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문의 : 02 -733-5027】 이 편지는 저승에 계신 아버지(金哲煥)의 이승 탄신 100주년을 맞아, 탄신 120주년과 순국 90주기를 맞으시는 천상에 계신 조부님(金相潤)께 하시는 말씀을 아들(金基鳳)이 받아 대필한다.》 아버지 !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첫 번째 배우는 말 세 마디가 “엄마, 맘마, 아빠”라고 합니다만 소자는 이승과 저승을 합하여 100년만에 생명을 주신 선친께 처음으로 불러보는 호칭입니다. 소자의 유아기는 기억할 수 없습니다만 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는 이름(金哲煥)만 기억합니다. 유년기는 다른 아이들에게 다 있는 아버지가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왜 없는지도 몰랐습니다. 날마다 왜놈 순사들의 다그침에 벌벌 떠는 어머니(驪州李氏 東連)가 매섭게 잡은 손에 끌려 남의 집 헛간이나 처마 밑에서 눈비와 냉기를 피해가며 얻어온 찬밥으로 허기를 달랜 기억밖에 없습니다. 고향 밀양군 상남면에는 숙부님(金相元), 고모님과 4촌 형제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왜놈 순사들 등살에 우리
[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 기자] 멀거니 서서 하루종일 오고가는 사람들을 바라다보는 개, 그 이름은 하치, 조금 격을 높여 부를 때 하치코((ハチ公)이라고 부른다. 도쿄 시부야역, 이곳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만남의 장소이다. 예전에 우리네 서울역 시계탑과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서울역 시계탑 앞이 만남의 장소로 여전히 효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시부야역의 하치 동상은 여전히 인기 있는 명소다. 충견 하치는 1923년 일본 북부 아키타현에서 태어났다. 이른바 아키타견(秋田犬)으로 한국의 진돗개만큼이나 뼈대 있는 족보다. 태어난 이듬해 충견 하치는 개를 좋아하는 동경제국대학 농학부 교수인 우에노 씨 집으로 오게 된다. 우에노 교수는 하치에게 꼬리표를 달아 화물열차 편으로 아키타에서 도쿄까지 실어 오는데 무려 20시간의 긴 여행길이었다. 이때부터 하치는 우에노 교수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대우 받으며 무럭무럭 크게 되는데 충견 중에 충견인 만큼 주인의 극진한 사랑을 뼈 속까지 느끼게 된다. 우에노 교수 집에는 하치 말고도 죤과 에스라는 개가 있었는데 유독 하치만은 주인의 출퇴근 시에 현관에서 배웅을 했으며 어느 날 부터인가는 주인이 이용하는 시부야 역까지 마중을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기자]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 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객석을 꽉 메운 청중들이 하나가 되어 김민기의 아침 이슬을 부른다. 여기가 일본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고 기자도 함께 우리말로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어제 (7월 29일) 오후 2시부터 도쿄 신오쿠보의 아트코트홀에서는 재일동포 가수 이정미 씨의 음악회가 있었다. ‘다문화공생의 거리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주제로 NPO법인 고려박물관 주최의 행사였다. 이정미! 부끄러운 일이지만 기자는 어제 공연에서 이름을 처음 들었다. 일본에 오기 전에 도쿄의 지인으로부터 “7월 29일 이정미 가수의 음악회에 가볼거냐? 예약을 해야하니 알려달라”는 전화를 받고 “좋다”라고 했지만 전혀 이정미 가수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 어제 음악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2시 부터 공연이었는데 미리 예약한 입장표(3000엔)를 지인이 갖고 있어 30분전에 음악회장에 도착했다. 35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시 30분에 도착한 음악회장은 벌써 초만원이었다. 재일동포 가수 이정미 씨의 일본팬들로 가득 메운 공연
