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비행기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 5시 30분에 광조우 공항에 내렸다. 광조우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이지만 서울 가는 비행기는 17시 05분에나 있기에 그 막간의 시간을 이용하여 우리는 광조우 시내 관광을 나선다. 첫 번째 목적지인 월수공원(越秀公園)으로 향하는데, 가는 동안 전기 자동차가 지붕 위의 전선에 접선하여 운행하는 것이 눈에 띈다. 월수공원(越秀公园) - 얼마나 뛰어나고 빼어난 공원이기에 공원 이름도 월수공원인가?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태극 기공운동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야 중국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또 한쪽에서는 중년과 노년의 남녀들이 사교춤을 춘다. 글쎄 공공장소에서 저렇게 사교춤을 추는 모습은 나에게는 낯설다. 이런 것도 문화 충격이라 할 만 하겠지. ▲ 공원에서 태극 기공운동을 하고 있는 중국인들 ▲ 공원에서 사교춤을 추고 있는 중국 중,노년의 남녀들 조금 위로 올라가니 5마리의 양을 조각해놓았다. 오색 예복을 입은 5명의 선인들이 양을 타고 하늘에서 광조우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벼이삭을 나눠주고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일 큰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네팔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사실 어제 작가들 작품 발표를 하면서 이번 여행의 큰 줄기는 끝난 것이다.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카트만두 시내 관광을 하고 한국에서 온 일행들은 밤 비행기로 떠나고, 외국 작가들은 각자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다들 며칠 정도만 더 머무르다 네팔을 뜬다는데, 요코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간다고 한다. 중국 쪽에서야 차타고 휑하니 갔다 왔지만, 여기서는 15일간이 소요되는 트레킹 일정이다. 하여튼 요코 대단하다! 저 조그만 체구에 카메라 짐이 많아 배낭도 앞뒤로 메고 다니던데 또 15일간의 고난의 행군을 하려 하다니... 짐을 다 싸서 호텔 로비에 맡겨놓은 후 우리는 시내로 들어간다. 그런데 헨릭은 그대로 호텔에 남는다. 몸살이 났단다. 세미나까지 마치고 나니 긴장이 풀린 것일까? 하긴 5,200m의 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현지인들과 그렇게 미니 축구를 하였으니, 아무리 강인한 헨릭이라도 긴장이 풀리면서 몸살이 날만 하지. 사실 오늘 가고자 하는 곳은 나로서는 전에 이미 가보았던 곳이고, 따라서 여행기로 기록을 남긴 곳이다. 그래도 간단하게라도 훑으며 지나가자. ▲ 스와얌부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오늘은 네팔 국립박물관의 세미나실을 빌려 작가들이 지금까지의 여정 동안 구상하고 다듬고 완성시킨 작품들을 발표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날이다. 그 동안 아침이면 일어나 준비하기에 바빴지만 오늘은 오전을 느긋하게 호텔에서 보내며 각자 발표 준비의 마무리를 한 다음 점심을 먹고 박물관으로 향한다. ▲ 네팔 국립박물관 ▲ 겨우 군인들 검사를 받고 박물관 마당으로 들어왔다. 네팔 여학생들이 박물관 들어가고 있다 박물관 앞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사전 통지가 잘 안 되었는지 한 군인이 나타나 제지한다. 박물관 직원이 나와 설명을 함에도 군인은 우리의 소지품을 다 검사하고서야 들여보낸다. 그 동안 공산반군과의 오랫동안의 싸움이 이런 경직된 문화를 낳았구나. 국립박물관이라지만 우리나라 지방 박물관보다 못한 너무 초라한 박물관인데 그나마도 일본의 도움으로 지어진 박물관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건물 모서리에서 처마를 받치고 서 있는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지 거시기를 우뚝 세워 자기 아랫배에 붙이고 있는 것이다. 하! 고놈, 정말 우람하게 생겼네. ▲ 박물관 처마 밑의 조각이 우람한 거시기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아침에 일어나니 약하게 비가 흩뿌린다. 여기서 국경까지는 다시 얼마정도 꼬불꼬불 길을 내려가야 한다. 길을 돌다보니 떠나온 장무가 눈 위로 보이기도 하는데, 과연 장무가 티벳에서 내려오는 산비탈의 길을 따라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겠다. ▲ 장무에서 국경으로 내려가는 사진 - 머리 위로 산허리에 걸린 도시 장무가 보인다 ▲ 국경에 도착하니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 유럽인이 보인다 - 이들은 티벳을 자전거로 여행하고, 네팔로 넘어가려고 국경에 왔다 국경에 도착하니 이미 여러 사람들이 국경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 위에서부터 급하게 내려오던 급류가 네팔과 티베트의 경계를 이루고 있고, 문이 열리면 우리는 다리를 건너 네팔 코다리로 건너가게 된다.