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우리대한 겨레의 형제자매와 온 세계 우방의 동포들이여! 우리 대한은 완전한 자주독립과 신성한 평등복리를 우리 자손 여민(黎民)에게 대대로 물려주기 위하여 타민족 전제(專制)의 학대와 압박에서 벗어나 대한민족의 자립을 선포한다. 우리 대한은 예로부터 우리 대한의 대한이었지 타민족의 대한이 아니다. (가운데 줄임) 한마음 한뜻인 이천만 형제자매들이여! 단군대왕조께서는 상제 가까이에서 우리에게 기운을 명하시고 이 시대의 온 세계가 우리를 돕고 있도다. 정의를 이길 자가 없으니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나라를 도적질한 적들을 한손으로 무찌르라. 이로써 5천년 조상들의 빛난 얼을 받들고, 2천만 동포의 운명을 개척할 것이다. 궐기하라 독립군아! 함께 싸워라 독립군아!(끝줄임)” - 조소앙 선생이 기초한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 일부- 이는 1919년 2월 조소앙 선생이 기초하고 김규식, 김동삼, 김좌진, 이동휘, 박은식, 안창호 등 쟁쟁한 독립운동가 39명이 서명한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 가운데 일부이다. 이 선언서는 <2ㆍ·8독립선언서>와 <3이는 1919년 2월 조소앙 선생이 기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야나기하라 야스코 (楊原泰子, 72살)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초로 기억된다. 그해 나는 인사동 <갤러리 올>에서 “불굴의 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33인전”을 열었는데 그때 야나기하라 씨도 시화전을 보러 왔었다.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국내 최초의 시화전은 내가 쓴 시에 이무성 한국화가가 그림을 그린 족자 형태로 마침 3・1절을 맞이하여 열었던 것이라 언론과 시민들의 반향이 뜨거웠었다. 그 역사적인 자리에 야나기하라 씨도 함께 했던 것이다. 사실 야나기하라 씨는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기보다는 민족시인 윤동주에게 관심이 큰 분이었다. 아니 관심이 컸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일본에서 윤동주 연구가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독보적인 분이라고 하는 게 맞다. 현재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 대표인 야나기하라 씨의 윤동주 사랑은 남다르다.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의 모임’을 만든 것은 윤동주 시인을 추모함과 동시에 일제에 의한 조선 침략 역사의 진실을 많은 일본인에게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처럼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청년이 왜 일본땅에서 옥사해야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서 오십시오. 중국의 미래 광저우에 잘 오셨습니다.' 선생님은 광저우에 도착한 김산을 이렇게 맞으셨지요. 저는 김산 평전을 통해 선생님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저 말은 평전을 써내려간 저자의 상상력이 더해진 말이겠지요. 하지만 선생님을 접할 때마다 저는 저 한마디가 함께 떠오릅니다. 무더웠던 올 여름, 저는 임시정부기념사업회의 독립정신 답사단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답사장소 가운데 하나였던 베이징에서는 선생님이 수학하셨던 민국대학 터 극군근왕부를 방문했습니다. 비록 다른 답사지역에 견주어 짧은 시간 방문했지만, 저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답사를 위한 사전 공부에서 ‘조선노동공제회’라는 사회운동 단체를 알게 되었고, 선생님께서 이 운동에 참여하였던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강한 인상을 남긴 저 말 때문일까요? 선생님이 남긴 흔적과 조우할 때마다 따뜻이 맞아주는 푸근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세 번의 우연은 운명내지 필연이라고, 어느새 저는 선생님의 이력을 다시금 찾아보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선생님을 흘려보내지 아니하고, 일대기를 가슴속에 품은 청년이 되었습니다. 선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차리석 선생은 해외 혁명운동자 가운데서도 특히 강력한 정신력을 소유하기로 유명하시었다. 탁월한 사무처리 기능이나 병중에서도 최후일각까지 맡으신 사명을 완수하신 건강한 책임감은 한국 독립운동에 피와 살이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범 김구, 동아일보 1948년9월 22일자-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장관)을 지낸 동암 차리석(1881~1945, 1962, 독립장 추서) 선생은 백범이 말했듯이 ‘한국 독립운동사에 피와 살’이 되었을 뿐더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분이다. 그런데 차리석 선생에게 차보석(黃寶石, 車寶石, 1892~1932)이라는 여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기자가 집필 중인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제8권》을 쓰는 과정에서 ‘차보석 선생의 오라버니가 동암 차리석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기자는 차보석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1월 16일 화요일 오후, 선생의 조카인 차영조(차리석 선생 아드님, 74살) 씨를 의왕시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미국에서 활동하신 고모님(차보석)에 대한 자세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오는 2월 3일부터 2월 25일까지 일본 고베에서는 좀 색다른 전시회가 열린다. 사진작가 류은규와 전통 누비장 윤병옥의 ‘흰옷 생활(白衣の暮らし)’ 작품전이 그것이다. 사진작가 류은규 씨는 처음 지리산 청학동 마을을 찾았다가 흰옷을 입으며 옛 전통 방식대로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에 반해 30여 년 넘게 이곳을 드나들며 사진을 찍어온 작가이다. 류 작가는 전통을 이어오는 소박한 사람들의 생활과 마음을 담은 작품을 이번에 선보인다. 한편 류은규 작가와 함께 전통누비 작품을 선보이는 누비장 윤병옥 씨의 작품은 절제미와 궁극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누비작품들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누비 작품가운데는 일본의 기모노 천을 바탕으로 누빈 작품도 선보인데 한일간의 마음을 잇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번 코베 전시는 C.A.P.