[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 기자] 일본 거리를 걷다보면 가끔 긴 행렬의 줄을 선 사람들과 맞닥트리는데 호기심이 발동하여 무슨 줄이냐고 묻고 보면 다소 황당하거나 의아하기 조차 한 경우가 있다. 어제 낮, 볼일이 있어 JR하라주쿠역 근처에 갔다가 목격된 2열의 긴 줄이 궁금하여 물었더니 아뿔사 역 건너 다케시타거리 입구에 생긴 한국의 설빙이라는 빙수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줄이란다. 1시간 째 뙤약볕에서 서있었다는대기 순번 1순위인 두 아가씨에게 물었다. “저는 두 번째구요, 제 친구는 오늘이 처음이에요. 한번 먹어보니 아주 맛있어서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너무 많이 기다리네요.” 이쯤되면 일사병이라도 걸려 쓰러질 지경이지만 줄꼬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자가 아가씨들과 이야기하는 동안 늘어선 사람만도 30여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그런가 하면 그제 JR시부야역 마루이백화점 앞도 진풍경은 마찬가지였다. 아침 10시 백화점 문을 여는 시각을 기다리기 위해 9시도 채 되기전부터 긴 행렬을 짓고 있었다. 기자가 8시 50분쯤 그 행렬을 지나갔으니 이들은 1시간도 더 기다려서야 10시에 문을 여는 백화점에 들어갔으리라. 마루이백화점이 그날 특별한 할인판매를 한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 요즈음 한국에서는 혼자 먹는 밥 ‘혼밥’, 혼자 먹는 술 ‘혼술’ 같은 말이 유행한다.혼자 술집에 들어가거나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어색한 시대를 살아서 그런지 일본에서 혼자 식당에 들어설라치면 왠지 주변을 의식하게 되지만 이곳사람들의 '혼밥'은 흔한 일상일 뿐이다. ‘혼밥’ 같은 새로운 낱말을 만들 필요조차 없을 만큼 일반화 된 이야기라고나 할까? “한국 식당에서 불만은 2인용 이상 주문 가능” 같은 ‘차림표’라고 말하는 일본사람들이 있다. 반면 일본의 식당은 혼자 들어가서 밥 먹는게 너무도 당연하여 우리처럼 따로 “2인용 이상” 같은 이상한 차림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 대도시 역전 앞에는 ‘빠르고, 싸고, 맛있는’ 식당으로 <요시노야(吉野家), 1899창업>, <마츠야(松屋), 1966창업>, <스키야(すき家), 1982년 창업> 같은 식당이 성업 중이다. 이들 식당의 역사가 몇 십 년씩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인들의 ‘혼밥’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관광차 일본에 와서 끼니가 걱정되거나 마땅한 먹거리를 발견 못한 사람들은 위 식당을 찾아가면 김치비빔밥, 김치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 일본대학의 캠퍼스 모습은 어떠할까? 아직 여름방학 전으로 기말 시험이 한창인 와세다대학(1882년 설립)캠퍼스를 찾았다. 한국의 대학은 이미 여름방학으로 들어간지 1달이 넘어가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1달 가량 늦다. 일본은 대학 마다 약간 다르지만 7월 마지막 주부터 9월 마지막주 까지 2달간 여름방학이다. 기말고사가한창이라 그런지캠퍼스를 걷는 발걸음이여느때 보다빠른 느낌이다. 사학의 명문 답게 캠퍼스에는 외부인들이 단체 견학을 오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데 어제(26일)도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캠퍼스 구경을왔다. 캠퍼스 게시판은 곧 방학을 맞이해서 텅비어 있고, 여기 저기 방학특강을 위한 선간판들이 큼지막하게 놓여있다. 역시 대학 캠퍼스라 그런지 주제 또한 묵직한데 "국제정치에 있어서의 핵무기의 의의란", "헌번 9조의 개악절대저지, 공모죄법을 철폐하라", "조선핵전쟁 반대" 등과 같은 제목의 강연들이 캠퍼스를 달구고 있었다.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기자]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난 23일(일) 오후 3시, 오사카의 끽차미술관(喫茶美術館)에서는 윤동주를 기리는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이날 모임의 취지는 윤동주가 한글로 시를 쓴다는 이유로 교토에서 ‘치안유지법’으로 잡혀 후쿠오카 형무소로 옮겨진 날을 기억하기 위한 자리였다.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로 잡혀간 것은 1943년 7월 14일로, 그 뒤 1945년 2월 16일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잡혀갔을 때 까지 멀쩡하던 그가 형무소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에 대해 일본측 기술(記述)의 대부분은 “복역중 사망했다(服役中に死亡した)”라고 쓰고 있다. “왜 사망했는지?”에 대한 답이 없다. 하지만 그런 윤동주를 기억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이 있다. 2011년부터 모임을 가져 올해로 7년째를 맞이하는 이 모임은 ‘교토에서 후쿠오카로 잡혀간 윤동주를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모임이다. 지난 23일 모임에서는 1부에 윤동주를 추모하는 노래 “새로운 길(新しい道)”과 “별을 노래하는 밤(星を数える夜)”을 가수 강석자가 불렀다.