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히메지성은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입니다. 히메이지성은 많은 성 가운데 유일하게 훼손이 안 되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성이지요. 이 성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성으로 외국인들이 많이 보러옵니다. 특히 이곳 히메이지는 자연재해가 거의 없어 살기 좋은 곳이지요. 옆 도시인 고베에서 큰 지진이 났어도 이곳은 끄떡없었습니다.” 택시기사는 히메지성(姫路城)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히메이지역에서 택시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즈이간지(隨願寺)에 가기 위해 탄 택시 안에서 기사는 끊임없이 히메지가 속해 있는 효고현(兵庫県) 자랑에 여념이 없다. 흔히 택시 기사들은 자기 고장을 자랑하기 보다는 별로 좋지 않은 점을 말하기 일쑤인데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성곽(城郭)도시라서 그런지 히메이지의 택시기사는 좀 달랐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일컬어지는 히메이지성은 외곽이 흰빛으로 칠해져있어 백로 같다고하여 하쿠로성(白鷺城, 백로성)이라고도 부른다. 에도시대(1603~1868) 이전에 지어진 성 가운데 천수각이 있는 성인데 천수각(天守閣)이란 망루와 비슷한 건물로 외관은 2층 ~ 5층으로 되어 있다. 일본에서 천수각이 국보인 성은 히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허형식 장군님! 저는 허 장군님이 태어나신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마을과 조금 떨어진 원평동 장터마을 출신입니다. 허 장군님께서 어린 시절 고향집에서 금오산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듯이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제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금오산인으로 고려 말 야은(冶隱) 길재(吉再), 조선시대 사육신 하위지(河緯地)‧생육신 이맹전(李孟專), 그밖에도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정붕(鄭鵬)‧박영(朴英) 등 숱한 지조 높은 선비들의 충절 이야기를 귀에 익도록 일러주셨습니다. 아마 장군님께서도 어린 시절 집안 어른으로부터 금오산 출신 선비들의 행적을 많이 듣고 자랐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고장이 왜 근현대사에서는 충절의 인물이 없는지 한동안 절망 속에 지냈습니다. 그런 가운데 1999년 8월, 임시정부 국무령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선생 후손 이항증(李恒曾) 선생과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 선생의 후손 김중생(金中生) 선생의 안내로 중국대륙에 흩어진 항일유적지를 답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8월 4일) 헤이룽장성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許亨植)’ 장군님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문화신문= 일본 오사카 이윤옥 기자] 일요일인 어제(19일) 도쿄 이케부쿠로에 있는 릿쿄학원제성도예배당(立敎學院諸聖徒禮拜堂)에서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2017 시인 윤동주와 함께 (詩人尹東柱とともに)"라는 주제의 추모회가 열렸다. 1부 추모예배와 2부는 시낭송과 음악으로 꾸며진 이날 행사는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인들로 예배당 안팎은 행사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곳은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의 모임'으로 후원은 '릿쿄대학목회실'이었다. 또한 협력한 곳은 '윤동주를 그리는 모임', '도시샤코리언동창회', '후쿠오카ㆍ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 '윤동주의 고향을 방문하는 모임' 등으로 윤동주가 일본에서 활동했던 지역을 망라하는 큰 행사였다. 릿쿄대학에서의 추모회는 이번이 10회째로 먼저 1부에서는 윤동주 시인을 그리는 추모예배가 엄숙한rk가운데 진행되었다. 1부 예배시간에 릿쿄대학의 전 목사인 유시경(柳時京) 선생은 윤동주에게 릿쿄대학 명예 졸업증서 수여를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제1부 마지막에서는 윤동주의 생애를 음악과 시로 꾸몄는데 특히 미국에서 건너온 싱어그룹 '눈 내리는 지도(雪降る
