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윤동주 시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야나기하라 야스코 (楊原泰子, 71살) 씨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올해 나라안팎에서 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지만 20여 년 넘게 윤동주 시인을 일본에 알리는 일을 해온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를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해마다 2월 도쿄에서 윤동주 시인 추모회를 여는 등 윤동주 시인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야나기하라 야스코씨를 기자는 지난 8월 5일 오후 3시, 일본 도쿄의 최대 고서점가 진보쵸(神保町)의 한국 북까페 <책거리(CHEKCCORI)>에서 만났다. 야나기하라 씨는 1년에 한두 번씩 윤동주 시인 관련 일로 한국에 다녀갈 정도로 한국통이며 한국어 실력도 상당하다.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건넨 명함에는 아무런 직함도 없이 이름과 연락처만 적혀있다. 그것은 원래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조용한 성품에서 나온 자세로 사실 야나기 하라 씨의 직함은 ‘시인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의 대표다. 올해 71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야나기 하라 씨와의 대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이곳은 충북여성장애인연대입니다만 우리회원들을 위해 여성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까?” 리산은숙(전,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장) 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 8월 24일이었다. 강연일은 1주일 뒤인 8월 31일. 한 달간 일본에서 머물다 막 귀국한 터라 처리할일이 쌓여 청주까지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성장애인’ 들에게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려주었으면 하는 말에 선뜻 대답을 했다. 그리고 어제 31일(목), 오전 10시 30분, 강연장에 들어섰다. 40여명 되는 여성 장애인들이 빼곡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장애 정도가 심해 보이는 분들이 꽤 눈에 띄었다. 아뿔사! 준비해온 이날 강연 자료가 혹시 이분들에게 어려운 내용이 아닌가하고 내심 걱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1시간 30분 주어진 시간 동안 원래는 40분하고 10분 쉬고 다시 40분을 해달라고 주문했지만 참석자들의 강연을 듣는 태도가 너무나 진지하여 쉬지 않고 내리했다. 수많은 곳에 강연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강연태도가 진지한 곳은 보질 못했다. “저는 지체장애자로 학교 공부를 많이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오늘 강연을 듣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스스로 잘난 체 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孤幕孤於自恃(고막고어자시)-” 안중근(1879~1910) 의사를 모신 국내 단 한 곳의 사당인 해동사(海東祠)안에는 안 의사의 심지 곧은 마음이 드러난 유품 몇 점 만이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국내 유일의 안 의사를 모시는 사당이 전라남도 장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6일(토), 서울에서 부랴부랴 달려갔다. 그간 기자는 안 의사의 유적지를 쫓아 거사 현장인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역과 그곳에 들어선 안중근의사 기념관 그리고 거사 뒤 처음으로 잡혀갔던 일본영사관 건물과 자신이 죽으면 뼈를 묻어 달라던 하얼빈공원(현 조린공원)의 "청초당" 이란 돌비석을 세운 자리까지 찾아다녔지만 국내에 안중근 의사를 모신 사당이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부끄러웠다. 출발에 앞서 길찾개(네비게이션)에서 해동사(海東祠)를 찾으니 뜨질 않았다. 간신히 알아낸 정보를 통해 죽산 안씨 사당인 만수사 (萬壽祠,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에 안 의사를 모신 해동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극비스런(?) 정보를 준 사람은 장흥의 향토사학자 안명규 씨였다. 안중근 의사 사당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8월 27일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 시노노이(長野県長野市篠ノ井)에 있는 시노노이교회(篠ノ井教会)에서는 아주 특별한 강연이 있었다. 