(피아노 유수향 씨) 이어 2부에서는저널리스트인 나카무라 이루손(中村一成) 씨의 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같은 동양권이지만 일본은 한국과 달리 초복이니 중복이니 하는 복날이 없다. 따라서 복달임(복날에 그해의 더위를 물리치는 뜻으로 고기로 국을 끓여 먹음)도 없다. 대신 토용의 소날(土用の丑の日, 도요노 우시노히)이라고 해서 장어(우나기)를 즐겨 먹는다. “옛날에는 장어를 그렇게 쉽게 먹을 수 없었지요. 그러다 보니 무더위에 장어라도 먹고 힘내라는 뜻에서 장어를 먹는 풍습이 생긴 것은 아닐까요?” 다카라 아이코(73살)씨는 어제 7월 25일 ‘장어 먹는 날’에 대한 유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게 답을 했다. 기자는 보름 일정으로 다카라 씨 집에 묵고 있는데 ‘장어 먹는 날’ 인 어제 특별히 저녁 식탁에 ‘장어(우나기)’가 올라오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쩜 복날이라고 해서 한국인의 식탁에 모두 삼계탕이 오르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 모른다. 특별히 장어를 먹게 된 유래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는 에도시대(江戸時代、1603~1868)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더운 여름철에 장어가 하도 안 팔리자 장어집 주인이 당대 유명한 학자인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内,1728~1780)에게 어찌하면 장어를 만히 팔 수 있는지를 문의 했다고 한다. 그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 로니는 올해 12살 먹은 다카라 씨의 애견이다.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 상태로 6년을 살았으니 생애 절반을 장애로 산 셈이다. 로니는 24시간 기저귀를 차고 있다. 앞다리 두 개만 움직일 뿐 하반신은 완전 마비상태인지라 누가 잠시라도 곁에서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다카라 씨 집에서 로니와 만 하루를 지내면서 로니도 로니지만 다카라 씨도 여간 고생이 아니란 걸 실감했다. 다카라 씨는 올해 73살로 이제 고령의 나이다. 체구도 크지 않은 다카라 씨가 덩치 큰 로니를 다루기에는 역부족이란 생각이지만 다카라 씨는 마치 자식이라도 다루는 양 애지중지 돌보고 있다. 엊저녁은 저녁밥을 먹은 뒤 로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동네 산책을 했다. 로니를 위해 특수 제작한 휠체어에 로니를 태우는 일조차 쉽지 않았지만 다카라 씨와 로니는 호흡을 척척 맞추며 로니를 휠체어에 태웠다. 그러자 로니는 롤러스케이트를 탄 양 앞발로 힘차게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로니에게는 하루의 활력을 되찾는 시간이다. 산책은 주로 저녁 시간에 하는데, 아침이나 낮을 피하는 것은 출퇴근 하는 사람과 차들이 오가기 때문에 로니가 마음 놓고 걷
[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기자] '파리에서 배운 화가들<パリから学んだ画家たち>'전이 열리고 있는 와세다대학 아이즈야이치 기념박물관(會津八一記念博物館)을 찾았다. 일본의 서양화가 28명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전시장은 명치시대(1868~1912)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화가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그린 그림들을 전시 중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것처럼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그림을 공부한 사람들의 그림의 소재는 거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화시대(1926~1989)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오카 시카노스케(岡 鹿之助, 1898~1978)의 강언덕(河岸)만 해도 그렇다. 이번에 전시중인 그림들은 아이즈야이치 기념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로 1930년에 그린 고지마 젠타로의 유채꽃(菜の花)을 비롯하여, 가와시마 리치로의 1952년 작품인 선쿠루의 초여름 등 모두 28점으로 15점은 1층에서 나머지 13점은 2층 전시장에 전시중이다. 꽃이라든가 시골 교회 풍경, 성(城)의 모습, 장미의 숲 같은 유화 그림들은 안온한 느낌이 드는가 하면 추상이 아닌 실물을 그린 것들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촌스런(?) 느낌도 든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