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달뜬 수선스러움이 싫지 않은 설날, 올해는 당신으로 인해 아린 감회에 젖습니다. 73년 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당신이 마지막 숨을 거둔 날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탄생 100주년을 함께 기뻐했던 2017년 12월 30일이 멀지 않은 때라 당혹감과 송구함은 더 합니다. 고향 부모님 친지를 찾아 정을 나눌 때, 북간도 고향 명동에 한 줌 유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당신을 아프게 기억하겠습니다. 저는 이번 겨울,당신이 공부했던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당신을 기리는 세 번째 시비가 세워졌다는 소식이 교토 답사를 재촉하는 손짓 같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어라고는 한국어로 순화해야 할 몇 단어밖에 모르고, 단 한 번도 일본에 가보지 못한 저를 믿고 동행한 17명도 선생의 말없는 초대에 응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토 답사 중 가장 기대했던 것은 도시샤 대학 내 선생의 시비입니다. 몇 발자국 떨어져 세워진, 당신이 가장 존경했던 스승이자 선배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탄강 굽이친 물 대대로 철원평야 살찌운 땅 알알이 영글던 겨레의 꿈 조각낸 자들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쉰여덟 나이로 피울음 토해내며 기미년 삼월 불꽃처럼 타오른 임의 애국혼 조국은 기억하리 영원히 기억하리 곽진근 (郭鎭根, 1861~1940) 애국지사는 강원도 철원에서 만세운동에 앞장섰다. 철원은 강원지역에서 맨 처음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으로 곽진근 지사는1919년 3월 10일 낮 3시, 농업학교에 모인 철원청년회, 농업학교, 보통학교 등 250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서울로부터 전해온 만세운동 소식은 철원지역 학생들의 젊은 피를 끓게 했다. 이들은 읍내 중심인 서문거리로 뛰쳐나가 조선의 독립을 외치며 헌병 분견소 쪽을 향했다. 곽진근 지사는 58살의 고령의 나이임에도 젊은 학생들 앞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성결교회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한 곽진근 지사는 3·1만세운동이 일어나기 4년 전인 1915년부터 철원장로교회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철원장로교회는 1905년 웰번(E.A.Welbon)선교사가 설립했는데 교회 안에 사립 배영학교를 세워 주민들에게 신문화교육, 육영사업, 군사훈련, 민족정신을 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서울의 북촌이라고 하면 ‘아! 조선시대 기와집이 남아 있는 전통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쿄에도 그런 곳이 있을까? 있다.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8)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카와고에시(川越市)가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전통 일본 거리다. ‘작은 에도 카와고에’라고 부르는 이곳은 신주쿠에서 50분, 이케부쿠로에서는 30분 정도면 닿는 곳으로 도쿄 도심에서 가까워서 인지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 필자가 이곳을 찾은 것은 이틀 전(19일), 월요일로 평일인데도 에도거리의 분위기를 즐기고자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상인들 말로는 주말이면 특히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도 없다고 한다. 카와고에시(川越市)는 에도시대에 에도성(江戸城) 북쪽의 방어기지로 정치적, 군사적으로 요충지였다. 지금도 당시의 풍경을 간직한 건물들이 꽤 남아있는 이곳 거리를 걷다보면 숨 막힐 것 같은 고층빌딩 숲에서의 답답한 느낌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다. 이곳은 메이지 26년(1894)에 대화재를 겪은 이래 마을 사람들은 내연성이 뛰어난 쿠라주크리(蔵造り: 일본 전통 건축의 하나)식으로 건물을 짓기 시작하