주최로, 일본한국중국교류준비위원회의 협력과 공익재단법인일한문화교류기금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특히 2016년 인천관동갤러리에서 조각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는 고베대학 인간표현학과(神戸大学人間表現学科) 교수이자 조각가인 준탐바(JUN TAMBA) 씨는 이번에 고베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대해 “흰옷 입은 사람들의 사진 작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일본도 한국처럼 일부 지방도시의 인구 감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 유달리 젊은 엄마들이 선호하는 곳이 있어 화제다. 아이치현 북서부에 자리한 나가쿠테시(長久手市)가 그곳이다. 나가쿠테시는 나고야시(名古屋市) 북서부에 자리하고 있는 중소도시지만 젊은 층이 꾸준히 유입되어 일부 초등학교는 6~7개 반을 편성할 만큼 인구가 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유입에 성공한 도시로 인정받고 있는 나가쿠테시는 40년 째 인구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다. 대관절 그 비결은 무엇일까? 첫 번째가 이케아 같은 대형 쇼핑센터가 여럿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에서 9번째로 큰 이케아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인구 유입의 필수는 쇼핑 시설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두 번째는 이 도시의 반경 1시간 이내에 도요타 등 자동차 공장을 비롯한 생산시설이 자리하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아빠의 일터가 멀지 않은 곳에 가족이 살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도시보다 싸면서 쾌적한 주택이 구비되어 있는 점이다. 일본의 좁고 노후화된 집을 탈피한 세련되고 살고 싶은 디자인의 단독주택 단지에다가 다닥다닥 붙여 짓지 않은 쾌적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가끔 그래도, 가끔 이도 저도 말고 쉬어도 보세. - ‘그래도, 가끔’ 가운데 - 날마다 바쁜 나날, 매 시간 시간 바쁜 현대인들. 아니,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고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런 우리에게 법현 스님이 책 한권을 선물했다. 《그래도, 가끔》(2017,12, book樂 출간)이 그 책이다. 법현 스님(열린선원 원장)이라고 하면 저잣거리 스님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지만 요즘은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페이스북 등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스님이다. 스님은 고즈넉한 산사만이 수행도량이 아니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직장이, 학교가, 시장이, SNS 속을 수행도량으로 여기고 이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해나간다. 이번에 낸 《그래도, 가끔》은 그동안 카카오톡, 밴드, 페이스북 등에서 나누면서 소통한 소중한 글들을 어려운 용어가 아닌 읽기 쉬고 편한 말들로 묶어낸 것이다. 여기 모인 것이 바로 선(禪) / 모인 이들이 선사(禪師) / 이 글 새겨읽음도 선(禪) / 모였으니 꼭 잘 갈 것 / 이 글을 보는 이는 / 누구나 괴로움이 없어지고 / 즐거움이 시작되어 그득하게 하소서 / 이 글을 보는 이는 / 누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미협회의 중국 국민당 정부 접촉을 통한 임정승인 외교 시도도 여의치 않게 흘러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한미협회 후견인으로 활동하던 제랄딘이 나서게 되었다. 제랄딘은 한미협회의 다른 인사들과 달리 이승만 이외에도 김용중 등 미주 한인사회의 다양한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미국 내 주요인사들과 접촉했다. 게다가 애쉬모어와 제랄딘은 장제스, 장췬, 궈다이치, 쑹메이링 등 중국 국민당 정부 관계자들과 이미 1920년대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결국 한미협회 인사들은 중국 국민당 정부와의 교섭이 어려워지자 제랄딘의 협조를 받기로 했다. 쑹메이링과의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제랄딘은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임정 승인을 재촉했다. … 난 당신(쑹메이링)이 내 남편(애쉬모어)과 그의 아버지(필드)가 한국 사람들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과 김구처럼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망명자뿐만 아니라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수십 년 동안 쉬지 않고 헌신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 중략 … 지금 총통(장제스)이 이끄는 중국 사람들이 중경에서 한국 임시정부에 기꺼이 피난처를 제공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사람이 전기를 만들었다 / 전기가 편리함을 낳았다 편리함이 비만을 불렀다 / 그런가? 전기를 줄이자 사람이 전기를 늘렸다 / 전기가 CO2를 늘렸다 CO2가 재해를 늘렸다 / 그런가? 전기를 줄이자 하지만, 전기를 줄이면 편리함이 사라진다 편리함이 사라지면 시간이 줄어든다 시간이 줄어들면 돈이 줄어든다 돈이 줄어들면 행복이 줄어든다 과연 그럴까? - 야후제팬, “비전화공방(非電化工房)” 누리집- 한국에서는 좀 생소한 “비전화공방(非電化工房)”이라는 것이 일본에서는 꽤 알려졌다. 풀이하면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물건(도구)’라고 해야 얼른 이해가 쉬울 것이다. 비전화공방(非電化工房)이란 전기를 절약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애시당초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사용하자는 것으로 이러한 주장에 대해 슬슬 일본 사회에서 호응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비전화공방(非電化工房)의 선구자는 아무래도 후지무라 야스유키 (藤村靖之, 1944~) 씨를 들 수 있다. 일본의 발명가인 그는 오사카 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공기청정기 등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사용가능한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일본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이 편지는 선생님의 외손자이신 김동식(사월혁명회 공동의장) 선생의 증언과 민족문제연구소 그리고 사월혁명회가 조사한 사료를 바탕으로 쓰는 편지입니다. 김동식 선생은 집안이 어려워 어릴 때 외가에서 살면서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며 자랐다고 합니다. 특히 외할아버지는 양산에서 천석꾼 집안에 태어나 임시정부 재무총장에 임명 될 정도로 독립운동 자금에 깊이 관여하시며 상당한 재산을 독립운동에 헌납한 것을 김동식 선생은 긍지로 여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