조선침략을 사죄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만든 NPO법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 주최로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강연회가 그것이다. 강연제목은 “침략에 저항하는 불굴의 조선여성들(侵略に抗う不屈の朝鮮女性たち)” 이었고 강사는 고려박물관 조선여성사연구회 오오바 씨(大場小夜子)가 맡았다. 이번 강연회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29일까지 3달 동안 고려박물관에서 열린 “시와 그림으로 보는 독립운동의 여성들(詩と画でつづる独立運動の女性たち(2), 이윤옥 시, 이무성 그림) 가운데 15명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날 오오바 씨는 일제 침략기에 한국의 여성들이 독립을 위해 헌신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이윤옥 시인의 헌시(獻詩)를 일본어로 낭송하였다. 시낭송 시에는 참석자 전원이 고개를 숙이고 숙연한 분위기를 보여 강사인 오오바 씨도 가슴이 뭉클했다고 전한다. 원래 이날 강연은한국의이윤옥 시인이 직접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사정상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고려박물관에서 한국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코케시(일본의 전통 나무 인형)를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이곳 쓰가루 지역의 유명한 코케시(인형)작가 였습니다만 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나무인형을 만드는 것을 무관심하게 봐왔고 흥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코케시 강사가 되어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고지마 리카(小島利夏) 씨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지난 8월 8일 오전 11시 기자는 아오모리에 있는 쓰가루전통공예관(津軽伝統工芸館)을 찾았다. 이곳에는 코케시 인형 박물관이 있었는데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크고 작은 나무 인형이 2층 박물관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지마 리카 씨의 아버지이며, 코케시 인형 명장인 고지마 도시유키(小島俊幸1949~2012) 씨의 작품을 비롯하여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인형들은 모두 이름난 작가들이 만든 작품들이다. 오뚝이처럼 생긴 나무 인형에 눈, 코, 입과 머리를 그려 넣고 옷모양을 그려 넣으면 완성되는 코케시 인형은 <다카하시문서(高橋長蔵文書)>(1862)에 코우케시(木地人形)라는 표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오모리현과 아키다현에 걸쳐있는 아름다운 호수 도와다(十和田湖) 숲속에 있는 아주 작은 교회 이름은 성구주예배당(聖救主禮拜堂)이다. 어쩜 이 교회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예배당이라기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예배당일지도 모른다. 예배용 의자 서너 개가 전부인 이 교회는 1950년 미국인 선교사 봐이얼 주교에 의해 세워졌다. 봐이얼 주교는 1982년까지 여름과 가을에 도와다호수에 있는 자신의 별장(현재 봐이얼산장)에 와서 묵으면서 이 작은 교회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예배를 올리던 곳이다. 현재 이 작은 교회의 행정구역은 아키다현이지만 이 교회를 관리하는 곳은 일본성공회 소속 아오모리현의 성알덴교회(青森聖アンデレ教会)이다. 드넓은 도와다호수 한켠에 있는 프린스호텔에서 호숫가를 따라 한 10여분 걸으면 이 작고 소박한 교회가 나온다. 아주 작은 교회지만 처마에는 작은 종도 달려있고 내부에는 십자가 주변에 여러 성인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걸려있다. 말 그대로 귀엽고 깜찍한 호숫가의 작은 예배당이다. 호숫가를 산책하다 만난 이 작은 예배당에서 요우코 씨와 나는 작은 종을 쳐보았다. 뎅그렁 뎅그렁... 울려퍼지는 종소리가 고요한 숲속을 깨운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그 마을은 허허벌판에 논 외에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마을이다. 그 유명한 아오모리의 사과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평야지대에 보이는 것은 끝없는 논 뿐이다. 이러한 마을에 관광버스가 연신 드나든다. 대체 뭘 보러 사람들이 이렇게 몰리는 것일까? 기자도 지난 8월 8일 화요일, 오후 5시 무렵 관광버스를 타고 이곳을 찾았다. 이곳은 이름하여 벼이삭을 이용하여 논에 예술작품을 만드는 논예술마을이다. 