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1938년 간도성 용정(현 중국 길림성 연변자치주 용정시)의 동흥중학교 졸업 앨범에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가 나와 있습니다. 80년 전의 수학여행이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사진작가 류은규 씨가 모은 시각자료로 그 궁금증을 풀어 나갑니다. 류은규 씨는 20 여 넌 전부터 중국 동북지방을 다니면서 중국 조선족의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해왔고, 지금까지 5만장에 이르는 역사적인 사진자료를 모아왔습니다. 그동안 [잊혀진 흔적-독립운동가의 후손들][잊혀진 흔적 2-사진으로 보는 조선족 백년사][연변문화대혁명] 등의 사진집과 [잊혀진 흔적][만주 아리랑] 등의 대규모 시각전시를 몇 차례 선보였고, 귀중한 자료를 독립기념관에 제공하거나 재단법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아카이브에 수록하는 등 만주지역 우리 동포 역사의 흔적을 증명하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1938년 간도성 용정의 동흥중학교 졸업 앨범에 실린 수학여행 코스인 기차 길을 따라 류은규 씨가 모은 옛 사진엽서 120 여장을 정리하였고, 그 당시 간도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함께 공개합니다. 고속열차가 없었던 시대, 학생들은 증기기관차를 타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자랑스러운 점을 들라하면 제 자신의 뿌리가 한국인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부모님이 한국의 독립을 위해 큰 노력을 했다는 것이 가슴 뿌듯하며 실제로 그러한 노력의 결과 독립을 실천했다는 사실은 자손으로서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박신애 애국지사의 따님인 에스더 천 씨는 2015년 항일영상역사재단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와이로 건너가 하와이 대한부인구제회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박신애(1889~1979) 지사는 1920년대 말 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재정부족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당시 사탕수수 노동자로 하와이 땅을 밟은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넉넉하고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임시정부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박신애 지사를 비롯한 여성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독립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준 하와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고마움을 백범 김구는 그의 자서전에 잊지 않고 그 이름 석 자를 남겼다. “나의 통신(하와이 동포들에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린이 날을 만들어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티없이 자라도록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한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이 독립운동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90년에 정부로 부터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은 방정환 선생은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고, '어린이날'을 제정했으며, 아동문화운동단체 색동회를 조직하여 33세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아동 운동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어린이를 위한 문화활동으로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고, '소파상'이 제정되어 해마다 시상되고 있다. 방정환 선생은 서울 종로 출신으로 1913년 선린상업학교에 들어가 2년 중퇴한 뒤, 1917년에 비밀결사로서 청년구락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천도교에 입교하여 손병희 선생의 3녀 용화 여사와 결혼, 191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신청년」, 「신여자」, 「녹성(綠星)」등의 잡지 편집을 맡아보았다. 