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 기자] 무궁화 꽃을 길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것도 일본의 거리에서 말이다. 무궁화가 나라꽃인 한국에서 특히 서울 같은 경우에는 거의 거리에서 무궁화를 보기가 어렵다. 대관절 이래 가지고 무궁화가 나라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은평구 홍제천변 등을 걸어보면 새로심은 벚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다.또한 구파발역에서 가까운 삼송농협하나로마트 길에도 새로운 거리를 조성하면서벚꽃만 무더기로 심었다. 기자는 지난 2주동안 와세다대학 도서관에 가기 위해 지인 집에서 묵으면서 4개의 정거장을 걸어다녔다. 지인 집이 있는 시미즈로부터 메구로역까지는 쇼보쇼, 모토케바죠, 오오도리신사, 곤노스케자카를 지나야 역이 나온다. 이렇게 걸으면 걸음수로는 5천보 정도이고 시간은 30분 정도 걸린다. 걷는다는 것은 몸에도 좋은 일일뿐더러 동네를 샅샅이 관찰하기에도 좋다. 그것이 이국땅이면 더욱 좋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손바닥만한 공간만 있으면 꽃을 심는 일본인들의 습관이다. 그것도 자기 정원도 아니고 큰 길가의 가로수가 있는 작은 공간을 이용해 온갖 꽃을 가꾸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더 인상적인 것은 심은
[우리문화신문=아오모리 이윤옥 기자] 어제(8일) 저녁 6시 반, 아오모리 시내 신마치에 있는 아오모리국제호텔 쿠카(kukka)룸에서는 아주 조촐한 한일교류의 밤 행사가 열렸다. NPO아오모리코리아넷(이사장 스미 도시유키) 회원들이 정성껏 마련한 환송의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의 인천관동갤러리(관장 도다 이쿠코) 회원 20여명의 회원이 참석하였고, 일본쪽에서는 22명이 참석하여 ‘일한우호친목교류회(日韓友好親睦交流會)’라는 이름으로 2시간 여 동안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한국 회원들은 지난 8월 6일부터 9일까지 3박 4일간 아오모리 네부타 축제를 비롯한 히로자키의 전통공예관, 산나이마루 신석기 유적지 등을 돌아보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충실한 여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오모리의 ‘NPO아오모리코리아넷’ 회원들의 열과 성을 다한 보살핌이 있어 가능했다. 일본 최대의 사과 산지인 아오모리에서 펼쳐진 동북지방 최대의 여름 축제인 아오모리네부타 마츠리(축제)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을 한 순간에 날려버릴만한 통쾌한 축제였다. 이번 아오모리 축제를 보고나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많더라’라는 속담으로 바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디가 아픈 것일까? 중년 남자는 몸을 조아리고 연신 철불(鐵佛)을 씻어 주고 있었다. 도쿄 스가모 고간지(高岩寺)에는 병 치료에 영험한 철불(鐵佛)이 있는데 이 철불을 만지면 온갖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있어 특히 고령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철불 이름은 도게누키지장(とげぬき地蔵, 바늘을 빼준 지장이라는 뜻)으로 옛날 한 무사의 시녀가 바늘을 삼켜 고생하다가 이 철불에 기도하여 바늘이 빠졌다는 뜻에서 유래한다.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지는 중생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성불을 못 한다는 보살로 한국의 경우 명부전(冥府殿)의 주존불로 믿고 있다. 명부전을 지장전이라고도 부르며 명부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이 있다고 해서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지장전에는 지장보살상을 중심에 모시고 좌우에 도명존자, 무독귀왕, 그 좌우에 시왕을 안치하고 앞에는 동자상ㆍ판관(判官)ㆍ녹사ㆍ장군(將軍) 따위를 갖춘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절에 따로 명부전이 없으며 고간지(高岩寺)처럼 지장보살상 만을 모시거나 자녀를 지켜주는 뜻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子安地蔵) 형태의 지장보살상을 모시는 곳도 있다. 관서지방에서는 지장봉(地蔵盆, 봉(盆)이란 한가위를 가리킴)이라고 해