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유럽 사람들이 많고, 그 중에는 자전거를 잡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티베트를 여행하는 동안 뜻밖에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유럽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먼 유럽에서 이런 오지까지 자전거를 타러 오다니... 유럽인들의 모험심과 탐구심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이윽고 국경의 문은 열리고, 중국 국경관리들의 융통성 없고 불친절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아침이 밝아오고, 우리는 다시 행장을 꾸려 이제 이 세계의 지붕에서 내려가려 한다. 이 고원이 저 밑 세상과 연결되는 길고 깊기 만한 협곡을 통하여 네팔과의 국경도시 장무로 내려가려는 것이다. 방작가는 아직도 얼굴이 간 상태이지만 낮은 곳으로 가기 위해선 다시 버스 여행을 해야 한다. 그러나 티베트는 우리를 순순히 낮은 세상으로 내려 보내지는 않는다. ▲ 팅그리에서 장무로 향하는 국도 - 아직은 티벳 고원을 지나고 있다 장무로 가기 위해서 다시 한 번 5,000m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산증세가 두렵더라도 티벳인들이 수많은 룽다와 타르초를 바람에 휘날리며 신께 염원하는 5,000m 고개를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하지만 고개에서 내려 잠시 걸으니 또다시 머리가 띵해 온다. 가자! 가자!! 빨리 이 천상의 세계를 벗어나는 길밖에는 없구나. 드디어 버스가 고원 평원을 지나 협곡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며칠 동안 황량한 고원의 세계만 보이던 내 눈앞에 키 작은 관목들이 듬성듬성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나무들이 일어나서 내려오는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고는 나무들은 온대의 숲에서 아열대의 숲으로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아침이다. 오늘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와야 하고, 또 돌아와 팅그리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음악회를 열어야 하기에 아침 일찍 숙소를 출발한다. 어제 저녁에 이교수님이 호텔 사장에게 물어보니 팅그리 민속악단이 있다고 하여 즉석에서 공연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몸 상태를 점검해보니 어제보다 한결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다. 박병욱 작가가 걱정을 하나 여기까지 왔는데, 눈앞에서 에베레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설사 중간에서 어떻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가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을 위해 휴대용 산소통을 갖고 가기로 한다. ▲ 퍼포먼스를 펼치는 방효성 작가 - 이 후유증으로 방 작가는 에베레스 베이스캠프 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 어제 나보다 증세가 심했던 방효성 작가는 끝내 못 일어난다. 그 고지대에서 퍼포먼스를 펼친다고 원산폭격 비슷한 자세까지 취하고 했으니, 고산병이 요놈 봐라 하며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방으로 가보니 완전 환자가 되어 누워있다. 사람들은 마음 같아서는 옆에 있어주고도 싶으나 다들 여기까지 와서 에베레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표정. 그래서 우리는 호텔 주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시가체에는 타쉬룸포 사원이 있다. 포탈라궁이 달라이 라마의 상징이라면, 타쉬룸포 사원은 라마교의 제2의 지도자인 판첸 라마의 상징이라 하겠다. 타쉬룸포 사원 뒤의 헐벗은 니세리산은 타르초와 룽다로 길게 덮여있다. 티베트의 어디를 가나 타르초와 룽다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여기처럼 산꼭대기뿐만 아니라 아예 산 전체를 덮은 곳은 없을 것 같다. 타쉬룸포 사원은 단순히 사원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승려들이 거주 공간까지 하여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전성기 때에는 승려가 수 천 명이었다는데, 지금은 관리하는 승려들만 남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에도 조캉사원처럼 경배 드리려는 사람들이 어느 건물 앞에 길게 늘어서 있다. 