1919년 3ㆍ1운동 때에는 손병희의 사위로서 그의 영도 하에 천도교청년회(天道敎靑年會)의 회원으로 3ㆍ1운동 준비에 협력하고, 또한 오일철과 함께 집에서 「독립신문」을 등사하여 배포하던 중 일제 경찰에 잡혀 구속되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4월의 하늘이 몹시도 푸르른 하와이의 봄날! 아름다운 꽃다발 한 아름을 안고 물어물어 저는 지사님 무덤을 찾았습니다. 부군 되시는 이동빈 선생님과 나란히 묘비석을 사이에 두고 지사님은 잠들어 계셨습니다. 저는 지난 4월 13일부터 21일까지 지사님을 비롯하여 하와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호놀루루부터 시작하여 와이파후에 있는 사탕수수 자료관 까지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금이야 8시간이면 닿는 땅이지만 지사님이 그곳에 도착하던 1916년은 배편으로 한 달이나 걸려 도착할 수 있는 먼 곳이었지요. 지사님은 당시 1916년 6월 21일 호놀루루항에서 입국 비자를 받을 때 홀몸이 아니라 세 살 난 딸 옥희와 함께였습니다. 어린 딸과 함께 긴 항해를 하시면서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을 가졌을지 상상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뿐인가요? 이미 조국은 일제의 마수에 넘어간 상태라 떳떳한 한국인의 여권이 아닌 일본제국의 여권으로 하와이 땅에 발을 디뎌야했으니 더더욱 가슴이 아팠을 것입니다. 지사님 무덤을 찾아가기 전 저는 지사님의 외손자이신 티모시 최 선생님을 하와이대학에서 뵈었습니다. 티모시 최 선생은 외할머니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의 안데르센이라 불리는 오가와미메이(小川未明,1882-1961)의 작품 가운데 “찔레꽃” 이란 게 있다. 원래 일본말로는 노바라(野ばら)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찔레꽃” 또는 “들장미”로 번역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인들에게 “들장미”와 “찔레꽃”은 사뭇 다른 이미지로 다가서지만 일본말은 이 둘을 가리키는 말이 “노바라(野ばら)”다. 오가와미메이의 작품 ‘노바라(野ばら)’를 필자는 “찔레꽃”으로 번역하고 싶다. 가수 장사익은 찔레꽃 향기가 짙어 너무 슬프다고 했는가? 오가와미메이의 “찔레꽃” 줄거리는, 국경선을 사이에 둔 두 나라 병사가 전쟁이 없는 상황에서 친하게 되어 장기도 두고 말동무도 하다가 갑자기 한쪽의 병사가 전쟁으로 국경 수비대를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긴다. 두 나라 병사는 한쪽이 노인이고 한쪽이 젊은이었다. 젊은이가 국경 수비대를 떠나기 전까지 두 병사는 날마다 마주치면서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때가 바로 찔레꽃 필 무렵이었다. 유독 가슴 시린 향기를 내뿜는 찔레꽃 주변에는 언제나 꿀벌들이 날아들었고 적이자 동지가 된 두 사람은 마치 친아버지와 아들처럼 친하게 되지만 결국 젊은이는 전쟁터로 배치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사방을 둘러보아도 (임시)정부의 사업 발전은 고사하고 이름이라도 보전할 길이 막연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임시정부가 해외에 있는 만큼 해외 동포들에게 의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백범일지, 도진순 주해, 돌베개. 318쪽》 백범 김구 선생이 꾸려가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세 들어 살던 집세가 밀리기 시작하여 조국 광복의 꿈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광복을 이루고자 큰뜻을 품고 세운 임시정부의 활동은커녕 이제 그 이름조차 사라질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이들에게 희망을 준 사람들은 미주, 하와이,멕시코, 쿠바 등에 사는 동포들이었다. 이 가운데 특히 하와이의 여성독립운동가 심영신 지사와 박신애 지사는 《백범일지》에 다음과 같이 그 이름이 뚜렷이 남아있다. “나의 통신(하와이 동포들에게 쓴 편지)이 진실성이 있는데서 점차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하와이의 안창호 (여기 안창호((安昌鎬)는 도산 안창호(安昌浩)와는 다른 인물로 하와이 국민회 계통 인물이다.), 가와이, 현순, 김상호, 이홍기, 임성우, 박종수, 문인화, 조병요, 김현구, 안원규, 황인환, 김윤배, 박신애, 심영신 등 제씨가 나와 (임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4월26일부터 4월28일까지 킨텍스에서 개최되는 2017 세계한인무역협회(이하World-OKTA) 세계대표자대회에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세계 그림책 기증 운동이 진행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시장 최성) 도서관센터와 world-OKTA의 협력사업으로 진행한 「글로벌 그림책 나눔 1촌 맺기」는 고양시가 민선5기부터 꾸준히 구축해온 고양 경제인 글로벌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여 추진된 것으로 전 세계 70개국 140개 지회 2,30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world-OKTA의 회원들이 연1회 국내에서 회의를 갖는데 이때 참석자들이 활동하는 지역의 어린이 그림책을 기증하는 사업으로 이번 대회기간에 기증된 다양한 세계 그림책 500여권을 고양시에 전달했다. 