원하는 5,000m 고개를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하지만 고개에서 내려 잠시 걸으니 또다시 머리가 띵해 온다. 가자! 가자!! 빨리 이 천상의 세계를 벗어나는 길밖에는 없구나. 

드디어 버스가 고원 평원을 지나 협곡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며칠 동안 황량한 고원의 세계만 보이던 내 눈앞에 키 작은 관목들이 듬성듬성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나무들이 일어나서 내려오는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고는 나무들은 온대의 숲에서 아열대의 숲으로 옮겨가고, 운무가 깔리면서 여기저기에서 폭포들이 구름을 뚫고 내려온다. 처음 나는 폭포의 개수를 세어보려다가 계속 나타나는 폭포에 그만 숫자를 잊어버리고 세어보기를 포기하였다. 

 

   
▲ 장무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넘은 5,000m 고개

 

 

 

   
▲ 장무로 내려가는 협곡 - 구름 속에서 폭포가 내려온다, 4,000m 넘는 티벳 고원에서 1,600m의 장무까지 좁은 협곡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 도로를 내기 위해 절벽을 깍아만든 도로 - 비는 안 오는데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에 차가 젖는다

차는 조심조심 산허리를 붙잡고 이리 돌고 저리 돌며 협곡을 내려간다. 예전에 네팔과의 교역을 위해 마방들이나 다니던 차마고도를 차가 다닐 수 있게 넓히고 포장하였다지만, 차가 급커브길을 돌 때마다 여기까지 소리를 지르며 과격하게 내려가는 저 밑의 급류를 보노라면 오싹 긴장되기도 하다. 어떤 길은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절벽에 자 모양으로 홈을 팠는데, 머리 위 절벽에서 물이 흩뿌리며 떨어져 차는 꼭 물의 커튼을 드리운 곳을 지나가는 듯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분명 나는 가도 가도 황량함만 더하는 세계에 있었는데, 어떻게 지금은 이런 세계에 들어와 있을 수가 있는가? 차창 밖으로 머리 위를 쳐다본다. 저 구름 위에 한반도보다 몇 배나 넓은 황량한 고원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넓은 고원에서 네팔로 내려가기 위하여 이런 좁은 협곡을 통해서만이 내려가야 하다니... 

장무로 내려오면서 그동안 티베트를 다니며 내내 내 머릿속에 뿌연 테를 두르고 있던 것이 맑게 걷혀지는 느낌이다. 장무만 해도 2,400m로 남한의 그 어느 곳보다 높은 곳이나, 여기만 내려와도 살 것 같은 기분이구나 

 

   
▲ 한참을 내려왔지만 아직도 길은 저 밑으로 꼬불꼬불 내려가고 있다

 

 

 

   
▲ 장무에서 만난 네팔 트럭 - 무역을 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왔다. 장무에서 수입 물품을 실으면 다시 네팔로 돌아간다.

   
▲ 장무는 무역도시라 차가 많다. 산허리에 겨우 낸 길에 차들이 많으니 교행하기 힘들다. 여기서 시간을 다 잡아먹는다.

차가 국경도시 장무로 내려오니 지나다니는 사람과 차에 변화가 있다. 무역을 하기 위하여 네팔에서 차와 사람들이 건너와 있는 것인데, 알록달록 화려하게 치장한 차는 네팔인들이 몰고 온 차다. 네팔로 건너가면 이런 종류의 차를 실컷 보겠지. 여기 오는 네팔인들도 대부분 인도 아리안족들이라 생김새가 몽골계인 우리나 중국인들과 금방 차이가 난다. 

길 따라 늘어선 집들과 차들을 보며 이제 금방 호텔에 닿겠구나 하였는데, 바로 호텔을 얼마 안 두고 한 시간 이상을 길에서 시간을 버린다. 장무는 협곡에 겨우 만든 길을 따라 발달한 도시라 주차공간이 여의치가 않다. 이런 곳에 짐을 갖고 티베트에서 내려온 트럭이나 네팔에서 건너온 트럭들이 양옆으로 주차하고 있으니, 그 사이 좁은 길로 오고 가는 차가 맞닥뜨리고 곧바로 그 뒤로 차들이 꽁무니를 물면서 서로 꼼짝을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버스 운전사의 실력이 진가를 발휘한다. 양보를 위해 그 덩치의 버스를 그 좁은 사이로 계속 후진하다가 좁은 공간을 발견하고 그 틈으로 집어넣는 솜씨는 예술이다. 

겨우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부린다. 방작가도 낮은 곳으로 내려오니 얼굴이 풀렸다. 고산증세가 풀리니 입맛도 다시 살아난다. 나는 식당에서의 저녁을 대충 때우고, 방으로 돌아와 마지막 남은 신라면 한 사발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이윽고 젓가락에 잡혀 올라와 내 혓바닥에 얹혔다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면발의 이 고소함, 그리고 신라면 국물의 그 얼큰함이란... ‘그래! 바로 이 맛이었어!’ 저녁 후 네팔에서의 작가들 최종 발표를 앞두고 호텔에서 작가들 방을 돌며 작품 발표 내지 설명회 시간을 갖는다. 이른바 ‘Room to Room'. 

 

   
▲ 호텔에서 작가들의 작품 발표 내지 설명회 시간을 갖는다 - 사진의 빨간 꽃은 유정혜 작가의 작품

 

 

 

   
▲ 방효성 작가와 가브리엘 작가의 퍼포먼스 사진 - 방작가가 고산병으로 고생하였기에 이런 퍼포먼스를 준비한 것이 아닐까?

   
▲ 이번 여행에 계속 갖고 다녔던 '茶馬古道'라고 쓴 사진이 벽에 걸려있다.

딸과 조카를 데리고 온 유정혜 작가의 방으로 들어가니 방에는 온통 빨간 꽃이 피었다. 셋이서 열심히 빨간 종이로 꽃을 만들어 방 안 여기저기에 매단 것이다. 유작가의 남편이 동료 법조인이라 왠지 작품에 더욱 친근감이 간다. 방작가는 가브리엘과 함께 퍼포먼스를 펼친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차를 한 잔 하더니 물총으로 비눗방울을 날린다. 그런가 하면 이번에는 팅그리에서 남겨온 휴대용 산소 탱크를 꺼내어 산소를 마신다. 무슨 뜻일까? 방작가가 고산병으로 고생했던 것을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의미도 있는 것인가

모두의 방을 도는데 내 방은 그냥 지나치자고 하였다. 나야 준비한 것이 없으니까... 그 대신 나는 돌아가면 이번의 여정을 중앙선데이와 월간중앙에 기고할 예정이고, 그걸 나중에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 얘기했다. 마지막에는 코디네이터인 박작가의 방에 모여 맥주 파티를 하며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한다. 처음 곤명에서 외국작가들을 만날 때에는 서먹서먹하였는데 같이 열흘 넘게 그 먼 길을 고생스럽게 달려오며 정도 많이 들었다. 이제 내일이면 우리는 네팔로 건너가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