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석문아! 보아라. 사랑하는 나의 손주 석문아! 나는 아름다운 매화꽃이 만발한 꽃길에서 백범과 함께 걷고 있다. 석주도 만나고, 백야도 만났지. 그러나 역시 즐거운 사람은 3. 1 혁명을 함께 한 석기 형. 광수, 병수 조카 등 여러 동지와 옛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욱 좋구나. 석문아! 나는 하늘나라에서 너를 생각하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은 《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 “국교(國敎)와 국사(國史)가 망하지 아니하면 국혼(國魂)은 살아 있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제4차 산업혁명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완성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천국에서는 이구동성으로 난리법석이다. 석문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제헌국회 개회사에서 “이 민국은 기미년 3월 1일에 우리 13도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서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독립민주국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야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건국일’이라 하지 아니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축하식’으로 거행하였다. 석문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개는 사회성이 있는 충실한 동물입니다. 사람과 교제가 아주 오래되었고 친밀한 동물이지요. 또 개는 새끼를 쉽게 낳는다고 해서 일본에서는 안산(安産)에 좋은 날이 개날(戌日)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내년의 무술년(戌年)을 맞아 일본의 인터넷 누리집에 올라 있는 개띠 해에 관한 이야기다. 개띠 해를 앞두고 일본에서는 개 모습이 담겨 있는 연하장 판매가 한창이다. 3주전 후쿠오카의 한 쇼핑몰 문구 코너에는 개띠 해 그림을 새겨 넣은 연하장을 고르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이제 슬슬 연하장을 보낼 계절이다. 한국에서는 과거 연말연시에 연하장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바일 시대라 연하장을 주고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선 나부터도 그러하니 말이다. 연하장은 대개 전문회사에서 만든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판에 박힌 우체국 엽서가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엽서를 만들어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자녀가 결혼을 했으면 결혼사진을, 아기가 태어나면 방긋 웃는 아기사진을, 파리여행을 했으면 에펠탑 아래서 찍은 사진 등을 연하장 엽서에 새겨 마치 ‘저희는 한해를 이렇게 살았습니다.’는 마음을 전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조애실 장로님은 제가 잘 압니다. 후손은 없으시지만 송암교회에 다니셨으니 교회에 오시면 자료를 드리겠습니다.” 수유리 송암교회의 이규남 장로와 통화를 마치고 조애실 지사(1920.11.17.~1998.1.10.) 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10일(일요일) 송암교회를 찾아간 날은 아침부터 흰 눈이 펑펑 내렸다. 이규남 장로는 12시가 넘으면 예배가 끝나니 그 시각에 맞춰 오면 좋겠다고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조애실 지사님이 오랫동안 다니던 교회로 찾아가는 것이니만치 예배에 참석하는 게 좋겠다싶어 눈 속을 뚫고 2부 예배가 시작되는 오전 11시에 도착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조애실 지사는 1965년부터 1998년 1월 10일 78살로 숨을 거두는 날까지 33년간 수유리 송암교회에 다녔다. 한국기독교장로회소속의 송암교회(현 담임목사,김정곤)는 1962년 한국신학대학 강의실에서 교수와 직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모여 만든 교회로 조애실 지사는 초창기부터 어머니와 함께 송암교회에 다녔다. 평생 독신으로 살다 간 조애실 지사에게 있어 교회는 친정과 같은 곳이었을지 모른다. 인생 후반기에 원로 장로로 추대되어 그 누구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어느덧 한 해가 기울어 12월도 중순에 이르고 있다. 이 무렵이 되면 일본사람들은 새해맞이로 바쁘다. 