[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 기자]홍매화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교토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교정은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어제(19일,월) 오후 4시부터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이마데가와캠퍼스 안의 윤동주시비 앞에서는 이 대학을 다닌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는 조촐한 추도회가 열렸다. ‘2018 윤동주 추도회’를 주관한 이는 오오하시아유도(大橋愛由等)씨로 이 모임의 성격은 주로 일본 시인 중심으로 도시샤대학 윤동주 시비 앞에서 윤동수의 시를 낭송하면서 윤동주를 추모하는 모임이다. 올해로 7회째를 맞는다. 이날 가진 ‘2018 윤동주 추도회(2018 尹東柱追悼會)’는 시인 오오하시아유도(大橋愛由等) 씨의 개회 인사로 시작되었다. 그는 인사말에서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었던 지난해는 윤동주 영화 상영이 일본 전역에서 상영되었으며, 윤동주를 기념하는 또 하나의 기념비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가 교토 우지강변 신핫코바시(新白虹橋) 옆에 세워졌습니다.또한 저희들도 한국에서 참석한 시인들과 함께 한일 공동 시낭송을 가진바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유감스럽게도 ‘교토 도시샤대학 윤동주 추도회’의 공동대표인 김리박 선생께서 건강이 좋지 않아 함께하지 못해 조촐히
[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 기자] 도쿄의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어제 18일(일), 시인 윤동주의 일본 유학 첫번째 대학이었던 이케부크로의 릿쿄대학을 찾아가는 길은 약간 쌀쌀했지만 서울의 혹독한 추위와는 달리 뺨에 스치는 바람 속에서도 봄을 느끼게 했다. 낮 2시부터 도쿄 릿쿄대학 예배당에서는 73년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살로 숨진 시인 윤동주(1917~1945) 추도식이 열렸다.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추도식은 추도 기도와 시낭송, 특별 강연 등으로 저녁 6시까지 이어졌다. 릿쿄대학(立敎大學)은 북간도 출신인 윤동주 시인이 1942년 2월 말 일본에 건너와 10월까지 8달 동안 이 대학 문학부영문과 학생으로 공부하던 곳이다. 이후 윤동주는 교토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으로 편입하기 까지 이 대학 캠퍼스에서 ‘쉽게 씌어진 시(1942.6.3.)’를 비롯하여 5편의 시를 남겼다. 이날 릿쿄대학 성당에서 열린 “2018 시인 윤동주와 함께(詩人尹東柱とともに)” 추도회는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 대표 야나기하라) 주최로 순수한 일본인들의 추도행사였다. 올해로 11년째를 맞이하는 이날 행사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2018년 1월 3일 새벽, 총손(塚孫) 진홍은한없이 사모로운 5대조 면암할아버지께 삼가 글을 올립니다. 저는 지금 막 할아버지 신위를 모시고 할아버지께서 거처하셨던 고향집에서 제사를 올렸습니다. 지금은 바로 할아버지께서 111년 전에 돌아가신 바로 그 시각입니다! 동짓달 보름을 하루 넘긴 오늘 밤, 고향집 하늘에 떠 있는 차디찬 달을 보면서 적의 땅 대마도에서 망국의 한을 온 몸으로 품은 채 순국하신 할아버지를 추모하자니 저미는 가슴을 주체하기 어렵습니다. 순국! 사라져가는 조국의 운명을 보고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바치는 지고지순한 행위가 바로 순국이지요! 순국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할아버지의 순국 과정을 찾아가 봅니다. 우리 역사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 할아버지께서는 74세의 노구를 이끌고 의병을 모집하셨지요. 대포로 중무장한 일본을 의병으로 상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시계가 없는 마을이 있다. 그렇다면 이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인식하고 하루를 살아갈까? 분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계가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일본의 안데르센’으로 불리는 오가와 미메이(小川未明, 1882-1961)의 작품 가운데 <시계가 없는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 시계가 생기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혼란스런 일을 그린 이 책은 ‘없음’의 상태에서 ‘있음’의 상태가 결코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런가하면 <불은 초와 인어>라는 단편소설에서는 인간과 함께 하고픈 "인어"의 기구한 삶과 인간의 잔인성을 적나라하게 그려 어린이 동화를 뛰어 넘어 어른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그래서 오가와미메이를 가리켜 어른 동화작가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어린이들의 이야기라는 게 알고 보면 어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서 동화가 반드시 어린이들의 전용물은 아닌 듯싶다. 