[우리문화신문=일본 우지시 이윤옥 기자] 우지차(宇治茶)로 유명한 일본 교토 남부의 우지시(宇治市)에는우지강( 宇治川) 있다. 이 우지강의 우지교(宇治橋)라는 다리는서기 646년, 고구려 도등(道登)스님이 건설한 다리로 알려졌다. 13일(월)에 찾은 우지강은 즈믄 해(천년)의 세월을 품은 채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서 "강물을 건너다 빠져죽은 이들을 보고 이들이 안전하게 강물을 건너도록 다리를 놓은 도등스님"을 떠 올렸다. 우지는 과거 다이카(大化)부터 오우미(近江)를 거쳐 관동(關東)에 이르는 인적, 물적 유통은 물론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곳이다. 우지교는 세타노가라교(瀬田唐橋)와 야마사키교(山崎橋)와 함께 일본의 오래된 다리(古橋) 3곳으로 전해지는 데 현재의 우지교는 1996년 3월에 새로 개축한 것이다. 길이 155.4m, 폭 25m로 실제 다리를 건너가보면 그렇게 크지 않은 느낌이며 주변에 명승고적 뵤도인(平等院)을 포함한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의 고장답게 우지교는 일반 다리에서 볼 수 없는 전통미를 살린 모습이다. 우지교에 관한 기록은 《혼초고소덴(本朝高僧傳)》을 비롯하여 《니혼쇼키(日本書紀)》, 《쇼쿠니혼기
[우리문화신문= 오사카 이윤옥 기자] 긴테츠 하지노사토역(土師ノ里)은 작은 시골 역이었다. 역에 내렸을 때는 바람이 부는데다가 빗방울까지 내려 궂은 날씨였다. 2월 14일(화), 오전 11시 오사카에서 여러 번의 열차를 갈아타고 근 2시간이 걸려 고구려 혜관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이노가미데라(井上寺) 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행인은 하루 전날 교토 도시샤대학에서 가진 윤동주 추모회 때 만난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70살) 시인으로 기꺼이 기자의 '고구려 혜관스님 발자취'를 찾아 나선 길에 동행을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한국인이 일본의 옛 유적지를 답사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의 문헌이 있다해도 이미 시간적으로 1300여년의 시간이 흘러버려 해당지역에 실제 가보면 주택이나 빌딩이 들어서서 위치를 확인하기 어렵고 설사 위치가 확인되었다 하더라도 아예 땅이름이 과거를 연상할 수 없을 만큼 바뀌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날 우에노 시인과 기자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 미리 조사한 종이 한 장뿐이었다. 기자는 고구려 혜관스님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날 기자의 손에 들고 있던 역사적 기록은 1702년에
[우리문화신문= 효고현 간자키군 이윤옥 기자]"보인(寶印, 절 순례시 도장 받는 것)을 받거나 용무가 있으신 분들은 오른쪽 종루에 있는 종을 치신 뒤 납경소(納經所)로 오십시오" 2월 16일 오후 1시에 찾아간 효고현 간자키군에 자리한 곤고조지(金剛城寺, 금강성사) 일주문 입구에는 이러한 안내문이 적힌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인왕문을 들어서니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적막강산이었다. 구태여 종까지 칠 필요가 있나 싶어 살며시 경내로 들어가 종무소를 찾아도 눈에 안 띈다. 입간판에 적힌 납경소(納經所, 절 순례자들이 도장을 받는 곳)라도 찾아보려고 기웃거리다 보니 종루 뒤편 건물 안쪽에 납경소가 눈에 띄었다.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 ..." 몇 번을 부르고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다. 3주전 기자는 이곳 주지스님에게 한 통의 팩스를 보낸 적이 있다. 고구려 혜관스님이 창건한 이 절을 방문하고 싶으니 절에 내려오는 문헌 자료가 있으면 얻고 싶다는 짧은 내용의 팩스였다. 그러나 팩스를 보내고 며칠을 기다려도 답이 없어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때 주지스님은 "우리 절에 별로 자료가 없는데..."라면서 바튼 기침소리를 냈다. 목소리만으로도
[우리문화신문= 오사카이윤옥 기자] 어제 15일 오전,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일본어로 완역한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70)씨 집을 찾아가기 위해 오사카 히라카타공원역(枚方公園驛)에서 내렸다. 미리 알려준 주소를 들고 찾아가는 길은 제법 경사진 언덕길이었다. 역에서 십여 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까지는 말끔한 단독 주택들이 줄지어져 있었고 2차선 도로에는 이따금 차들이 지날 뿐 비교적 한산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어서 오세요. 많이 춥죠?" 초인종을 누르자 유창한 한국어로 고향에서 반가운 동생이라도 온듯 활짝 미소 띈 얼굴로 기자를 맞이해주는 우에노 시인 집에 들어서자 겨울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었고 거실 넘어 탁 트인 시야 건너편에는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4층짜리 아파트 단지 가운데 전망이 좋은 4층에 자리하여 집안은 밝고 환했다. 책장과 탁자, 크고 작은 화분들이 간소하면서도 깔끔한 모습으로 제자리에 알맞게 놓여 있어 시인의 조용한 성품을 느끼게 했다. 기자의 방문에 맞춰 따끈한 우지차를 끓여 내온 우에노 시인과 마주 앉은 기자는 이틀 전 (13일, 오후 3시~5시) 교토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윤동주 시비 앞에서 함께