특히 설날을 음력이 아닌 양력으로 쇠는 까닭에 백화점이나 편의점 등에는 설날 선물을 미리 준비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선물 코너를 따로 마련해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백화점 입구 같은 곳에는 설날 가족들이 먹을 “오세치요리(お節料理)”를 미리 주문 받기 위한 임시 접수처도 분주하다. 한국인들이 설날에 해먹는 음식이 있듯이 일본도 설날을 맞아 먹는 음식이 있는데 이를 오세치요리(お節料理)라고 한다. 요즈음은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집 보다 백화점이나 인터넷 등에서 주문해서 먹는 가정이 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주 후쿠오카의 한 백화점에는 오세치요리의 견본품을 즐비하게 선보여 고객들의 주문을 받고 있었다. 오세치요리에 쓰는 재료는 대부분 연기(緣起)라고 해서 음식 자체보다는 장수, 부자, 자손번영 같은 것을 의미하는 재료가 쓰인다. 새우는 허리가 굽을 때까지 장수하라고 쓰며, 검은콩은 인생을 성실하게 살고, 노란 밤조림은 황금색이 의미하듯 부자를, 청어알은 자손 번성을 뜻하는 식으로 재료 하나하나에 깊은 상징성을 새기고 있는 것들이 대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종다리 높이 떠 지저귀는 곳 /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상전 위하여 땀 흘려가며 / 그 누른 곡식을 거둬들였네 내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지난 12월 1일(금) 오후 3시, 마나기 미키코(馬男木美喜子, 53살)씨와 나는 윤동주 시인이 죽어간 후쿠오카 형무소(현 구치소) 건물 뒤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이 노래를 불렀다. 번안곡인 이 노래는 윤동주 시인이 평소 즐겨 불렀던 노래로 알려져 있다. 27살 조선 청년 윤동주, 유학지였던 일본에서 금지된 언어인 한국어로 시를 쓴다는 이유로 잡혀와 이곳 후쿠오카 형무소 안에서 “정다운 고향”을 그리며 죽어가야 했던 쓰라린 마음을 생각하자니 가슴이 미어져 내렸다. 마나기 미키코 씨도 나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눈가가 촉촉해보였다. 마나기 미키코 씨는 오랫동안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の詩を読む会)>의 대표를 맡아온 사람이다. “원래 후쿠오카 형무소 자리는 이쪽에 보이는 사와라구청(早良區役所)과 버스터미널 자리부터 시작해서 12헥타르에 해당하는 넓이였습니다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오늘은 기모노를 입어 보는 날입니다. 저희는 사가여자단기대학(佐賀女子短期大學) 2학년입니다. 기모노 입는 것은 공부의 하나입니다만...” 형형색색의 기모노를 입은 어여쁜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면서 구코가가(舊古賀家)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기에 무슨 날인가를 묻는 필자에게 여학생들은 그렇게 답했다. 구 코가가(舊古賀家)는 사가시(佐賀市)에 있는 옛 일본집으로 지금은 역사민속관으로 쓰고 있는데 사가지방의 옛 주택 형태를 보여주는 한편, 기모노 교실 등 공간이 필요한 일반인들에게 장소를 빌려주고 있다. 구 코가가(舊古賀家)는 코가은행을 세운 메이지시대의 실업가인 코가젠페이(古賀善平)가 살던 집이다. 코가 씨는 메이지 18년(1885)에 환전상을 시작한 이래 코가은행을 설립하여 큐슈의 5대 은행으로 키울 만큼 큰 규모로 성장시켰다. 지금은 민속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 집은 금융업으로 돈을 번 코가 씨가 은행 옆에 지은 주택으로 무사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당시로서는 고급 주택이다. 사가시역사민속관은 서울의 남산한옥마을처럼 사가시의 옛 집을 개보수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집으로 현재는 코가가(古賀家)를 비롯하여, 구우시지마가(牛島家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고모님(이월봉 지사)은 참으로 깔끔하셨습니다. 우리 집에 오실 때면 언제나 조카들 옷가지들을 말끔하게 빨아주셔서 또래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많이 샀지요. 고모님의 부지런하심은 아무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월봉(1915.2.15. ~ 1977.10.28.)지사의 조카딸인 이춘화 씨는 그렇게 고모님 이월봉 지사를 회고했다. 이월봉 지사의 후손을 만나기 위해 대구로 내려간 시각이 점심 무렵이라 우리는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이 자리에는 이월봉 지사의 아드님 이충국(58살) 씨와 조카따님 이춘화 씨, 그리고 서울에서 기자와 함께 동행한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 문영숙 작가(이월봉 지사의 조카 며느님)이렇게 넷이었다. 