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흔히 사람들이 윤봉길 의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虹口公園)공원에서 열렸던 일본의 전승축하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진 분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윤 의사는 상해 거사를 하시기 전에도 고향인 덕산에서 월진회(月進會)를 만들어 애국 계몽운동과 민족교육을 실천했던 분입니다. 윤 의사의 이러한 업적도 꼭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사)매헌윤봉길월진회 인완진 부회장의 말이다. 지난 4일(일) 낮 10시, 청명한 가을 날씨 속에 기자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윤봉길의사기념관’ 취재에 나섰다. 가까이에 천년고찰 수덕사와 덕산 온천이 자리하고 있어 기념관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하고 있었다.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시량리 119-1)에 자리하고 있는데 경내에는 윤 의사의 영정을 모신 충의사와 기념관, 윤 의사 부인 배용순 여사 무덤 등이 있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푸르던 하늘! 사당으로 오르는 계단 걸음, 걸음 내내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 의사의 짧은 삶이 가슴에 저려왔다. 자주색 넥타이에 짙푸른 양복 차림의 영정 사진 속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에 한정 된 것이 아닙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미국과 중국 등 세계 40여개 지역에서 지지를 받고 확산된 만큼 세계적인 학생운동과 연계해 연구하고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내년 9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남북한이 함께 공동사업으로 광주학생운동을 다뤄야 할 것입니다.” 이는 그제(1일) 전남대에서 열린 제89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 토론회를 마친 뒤 행사를 주관한 전남대 김재기 교수가기자와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이어 김재기 교수는 “이번토론회는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돌을 앞두고 제2의 3.1운동이라 평가받는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한 학술적 재조명을 한 것입니다. 이번 토론회에서 국가에 제안한 12개 사업이 추진되길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안한 국가차원의 선양사업 12가지는 다음과 같다.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에 “남북학생 및 한인후손들이 참여하는 공동행사”, “북한 지역 130여 참여 학교에 대한 남북한 공동학술조사”, “미국, 멕시코, 쿠바의 광주학생독립운동 유적지 현장체험프로그램 운영”, “세계 5개 국가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 지지대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머니(장경례 지사)는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자고등학교) 제1회 입학생으로 1928년 11월, 동교생이던 장매성, 박옥련 등 11명과 함께 소녀회(少女會)를 만드셨습니다. 조국독립과 여성해방을 목적으로 조직된 소녀회는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적극 참여하였고 시위 도중 부상을 입은 학생들을 치료하는 등 큰 활약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때 어머니 나이 17살 때이셨습니다.” 이는 장경례 지사(1913.4.6.~1997.12.1.)의 따님인 허찬희(83살), 허은회(81살) 자매의 증언이다. 가을 햇살이 따스하던 지난 10월 22일 월요일 낮 3시, 기자는 미리 약속한 장경례 지사의 따님이 살고 있는 수원 광교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인형작가인 장경례 지사의 큰 따님인 허찬희 씨 집에는가까이에 살고 있는 동생 허은희 씨도 미리 와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파트 거실 창 너머로 보이는 호수공원에 짧은 가을햇살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어머니 장경례 지사의 학창시절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머니는 당시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잡혀가는 바람에 박옥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 마누라가 없는 이 날은 아침부터 프리미엄 『妻いない この日は朝から プレミアム』 →잔소리 하는 마누라가 집을 비우면 더없이 좋다는 뜻 * 늦어도 확실히 늦잠 잤다고 말하는 신세대 『遅れても はっきり寝坊と 言う新人』 →예전 같으면 늦는 경우 버스가 늦게 왔다던가 하는 변명을 하지만 신세대 젊은이들은 ‘늦잠 잤다.’라는 말을 직격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내지는 놀라움을 표현 * 체중계 올라가는 용기와 보는 용기 『体重計 上る勇気と 見る勇気』 → 일본 사람들도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시 * 요리가 나오면 사진 찍기까지 기다려야한다 『料理出て 写真撮るまで 待てをする』 →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바로 먹는 게 아니라 일단 사진을 찍느라 바쁜 세태를 말하는 시 * 아버지의 노고를 알고 있는 구두 밑창 『父さんの 苦労知ってる 靴の底』 →아버지의 노고에 민감하지 않은 세태를 구두 밑창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는 시 이는 2018년 2월 15일, 일본 제일생명보험에서 샐러리맨들의 회사생활의 애환을 담은 제31회 “샐러리맨 센류(川柳) 콩쿨대회 100선” 가운데 일부이다. 일본 문학의 한 장르인 센류(川柳)란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었을 금정산을 그리며 어제(28일) 범어사를 찾았으나 이곳의 단풍은 아직일렀다.그 대신 초파일에 달아두었던 알록달록한 연등이 가을 단풍 분위기를 자아냈다.대웅전을 향해 걸으면서범어사와 인연이 깊었던 의상, 표훈, 동산 스님 등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흔들림 없이 꼿꼿한 시대를 읽어나갔던 고승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문득, 이분들의삶이야말로 알록달록 단풍 같은 세월을 살아낸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푸른빛으로 때로는 붉은빛으로 범어사를 지켜왔을 그 모습을 그리며 법당에서 삼배를 올렸다. 금정산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의 3대 고찰로 <세종실록 지리지 150권>에는 경상도 경주부 동래현 기록에는 “금정산석정(金井山石井)은 높이가 세 길 가량 되는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 깊이가 7촌 가량인데, 물이 항상 가득히 차 있어서, 비록 가물지라도, 마르지 아니하고 빛이 황금과 같다. 그 밑에 범어사(梵魚寺)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예전에 금빛고기(金色魚)가 오색 구름을 타고, 범천(梵天)으로부터 내려와서, 그 가운데서 헤엄쳐 놀았으므로