이번에는 우리도 기다림의 줄에 합류한다. 이곳에는 판첸라마의 영탑들이 모셔지고 있는데, 5세부터 9세까지의 영탑은 합장탑이다. 원래 각각으로 모셔지던 것이 문화혁명 때 파괴된 것. 문화혁명의 광기는 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구나. ▲ 타쉬룸포 사원 ▲ 사원에 경배드리러 온 신자들이 길게 줄을 선 사진 ▲ 타쉬룸포 사원 경내 사진 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라싸를 떠나 시가체(Xigaze)로 간다. 가이드가 2대의 지프를 더 마련하여, 나는 얼른 그중의 한 지프를 찜했다. 차창 밖을 스쳐지나가는 주위의 산들은 약간의 풀만 있을 뿐 황량하기만 하다. 왜 이리 나무가 없을까? 나무가 없다... 당연한 것 아닌가? 지금 차가 지나가고 있는 이곳은 보통 4,000m를 넘나드는 곳이니, 이보다 높은 저 보이는 산들은 이미 수목 성장한계선을 넘어선 곳이 아닌가? 길은 나무가 없는 황량한 산들 사이로 계곡을 따라 가다가, 계곡을 나와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을 흐르는 얄룽창포 강을 따라 가며 이따금 마을을 지나가기도 한다. ▲ 시가체 가는 길 ▲ 시가체 가는 길에 본 눈 덮인 산 그런데 이 황량한 길에 묘한 매력이 있다. 지금 나는 뭔가 을씨년스러운 어느 다른 행성을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가다보니 조금 더 웃자란 산들은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있다. 4,000m 길을 달리면서 바라보는 하늘의 구름도 뭔가 다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 구름의 표정도 다양하다. 길을 달리다보면 지평선과 만나는 곳에 시꺼먼 구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비를 뿌리는데,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다음날 먼저 찾은 곳은 조캉사원이다. 많은 티베트인들이 사원에 참배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고, 사원 주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 우리도 조캉사원은 오후에나 들리기로 하고 시계 방향의 행렬에 끼어들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있다고, 나는 갖가지 복장과 표정의 티베트인들에게 카메라를 돌린다. 마니차를 돌리면서 입속으로 중얼중얼 끊임없이 만트라를 암송하는 사람, 삼보일배로 이마까지 땅에 대며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 티베트인들은 일생에 한 번은 티베트 그 넓은 땅 각지에서 삼보일배로 고향을 출발하여 이 조캉사원까지 오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생각한다지 않는가? 오체투지를 하고 일어서는 사람들마다 이마에는 둥그렇게 흙이 묻어 있거나 아예 혹이 생겨났다. 무엇이 이들 티베트인들로 하여금 이런 고행 속에 자기 신앙을 지키게 하는 것일까? ▲ 조캉사원 주위를 도는 순례자와 삼보일배 하는 한 아이 ▲ 오체투지하는 순레자 그런데 그런 티베트인들 틈에서 눈을 거스르게 하는 사람들이 섞여있다. 푸른 제복에 총을 든 사나이들. 저쪽 옥상에도 군인들이 보인다. 혹시라도 티베트인들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라도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비행기가 이륙한다. 계속 상승 비행을 하던 비행기가 이윽고 고도를 잡더니 수평을 잡고 날아간다. 그런데 수평비행 초기에 저 멀리 밑에 보이던 땅들이 어느 순간 그보다 많이 올라와 있다. 어? 언제 비행기가 하강비행을 하였나? 아닌데, 계속 수평 비행한 것 같은데? 그렇다. 비행기는 계속 수평으로 가고 있었고, 땅이 올라온 것이 맞다. 티베트로 가면서 땅은 계속 부풀어 오르지 않는가? 그러니 비행기는 수평으로 가고 있어도 땅이 다가오는 것. ▲ 라싸 가는 비행기 안에서 밤새 기차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하였더니 눈꺼풀은 나의 의지를 이기고 나의 눈동자를 덮어버린다. 비행기가 착륙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드디어 라싸에 도착하였나? 창밖을 보니 차창 밖의 풍경은 어딘가 낯이 익다. 왜일까? 그렇다. 그저께 돌아보았던 납백해의 풍경이 멀리 보인다. 이런! 다시 샹그릴라에 돌아온 것이다. 아니! 이렇게 샹그릴라에 내릴 거면서 왜 샹그릴라에서 라싸 가는 비행기표를 팔지 않은 것이야? 비행기는 샹그릴라 가는 사람 있을 때만 내리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예매를 할 때에는 이를 알 수 없기에 표를 팔지 않는 것이라나? 그것 참! 아직도 공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