얼큰한 아구찜을 시켜 놓고 음식이 나오는 동안 우리는 이월봉 지사의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뭐니 뭐니 해도 1938년에 열린 중화민국대운동회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운동회는 장개석이 장학량 군대에 감금된 뒤에 풀려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대회로 이 대회에서 어머니는 여자의 몸으로 당당히 1등을 거머쥐었지요. 이 대회는 요즘으로 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김치보(金致寶,1859. 9. 17 ~ 1941. 11. 18) 선생은 평남 평양(平壤) 출신으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 지도자로 활동하였다.1908년무렵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하여 한민회(韓民會)와 관계를 맺고, 청년회 회장 등으로 활약하였다. 1909년 미주 국민회(國民會) 블라디보스톡 지회 회원으로서, 같은 해 4월에는 청년돈의회(靑年敦義會)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일하였다. 1910년 일제의 한국 강점을 규탄하는 성명회(聲明會) 선언서에 서명하였다. 성명회는 1910년 8월 23일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지방의 한인들이 블라디보스톡 개척리 한인학교에서 조직하여 대한의 국민된 사람은 대한의 광복을 죽기로 맹세하고 성취한다는 종지(宗旨)를 내외에 알리고자 하였다. 김치보는 1910년 12월 28일 블라디보스톡에서 조직된 자선공제회(慈善共濟會)의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에는 권업회(勸業會) 통신부장으로 활동하였다. 권업회는 한인들이 러시아에서 러시아당국의 공식인가를 받고 조직한 최초의 한인 단체로서, 1911년부터 1914년까지 4년 동안 연해주 흑룡주 지역의 대표적인 재러한인의 권익옹호기관이자 독립운
[우리문화신문= 후쿠오카 이윤옥 기자]“놀라지 마십시오. 오늘(1일) 후쿠오카시에서는 오전 10시에 북한 핵미사일 대비 방재훈련을 합니다. 북한 미사일이 날아왔다는 가정 하에 훈련용 문자가 휴대폰으로 전달될 것입니다. 관광 등의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후쿠오카에 묵고 있는 분께도 훈련용 문자메시지를 보낼 예정이니 놀라지 마십시오. 방재용 훈련입니다” 이는 후쿠오카 시내에 머물고 있는 기자에게 엊저녁(30일, 목요일) 지인이 보내온 문자의 요지다. “놀라지 마세요”라는 문자가 되레 기자를 놀라게 했다. 기자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의 해>를 맞이하여 일본에서 활동하는 일본인들을 취재하고자 올해 내내 일본 지역을 왕래하는 중이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후쿠오카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지금 텐진(天神) 시내에 묶고 있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화성 15호’ 발사는 기자가 서울에서 후쿠오카로 출발하던 29일 새벽 3시 무렵 쏜 것으로 공항으로 나가는 시각 뉴스에서 들었다. 하도 미사일을 빈번하게 발사해서인지 솔직히 기자는 그렇게 심각한 느낌없이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해보니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신문, 텔레비젼 뉴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교토는 지금 단풍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동복사(도후쿠지, 東福寺)는 단풍의 명소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특히 츠텐쿄(通天橋)에서 바라다보는 경치는 관광객들에게 최고 인기 장소로 이곳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언제나 초만원이다. 밀려드는 사람들이 앞 다투어 사진을 찍으려고 하다 보니 사고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동복사 쪽에서는 지난해부터 아예 이곳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도 이러한 주의사항을 어기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동복사 쪽에서는 한숨을 쉬고 있다. 천년고찰 동복사는 서기 924년 후지와라(藤原忠平) 씨의 보리사로 중세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대가람으로 성장했으나 명치정부의 폐불훼석(廃仏毀釈, 불교탄압)으로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 하지만 경내에 2천 그루나 되는 단풍나무가 늦가을에 붉게 물들어 일본 최고의 단풍명소로 찾는 이들이 많다. 많을 때는 하루 3만 5천 명 정도가 동복사를 찾는다고 하니 비명을 지를 만도 하다. 교토의 단풍은 동복사 뿐만이 아니다. 천년 고도(古都)였던 만큼 청수사(기요미즈데라, 清水寺)를 비롯한 숱한 절들이 일일이 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