[우리문화신문=아오모리 이윤옥 기자] 오전 10시지만 이미 해는 중천에 떠올라 푹푹 쪄대고 있었다. 그러나 일정대로 어제(8일) 오전 10시,일본의 신석기시대 유적지인 아오모리 외곽의 산나이마루야마유적지(三内丸山遺跡地)를 찾았다. 유적지 주차장에는 전국에서 이를 보러 온 대형 관광버스들로 초만원이었다.산나이마루야마유적지는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 1992년 아오모리현의 종합운동장공원확장 기획의 한 고리로 야구장 공사를 추진하던 중 이 유적지가 발견된 것이다. 특히 1994년 7월에 대형 굴립주(堀立柱) 건물 유적이 발견되자 이를 보존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아오모리현은 건설 중이던 야구장공사를 그해 8월 전면 중단하고 이 유적을 보존하기로 결정하였다. 산나이마루야마유적은 죠몽시대(繩文時代) 전기에서 중기(약 5500년~4000년)의 유적지로 이 시기의 특징은 새끼줄 무늬를 새긴 토기를 만들어썼다고해서 '노끈 승'(繩)자를 써 승문시대(繩文時代, 죠우몽지다이)라고 부른다. 과연 토기시대를 대변하듯 이 유적지에서 발굴된 토기 전시장 안에는 빼곡한 토기들로 가득 차 있었고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여 이를 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흙으로 사람
[우리문화신문=아오모리 이윤옥 기자] 동북최대의 마츠리로 꼽히는 아오모리 네부타마츠리 현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어제(6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아오모리 시내에서 열린 네부타 행렬은 이번 축제의 절정이었다. 네부타마츠리는 지난 1일의 전야제를 시작으로 7일까지 열리는데 어제 행렬이 가장 큰 규모로 대형 네부타 22대가 출정했다. 이번 네부타마츠리에는 한국의 인천관동갤러리(관장 도다 이쿠코)를 중심으로 한 회원 20여명이 참석했는데 아오모리 쪽에서는 ‘아오모리 코리아 넷(대표 스미 도시유키)’이 중심이 되어 공항까지 마중 나오는 등 열과 성을 다해 아오모리 네부타 축제를 보러온 한국 회원들을 대접했다. 해마다 전야제를 포함한 8월 1일부터 7일까지 7일 동안 아오모리 시내에서 열리는 네부타 마츠리는 센다이(仙台)의 칠석마츠리, 아키타(秋田)의 칸토(竿灯) 마츠리와 함께 일본 동북 지방의 3대 마츠리로 꼽힌다. 특히 아오모리의 네부타마츠리는 7일 동안 관광객 수가 무려 300만 명이 몰려들 정도로 인기가 있어 호텔은 물론이고 몇 달 전부터 비행기표를 예약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오모리 네부타마츠리는 1980년에 국가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 “김 사장님은 진보쵸의 얼굴입니다. 우리가 무척 좋아하는 분이지요. 사실 일본의 대형서점 기노쿠니야 같은 곳에 가면 책이 너무 많아 고르기가 쉽지 않아요. 규모가 큰 곳에서 한나절만 있다보면 즐거운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너무 피곤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오면 차도 마실 수 있어 마음이 편한데다가 사장님이 좋은 책을 골라주니 부담도 없고요.” 도쿄 최대의 고서점가 진보쵸(神保町)의 한국 북까페 <책거리(CHEKCCORI)>에서 만난 출판사 쇼분사(晶文社)의 사이토 노리타카 씨는 <책거리>의 김승복 대표를 그렇게 소개했다. 마침 이 자리에는 쇼분사의 아다치 에미 부장도 함께 했다. 지난 8월 1일 저녁 7시, 고서적가인 진보초의 북까페 책거리 주최로 ‘계속 이어지는 도시의 기억 모던인천(生き続ける都市の記憶モダン仁川)’ 이란 주제의 강연이 있었다. 강사는 서울에 살고 있는 도서출판 토향 도다 이쿠코(戸田郁子) 대표와 한양대 도미이 마사노리(富井正憲) 객원교수였다. 그날 기자는 처음으로 진보초에 한국 북까페 <책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본에 올때마다 진보쵸 서점가를 그렇게 드나드었는데,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텔레비전 드라마 박물관” 안에서는 14인치 정도의 작은 흑백 텔레비전에서 1950년대 드라마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관람객들은 당시를 회상하듯 그때 그 시절 드라마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로 말하자면 텔레비전이 처음 나왔을 때 인기를 모았던 ‘여로’ 쯤 되는 모양이다. 1953년 2월 1일. 일본에 처음으로 텔레비전 방송이 전파를 내보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방송국 문을 연지 3일 만에 내보냈는데 일본 최초의 텔레비전 드라마 ‘산길의 피리’를 시작으로 일본의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의 막이 오른 것이다. 당시 드라마는 아직 녹화 기술이 여의치 않아 모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배우나 제작진 모두 진땀을 흘려야했다. 녹화 기술은 5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겨우 VTR이 도입되어 가능해졌다. 1959년 일본 황실의 황태자 결혼식을 계기로 텔레비전 보급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후 70년대 들어서 드라마 제작의 다양화가 꾀해져 이 시기를 일본 드라마의 황금기라 부를 만큼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서는 버블경제의 영향과, 이라크 전쟁, 한신대지진 등 악재가 겹쳐 이전 시대의 다양성 보다는