[우리문화신문=교토 이윤옥 기자] “윤동주 노래를 통해서 한ㆍ일 간 문화교류의 가교(架橋)가 되고 싶습니다. 지난 1월 한국에 갔을 때 연세대학교의 윤동주 시비 앞에서 ‘서시(序詩)’ 노래를 불렀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2001년부터 한국어강좌에 등록했는데 이때 재일본문학회장인 김리박 시인을 알게 되었고 윤동주 시인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음악과 함께 한 세월은 올해로 41년이지만 재일동포로서 이영보(李榮寶)라는 이름 (전에는 기무라 시게보 ‘木村榮寶’)으로 활동한 것은 16년째입니다.” 윤동주를 노래하는 재일동포 가수 이영보 씨를 만난 것은 그제(13일, 월) 교토 도시샤대학 윤동주 시비 앞에서 였다. 마침 이 날은 <일본ㆍ한국ㆍ재일코리언 시인 공동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모임>이 오후 3시부터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이영보 씨는 윤동주의 서시(序詩)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기타 반주를 넣어 불러 큰 호평을 받았다. 재일동포 2세인 이영보 씨는 부모님이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강제 연행된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부모님은 일본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심지어는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풍토를 우려하여 일본말 우선으
[우리문화신문=교토 도시샤대학 이윤옥 기자]어제 13일(월) 오후 3시, 스물일곱의 나이로 순국의 길을 걸은 조선 청년 윤동주를 기리는 한국과 일본시인들의 아주 뜻깊은 추모회가 그가 다니던 교토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윤동주시비’ 앞에서 있었다. 교정에는 아직 찬 겨울바람이 볼을 스치고 있었지만 붉은 매화, 흰 매화꽃이 활짝 피어 봄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가운데 <일본ㆍ한국ㆍ재일코리언 시인 공동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모임>이 열린 것이다. ‘오오, 푸름이 윤 씨 동주여! 그대가 그렇게 끔찍하게 목숨을 앗기지 않았더라면 다섯 해 뒤, 열해 뒤에는 더 많은 좋고 훌륭한 글 노래들을 지어 냈을 것이어늘...’ - 김리박 ‘바람과 별과 시와 믿나라 -무르익은 시인 윤 씨 동주를 돋구어 본다(風と星と詩と祖国, 青年詩人尹東柱を思い遺って )- 재일본한국문학회 회장인 김리박 시인의 푸름이(청년) 윤동주를 위한 자작시의 낭송을 시작으로 한국과 일본의 시인들이 잇달아 윤동주를 그리는 시 낭송이 이어졌다. 올해 다섯 번째인 이날 행사를 주최한 사람들은 모두 시인들로 자신의 자작시 또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일본어와 한국어로 낭송하여 도시샤대학 교정을 수놓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불교 유적이 많은 스리랑카에는 유적 못지않게 눈에 띄는 것이 길가에 돌아다니는‘개’들이다. 길거리나 유적지 곳곳에 누워 있는 상팔자인 ‘개팔자’를 연상 시키는 개들은 임자가 없는 듯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다. 우리네처럼 묶어 두지 않아서 그런지 사납게 짖거나 달려들지 않는 반면 주인이 없는 것인지 한결같이 비쩍 마른데다가 자세히 보니 병들어 비실거리는 개들이 많았다. 이렇게 개들을 방치해도 좋은가 싶을 정도로 일부 개는 털이 벗겨지고 상처가 깊은 모습이 보기에도 안쓰럽다. 더군다나 도로를 수시로 넘나들 뿐 아니라 유적지 주변에도 병든 모습으로 누워있는 것이 너무 딱한 생각이 들었다. 숫제 이런 모습은 유기견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성 싶다. 그런 가운데 어제 2월 10일자 서울시 보도자료를 보니 “서울시는 올해 6억8천만 원을 투입하여 길고양이 중성화사업을 ▲시민참여형 사업으로 1천 마리 ▲자치구 사업을 통해 8천마리 등 총 9천여마리를 중성화할 계획이다.”라는 기사와 함께 TNR사업( Trap-Neuter-Return(포획-중성화수술-방사))을 통해 길고양이의 개체 수 조절과 길고양이로 인한 시민 불편을 줄이고자 실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