일본어로는 담보아트(田んぼアート)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담보(논),아트(예술) 이지만 우리말로 옮기기기 쉽지 않다. ‘논예술마을’ 이라고 해두자. 논예술마을은 일본 아오모리현(青森県) 중부에 있는 쓰가루평야(津軽平野)의 이나카다테마을(田舎館村)에 있다. 곡창지대의 논농사 지역인 이 마을 사람들은 1993년에 이 마을을 홍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벼 품종을 가지고 논바닥에 예술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마을사람들의 논예술 작품은 올해로 24년을 맞이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인구 7,984명, 세대수 2,727(2017 현재)의 작은마을에 연간 34만명(2015년 통계)이 찾아온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 작은 마을이 논예술마을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문의 : 02 -733-5027】 "모든 자유의 적을 쳐부수고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또다시 역사를 말살하고 조상을 모욕하는 어리석은 후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자기의 무능과 태만과 비겁으로 말미암아 자손만대에 누를 끼치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이 역사적 사명을 깊이 통찰하고 지성일관 그 완수에 용약매진해야 할 줄로 안다" - <사상계> 창간선언 중 지고지순한 영혼의 소유자 장준하 선생님, 당신께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뒤바꾼 잡지 <사상계>를 창간하면서 함께 선언한 선언문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역사를 전공하는 한 대학생 홍순기입니다. 역사적인 인물에게, 더욱이 제가 존경하던 분께 이렇게 직접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편지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으로 출발하여 사상계 발행인, 국회의원, 민주통일운동가까지. 선생님의 약력은 그야말로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우리문화신문= 이윤옥기자] ‘조선침략을 반성하는 모임’ 이 만든 도쿄 고려박물관에서는 지난 5월 3일부터 8월 27일까지 아주 특별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일본에서 유명한 아리타도예 400년(有田焼 400年)을 맞이하여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정식 이름은 <망향과 동화의 사이에서 조선피로인의 생활과 문화(望郷と同化のはざまで朝鮮被虜人の生活と文化)>이다. 임진왜란은 도자기 침략전쟁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수많은 조선 도공들이 일본땅에 강제로 끌려갔다. 이들이 아리타 일대에 자리잡은 지 올해로 400년, 일본 최고의 도예 문화를 꽃 피운 이들의 이야기는 더러 한국의 언론이나 방송에서소개된바 있다. 하지만 일본 도예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 조선도공들의 뒷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소개된바 없다. 이번 고려박물관 전시에서는 조선도공들이 아리타 일대에서 뿌리내리게 되기까지의 역사와 그간의 과정을 400년이란 시간의 흐름에 맞춰 이해하기 쉽게 전시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조선도공들이 일본 땅을 밟기까지의 전후사정, 피로인(被虜人: 피로인이란 원래 조선 문헌에서 사용한 역사용어로 특히 ‘임진왜란 중 일본군에 의해 납치된 민간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대관절 땅이 얼마나 큰 겁니까?” 나는 요우코(陽子) 씨에게 물었다. “한 4천 평 정도될 거예요.” “네? 4천 평이요?” 요우코 씨 집은 아오모리현 고노헤(五の戸)의 주택가에서 좀 떨어진 숲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4천 평이나 되는 넓은 숲속에 달랑 요우코 씨 집 한 채뿐이었다. 집을 에워싼 숲 속에는 이름 모를 꽃 들이 활짝 폈다. 아! 정말 요우코 씨는 숲속의 요정 같았다. 미술관처럼 지어놓은 요우코 씨 집안에 들어서자 드넓은 숲 정원이 거실 통유리 너머 가득 펼쳐진다. 탄성을 지르며 소파에 앉자 그녀는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 따끈한 허브차를 내왔다. 여름이라지만 비가 내리는 아오모리는 마치 늦가을처럼 썰렁했는데 따스한 차가 제격이었다. “우리집 말인데요. 여긴 땅값이 싸요. 1평에 1만 원(한국돈) 정도랍니다.” 음... 그렇다면 4천 평이라면 4천만 원? 도쿄에 견줄 수 없는 싼 가격이다. 요우코 씨는 북적이는 도쿄의 삶을 정리하고 아오모리에 정착한지 10년째다. 드넓은 토지에 단독주택을 지어 정원에는 온갖 화초를 심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일본인들의 “로망”을 이룬 것처럼 보였다. 이 부부는 가끔 도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