[우리문화신문=창원 이윤옥 기자] “토박이말은 사투리가 아닙니다. 쌈박한 순 우리말입니다. 됨됨이가 좋다는 말을 듣고 싶으세요? 말글살이를 가꾸면 마음도 예뻐집니다. 내가 먼저 바뀌어야 누리(세상)도 바뀝니다. 참 우리말을 살리는 길라잡이, 토박이말바라기와 함께 기쁨을 누리세요” 이는 우리말글을 사랑하는 모임인 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으뜸빛 ‘이사장’ 강병환)가 바라는 누리(세상)에 대한 시선이다. 어제 (27)토요일, 경상남도교육청과 경상남도 도움(후원)으로 경남도청 앞마당에서는 “쉬움 배움책(교과서) 마련을 바라는 세돌(제3회) 토박이말 어울림 한마당 잔치”가 열렸다. 이른 새벽 서울에서 5시간을 달려 “토박이말 어울림 한마당 잔치”가 열리는경남도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벌써 행사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날 잔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남 진주에서 불기 시작한 ‘토박이말바라기’ 운동은 2015년 11월 12일, 고 김수업 교수를 중심으로 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 모임이 생기면서 잔치 한마당으로 이어져 올해 세 돌을 맞이했다. 평소 우리말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일본말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인연이 된 ‘토박이말바라기’ 모임의 초대가
[우리문화신문=우스리스크 이윤옥 기자] 즈문해 이어져온 해동성국의 넋 우수리스크 수이펀의 젖줄로 흐르는 곳 물돌이 굽이굽이 세월의 한도 굽이굽이 멈추는 임 계신 곳 홀연히 바람결에 들려오는 한줄기 만파식적 임께서 불어주는 대한의 찬가 임이여! 오래도록 지켜주소서 찬란한 촛불이 꺼지지 않는 대한의 넋으로 남아주소서. - 이윤옥 ‘우수리스크 이상설 유허비에서-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이는 독립운동가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 1870-1917) 선생이 남긴 말이다. 충북 진천 출신인 이상설 선생은 1906년 북간도 용정으로 망명하여 항일민족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세워 후학들을 길러내던 중 1907년 헤이그특사로 활약하였다. 선생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준ㆍ이위종 선생과 함께 고종의 특사로 파견됐다. 그 뒤 1908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13도의군 창설과 성명회 결성, 권업회 활동 등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어제(25일)
[우리문화신문= 블라디보스톡 이윤옥 기자] 혹한의 땅 만주벌서 떠는 동포의 어린 영혼들 보듬으며 겨레 혼 심어주던 임 살 에이는 시베리아 시린 추위 견뎌내라 다독이던 임 어이타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이국땅서 숨져갔나요 블라디보스톡 한인촌에 혜성처럼 나타나 여장부의 푸른 꿈 내보이다가 활짝 펴지 못하고 떠나던 날 푸르던 하늘도 구슬퍼 핏빛 비를 뿌리었다네 - 이윤옥 ‘블라디보스톡 한인촌 여장부’- 핏빛 비를 뿌리던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푸르렀다. 가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 아래, 신한촌 집터를 걸으며 나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이인순 지사의 삶의 흔적을 찾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을 찾은 것은 어제(24일) 저녁 5시 무렵이었다. 아무르바닷물이 회색빛을 띄던 그 시각 신한촌도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신한촌은 1911년 무렵부터 형성된 곳으로 많을 때는 1만명 이상의 한인들이 살던 곳이다. 이곳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1937년 한인 강제이주가 시작된 이후 폐허로 변했다. 그 뒤 아파트촌이 들어서서 현재는 당시 한인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변모해버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파트촌 한 구석에 '서울스카야 2A'라는 번지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빨간호박, 노란호박 작품으로 유명한 나오시마(直島)는 인구 3,000명 정도의 작은 섬이지만 ‘현대 미술의 성지’ 또는 ‘예술의 섬’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일본의 쟁쟁한 도시들을 제치고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이곳에 몰려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평범한 작은 섬이 일약 유명한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데는 쿠사마 야요이, 미야지마 타츠오, 안도 타다오와 같은 쟁쟁한 예술가의 작품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는 1991년부터 15년 동안 베네세 코퍼레이션에서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만들어 ‘집 프로젝트’, ‘땅속미술관’ 등의 획기적인 작품과 미술관을 기획했던 한 사람이 2006년 섬을 떠난 뒤 이곳에 대한 글을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볼 수 있다. 섬 전체에 예술작품이 즐비한 나오시마는 섬 들머리에 설치되어 있는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草間 彌生)의 작품인 물방울무늬 호박부터 시작해서 여러 설치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가 설계한 미술관이 3개나 있는 그야말로 예술의 섬이다. 안도 타다오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민 1세대들이 가고 이제 2, 3세대들이 그 뒤를 잇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11월 17일, 제 73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로스앤젤레스 대한인국민회 주최로 <독립사적 탐방활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사적지를 찾아 당시 선열들이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를 피부로 느껴보는 현장학습인 것이지요. 도산 안창호 선생 등 초기 이민자들이 오렌지농장 등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독립자금으로 흔쾌히 내놓았던 현장을 찾아서 이민선조들의 삶을 체험해 봄으로써 우리민족의 미주 이민역사와 그 뿌리를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이번 행사의 중요 목표입니다.” 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배국희 이사장이 어제(22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독립운동의 1번지로 불리는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번 제73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앞두고 부모와 함께 하는 체험활동을 기획했다. 이번 행사는 “뿌리를 찾아 떠나는 독립사적지 탐험활동 콘텐츠 크리에이터 공모전”으로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 사적지 4곳과 과일농장 1곳을 답사하여 그 체험내용을 동영상으로 제출하는 공모전이다. 이번 공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