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경기도 화성시, 발안 3.1독립만세항쟁의 선구자인 탄운 이정근 의사 순국 100주기 추모제가 어제(30일) 향남읍에 있는 탄운 이정근 의사 창의탑에서 열렸다. 일기예보에는 오전부터 비가 내린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10시 30분부터 열린 추모제 시각에 맞춰 거짓말처럼 비가 개어 무사히 추모제를 마칠 수 있었다. 사단법인 탄운 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겸)가 주관한 어제 추모제에는 광복회 경기도지회 안소헌 지회장을 비롯한 지역유지, 탄운장학금 수여자와 학부모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탄운 선생 순국 100주기의 의미를 되새겼다.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의사(義士)는 1919년 3월 31일, 화성 발안 장날 만세시위에서 제자들과 지역민들을 포함한 1천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에 앞장서다 일경의 총검에 복부를 난자당하는 만행으로 그 자리에서 순국의 길을 걸었다. 탄운 이정근 의사는 복부에서 흐르는 피를 손에 움켜쥐어 일경의 얼굴에 뿌리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조국의 독립’을 외치다 장렬히 순국하신 분이다. 탄운 선생은 33세 때, 대한제국 궁내부 주사직에 임명되었으나 치욕적인 을사늑약을 당해 관직을 버리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보통 전시 막판에는 사람들이 잘 안 오는데요. 이번 전시 같은 경우에는 전시 마감 하루 전인데도 이백 여 명씩 찾아와서 관람하는 것을 보고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부산, 서울, 원주 등은 물론이고 일본의 경우는 홋카이도, 도쿄 등지에서도 일부러 사진전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일본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어제는 나고야에서 재일동포 서너 명이 찾아와서 사진 설명을 요청하는 것을 보고 전과 다르게 사람들이 ‘역사적 사진’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는 사진작가 류은규 씨의 말이다.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에서 <잊혀진 흔적>전을 열고 있는류은규 사진작가를 어제(30일) 오후 만났다. <잊혀진 흔적>은 일제강점기 항일투쟁과 민족문화를 지키기 위해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과 그들의 후손인 조선족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회다. ‘3.1절 100주년 기념 전시’의 한 고리로 준비된 이번 전시는 지난 2월 28일 개막하여 오늘(31일)로 아쉽게 막을 내린다. 개막전에 초대를 받고도 올해 유달리 3.1절 관련 여러 행사 들이 많아 전국 취재를 뛰어다니느라 좀처럼 전시관으로 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충청남도의 만세시위는 예산에서 3월 3일, 부여에서 7일, 논산에서 10일 등 3월 초순에 시위가 시작되었다. 중순까지는 산발적인 시위가 진행되다가, 3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 공주·연기·대전·논산·홍성·청양·서산·예산·아산·천안 등지에서 치열한 시위운동이 전개되었고, 천안군 병천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일제의 발포로 인해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특히 유성에서는 3월 16일에 이어 4월 1일에는 70명이 헌병분견대를 습격하였다. 3월 29일 가수원, 31일 유성에서 각각 400∼200명의 시위가 있었다. 대전지방보훈청은 유성장터만세운동 재현행사를 어제 29일 유성장터 일원에서 재현했다. 이번 행사는 유성문화원의 주최로 대전지방보훈청과 유성구청이 후원하여 추진되었으며 이남일 대전지방보훈청장, 정용래 유성구청장, 하경옥 유성구 의회의장을 비롯하여 보훈단체장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하여 그날의 독립만세 정신을 되새겼다. 이날 행사는 유성구 장대동 일원에서 거리행진을 시작으로 식전공연, 의식행사, 주제공연 순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유성장터는 전국 최초로 을미의병이 일어난 곳이며, 1919년 3월 16일과 3월 31일에 걸쳐
[우리문화신문= 이윤옥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우리 시대의 위대한 금서(禁書)이며 근대문학의 거탑 <임꺽정>의 작가이자 독립운동의 선두에 서고 남북통일을 갈구한 민족사의 큰 어른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 선생은 제가 닮고 싶은 선각자입니다. “내 아들아, 너희는 어떻게 하나 조선 사람으로서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잃어진 나라를 기어이 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국치를 당한 1910년 8월 29일에 자결한 아버지 홍범식 선생의 고결한 정신을 이어받은 그 절개는 암울한 시대의 횃불이었습니다. 삼년상을 마치고 중국으로 건너간 선생은 단재 신채호, 조소앙, 창강 김택영, 예관 신규식 등과 조선독립을 위해 정진하셨습니다. 그 당시 창강 선생께서 집필하신 <홍범식전>에는 “외모는 비록 온순하나 내심은 실로 강개막측하였으니 이는 아마 노상에서 굶어 죽을지언정 차마 원수놈의 나라에서 밥을 먹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대전시와 대전지방보훈청은 내달 2일 낮 2시 으능정이 스카이로드 → 대전역 → 만세로 광장으로 이어지는 1.5㎞ 구간에서 3․1만세운동을 재현하는 ‘독립의 횃불, 대전 릴레이’행사를 연다고 27일 밝혔다. ※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 행사’는 3․1만세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기리기 위해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행사로, 3월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출정식을 갖고 전국 17개 시․도의 23개 만세운동지역을 돌아 4월 11일 서울 임시정부수립기념식장으로 입장한다. 