[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기자] “거리의 모습까지 뚜렷이 나타난 조감도/철저한 답사로 모은 사진과 자료/ 1930년대 인천을 세밀하게 기록한 작업이/오랫동안 음지에서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 기록에 다시 생명을 불어 놓아/ 이 시대에 활용할 수 있도록 이 책을 펴냈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미래에 전달하는 작업이다.” - 『모던인천 시리즈 1, ‘조감도와 사진으로 보는 1930년대’』, 도서출판 토향- 1930년대 인천을 세밀하게 그린 조감도? 음지에서 외면? 이 시대에 활용? 역사를 미래에 전달하는 작업이라니? 기자는 이 책 뒷장에 소개한 이 글귀를 어제 저녁 도쿄의 강연장 한 구석에서 내내 곱씹고 있었다. 제법 굵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제 (8월 1일) 오후 7시, 도쿄 고서적가인 진보쵸(神保町)에서는 북까페 ‘책거리(CHEKCCORI)’ 주최로 ‘계속 이어지는 도시의 기억 모던인천(生き続ける都市の記憶モダン仁川)’ 이란 주제의 강연이 있었다. 강사는 서울에 살고 있는 도서출판 토향 도다 이쿠코(戸田郁子) 대표와 한양대 도미이 마사노리(富井正憲) 객원교수였다. 어제 행사는 서울에서 막 출판해 가지고 온 『모던인천 시리즈 1, ‘조감도와 사진으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와세대대학 서점에서는 어떤 책들이 잘 팔리고 있을까? 점심 무렵에 서점 안에 들어섰으나 방학이라 그런지 찾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서점 입구에는 등산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코너를 마련해 놓았는데 《시작하자 등산》, 《일본 백 명산 등산지도》 띠위등산 관련 책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다른 코너에는 일반 서점처럼 베스트셀러 책을 진열해 놓았는데 주간 랭킹을 문고판과 일반책으로 구분해서 순위를 3위까지 매겨 놓았다. 문고판 1위는 에도시대 시인인 마츠오바쇼의 ‘오쿠노호소미치(奥の細道)’ 2위는 스미노요루의 청춘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3위는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였다. 한편 일반 신간의 1위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입문’, 2위는 무로마치 시대의 내분을 그린 ‘관응의 요란(観応の擾乱)’ 3위는 ‘메뚜기를 쓰러뜨리러 아프리카로(バッタを倒しにアフリカへ) ’였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점이다 보니 시중의 베스트셀러와는 조금 다를 것이다. 특히 문고판 1위 자리에 마츠오바쇼 작품이 올라있는 것을 보면서 일본 대학생들이 고전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하이카이(俳諧, 5.7.5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 한여름밤 봉오도리(盆踊り) 잔치가 벌어진 스가모상점가에는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봉오도리를 추며 더위를 잊고 있었다. 봉(盆)이란 오봉(お盆)으로 한가위를 뜻하며 오도리(踊り)란 춤을 말한다. 구태여 해석하자면 한가위를 맞아 추는 춤이지만 요즘에는 한가위와 무관하게 ‘봉오도리’ 잔치가 곳곳에서 열린다. 이날 열린 봉오도리의 정식 명칭은 '스가모납량봉오도리대회(巣鴨納凉盆踊り大會)다. 스가모상점가 주최로 열리는 봉오도리는 지난 7월 28일부터 시작하여 8월 1일까지 닷새동안 저녁6시부터 9시까지 여러 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나와 춤을 추며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특징은 구경꾼들도 모두 함께 어울려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다. 2층으로 꾸민 무대는 맨 위에 악사들이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추고 그 아래 무대인 1층에서는 봉오도리 참가 팀들이 춤을 춘다.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는 무대를 빙둘러 싸고 일반 관객들이 함께 춤을 추는 구조로 되어있다. 거의 스가모상점가 사람들과 그 가족이 주류를 이루지만 인근 주민들과 외국인들도 눈에 띈다. 무대가 설치된 고간지(高岩寺)에는 병치료에 영험한 철불(鐵佛)이 있는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