오가와 미메이는 일본 와세다대학의 전신인 도쿄전문학교를 다니던 1904년, 22살 때에 첫 작품 <방랑아(漂浪児)>를 잡지 《신소설(新小説)》에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는다. 이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김규면(1880~1969)선생은 함북 경흥 출신으로 서울 배재학당과 한성사범학교 등을 졸업하고, 1907년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신교육운동에 참여하였다. 일제의 한국강점 후 기독교에 입교하여 목사가 되었으며, 1913년 조선총독부의 포교규칙(布敎規則)을 승인하는 영국과 미국 선교사들의 방침에 저항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북간도에서 독립교회(獨立敎會) 성리교(聖理敎)를 창립하였으며, 성리교의 조직과 자금을 기반으로 중국 왕청현(汪淸縣) 춘화사(春華社)에서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을 조직하고 단장으로 선임되어 5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흑정자(黑頂子) 일대 나자구(羅子溝)와 초모정자(草帽頂子)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으로 거점을 옮겨 이동휘(李東輝)의 한인사회당(韓人社會黨)과 대한신민단을 합동하여 한인사회당 부의장 겸 군사부위원장으로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전쟁 시 고려빨치산군대 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프리아무르주 군정의회 전권위원으로 전선 후방의 조직 및 지도를 총괄하였다. 또한 신민단 의사부장(議事部長) 김춘범(金春範)으로 하여금 이동휘(李東輝)와 함께 나자구지방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대한민국, 한양, 한강에서 ‘한’이 2천년 역사의 ‘우리말 땅이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서울’이 2천년 역사의 우리말 땅이름이란 것은 알지만 그것이 역사적, 공간적으로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알고 있는 사람 역시 적은 듯합니다. 이미 사라져버린 땅이름을 되찾고 더 이상 아름다운 우리말 땅이름이 사라지지 않길 바랍니다.” 이는 어제(9일, 금) 오후 2시부터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2018년 첫 고문헌강좌 ‘우리말 땅이름’의 강사인 이기봉(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 씨의 강연 내용 가운데 일부이다. 오후 2시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강연에는 ‘우리땅 이름’에 관심을 가진 200여명의 청중들이 몰려와 강연장을 후끈하게 달궜다. 이날 강연은 사전 접수를 받은 사람들 우선으로 입장을 시켰는데 강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들이 대회의실 문을 열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평소 ‘우리말’에 관련해 관심이 많았던 기자 역시 일찌감치 신청 접수를 해놓고 이날 강연장을 찾았다. 이날 강연은 일제 강점기인 1911년 당시 “여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입춘에 장독 깨진다더니 입춘이 지났음에도 날씨가 좀처럼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삼한사온이란 말도 사라진지 오래고 날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이다 보니 봄이 더욱 그립다. 지난 4일(일)은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이었다. 한국에서는 입춘에 요란스럽게 치르는 행사는 없지만 일본에서는 절분(세츠분, 節分)이라 해서 사악한 귀신을 몰아내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가 전국의 절이나 신사(神社)에서 있었다. 절분(세츠분, 節分)은 보통 입춘 전날을 말하는데 이 때는 새로운 계절이 돌아와 추운 겨울이 끝나고 사람들이 활동하기도 좋지만 귀신도 슬슬 활동하기 좋은 때라고 여겨서인지 이날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다. “복은 들어오고 귀신은 물러가라(후쿠와 우치, 오니와 소토, 福は內、鬼は外)”라고 하면서 콩을 뿌리고 볶은 콩을 자기 나이 수만큼 먹으면 한 해 동안 아프지 않고 감기도 안 걸리며 모든 악귀에서 보호 받는다는 믿음을 가져왔다. 절분행사는 예전에 궁중에서 시작했는데 《연희식, 905년》에 보면 색색으로 물들인 흙으로 빚은 토우동자(土牛童子)를 궁궐 안에 있는 사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