이번 기증식에서 World-OKTA 박기출 회장은 이번 그림책 기증과 같이 의미있는 일에 OKTA가 참여하게 되어 기쁘고 고국의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통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대한민국의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그림책 기증 운동이 일고 있어 매우 신선하고 고양시와 경제교류외에도 문화교류도 발전시켜 나가길 희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 사람이 하와이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03년 1월 13일 첫 이민선 캘릭호를 타고 호놀룰루항에 도착한 것이 최초다. 이때부터 1905년 8월 8일까지 56회에 걸쳐 하와이 땅을 밟은 사람은 7,291명에 이르렀다. 초기 이민선을 탄 사람들은 사탕수수 밭 노동을 위해 건너 간 사람들이다. 1905년 당시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전체 노동자 48,229명 가운데 한인은 4,683명으로 9.71%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일본사람들이 하와이에 첫발을 디딘 것은 언제일까? 일본인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하와이에 첫발을 디딘 것은 1830년대지만 본격적인 이민의 역사는 1868년이다. 이후 1902년 사탕수수밭 노동자의 70%를 일본인이 차지할 정도로 많은 일본인들이 하와이 땅을 밟았다. 그러나 1924년 일본인의 입국을 저지하는 이른바 배일이민법(排日移民法)이 가동되면서 하와이 이민자 수는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1924년 7월 1일 미국의 이민법이 제정되었는데 이 법은 각국으로부터 하와이로 들어오는 노동자 수를 무제한 받아들이지 않고 연간 제한을 두는 법으로 배일이민법은 일본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와이 사탕수수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하와이 호놀롤루 시내 한복판에 ‘히타치나무(日立の樹)’라는 것이 있어 지난주에 보고 왔다. 겉에서 언뜻 보기에는 거대한 왕릉 같아 보이는 이 나무를 현지인들은 몽키트리(원숭이나무)라고 부른다. 더 정확한 이름은 몽키포드(MONKEY POD)로 역시 원숭이와 관련이 있다. 거대한 나무 밑에 가서 줄기를 올려다보면 원숭이들이 뛰어 놀기 안성맞춤인 듯 보였다. 이 원숭이나무는 현재 일본 회사 히타치그룹의 이름을 따서 ‘히타치나무(日立の樹, 히타치노키)’로 부르고 있고 일본인들의 하와이 관광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던 4월 14일에도 주차장에는 일본 단체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히타치나무는 하와이 호눌롤루 시내에 모아날루아 가든(2850 A Moanalua Road, Honolulu, HI 96819)에 있는 나무다. 이곳에는 이와 같은 나무가 여럿 있는데 이 가운데 수령이 130년 된 가장 우람한 나무 하나를 골라 일본 히타치회사에서 자기네 회사 나무로 삼고 있다. 아예 모아날루아 가든은 ‘히타치나무공원’으로 현지에서 통할 정도다. 히타치그룹은 1970년대 초 이 몽키포드(MON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화창한 봄날인 그제(22일) 오전 10시 30분, 인천관동갤러리에 단체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경북 영주시에 사는 시민들로 “광복로 장소가치향상사업 선진지 견학” 이라는 주제로 <인천항 일본거리, 충주 목계나루 아트마켓 견학>차 상경한 단체였다. 단체를 인솔한 사람은 최인수(컬쳐플레이 대표) 씨로 영주시청 도시과 이동훈 주사, 선임연구원 정선 씨 등 전문가와 학생, 시민 등 25명이 인천관동갤러리를 방문했다. 마침 이날은 지난 2월 24일부터 (4월 24일로 종료) 인천관동갤러리에서 ‘불굴의 여성독립운동가 33인’ 전이 열리고 있어 이 전시도 함께 보면서 한국 최초의 ‘광복로’를 조성한 영주시의 광복 이미지 제고를 위한 창의적인 시간을 가졌다. 이날 영주시 소속 단체의 인천나들이는 영주시에 있는 일제강점기 국내 최초의 대한광복단 결정지이자 독립자금의 거점이었던 ‘대동상점’을 중심으로 한 곳에 추진 중인 ‘도시재생사업’의 도움을 얻기 위한 현장 학습 차원에서 였다. 영주시는 그간 ‘공공건축을 통한 도심재생방안연구(2009)’를 통해 근대건축문화자산과 공공시설을 활용한 장소 중심의 도시대생 사업을 추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