이번 행사는 동구의 ‘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와 연계해 열리며, 대전지방보훈청, 대전시, 동구, 중구가 역할을 분담해 100년 전 3․1만세운동정신을 공감할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로 진행된다. 횃불 봉송주자는 정완진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대표시민, 국가보훈처장, 대전시장, 기관․단체장 등 100명이 참여하며, 2개 그룹으로 나뉘어 횃불을 봉송하게 된다(봉송대형 행렬 : 봉송주자 100명, 참여자 500명 등 모두 600여명). 봉송행사는 으능정이 스카이로드에서 풍물단 공연, 횃불 인수 및 점화식, 축하공연이 진행되며, 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가 한국어판 《백범일지》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9년 일이다.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적지답사단 단원이 되면서 부터이니 어느새 올해로 10년째다. 그 이전에도 《백범일지》를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조직적으로, 구체적으로, 낱낱이 《백범일지》를 읽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다. 그렇게 시작한 《백범일지》공부는 2년 뒤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난의 27년 노정답사로 이어졌고 답사단은 《김구 따라 잡기》(2012. 옹기장이출판)라는 책으로 ‘백범일지 공부’를 마무리했던 적이 있다. 그것으로 끝난줄 알았던 《백범일지》와의 인연은 또 다른 곳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이어지고 있다.얼마전 일본어판 《백범일지(白凡逸志)》(류의석 번역), 2019.3.8. 도서출판 하우)를 받아 든 것이 그것이다. 《백범일지》를 일본어로?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4년 전 《백범일지》의 일본어판 원고를 받아들었을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일본어로 《백범일지》를 번역한 사람은 류의석(柳義錫:1933~2014) 선생이다. 나는 류의석 선생을 본 적이 없지만 대학 후배인 그의 딸, 류리수 박사(한국외대 강사)를 통해 우연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조선총독부는 1911년부터 유물유적 조사를 시작하여 1915년까지 한반도 전체에 대한 1차 조사를 했다. 이 시기는 고적이나 유물에 대한 특별한 현지 보존 또는 관리 규칙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적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중요 보물들은 발견자가 사적으로 슬쩍 챙겨도 아무도 지적할 사람이 없었다. 누천년 동안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각종 문화재급 보물들은 일제침략기에 무법천지로 일본인들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 보물급 유물들을 마구 가져간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다. 오구라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사업에 관련이 큰 인물이다. 그는 골동상, 경매, 도굴 등 닥치는 대로 조선의 문화재를 게걸스럽게 수집했다. 오구라는 일본에서 도쿄제국대학 법학과를 나온 이래 한국으로 건너와 경부철도주식회사에 취직했다. 철도회사 취직을 계기로 그는 현지시찰과 사업구상을 하면서 자본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가 큰돈을 번 것은 전기사업권을 거머쥐면서 부터다. 생각지도 못한 사업이 성공을 거둬 주체할 수 없는 돈이 모이자 그는 한국의 고미술품에 눈을 돌린다. 1920년 무렵부터 그는 닥치는 대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만세함성은 우렁찼다. 손에 손에 든 태극기는 3월 하늘을 빛냈다. 역시 광주였다. 빛고을 광주에서는 어제(3월25일), 100년 전 3.1만세운동의 함성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광주지역 여성독립운동가의 산실인 수피아여중고(당시 수피아여학교)에서 오후 3시부터 진행된 행사는 ‘3.1만세운동 재현 릴레이 독립의 횃불’이라는 주제로 수피아학생들과 광주시민이 함께했다. 이날 ‘3.1만세운동 재현 광주 릴레이 독립의 횃불’ 행사에서는 생존 애국지사인 노동훈 선생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는 뜻깊은 시간도 가졌다. 수피아여중고에서 행사를 마친 뒤 횃불행진은 양림동을 거쳐 광주 3.10 만세운동 집결지인 부동교를 거쳐 5.18 민주광장까지 1시간여의 행진이 이어졌다. 수피아여고 출신 독립운동가인 박애순, 진신애 윤형숙 지사와 광주 출신의 이광춘 지사를 위한 헌시(獻詩)를 쓴 필자도 이날 행사에 초대 받아 케이티엑스로 달려가 행사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다. 사실 필자로서는 이러한 만세운동 재현행사 참여는 처음이었지만 100년 전 광주지역 만세운동의 산실인 수피아여고 출신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글을 쓴 사람으로 감회가 깊었다. 손에 태극기를 들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연말 일이 있어 교토에 갔을 때 우에노 미야코 시인으로부터 책한 권을 받았다. 《한우를 사랑해요》라는 한글 제목의 책이었다. ‘한우를 사랑한다고?, 뭐하려고?, 먹으려고?’라는 궁금증에 돌아오자마자 책장을 넘겼다. 지은이는 농업 평론가이자 축산 학자인 마쓰마루 시마조(1907 ~ 1973) 씨로 도쿄대학 졸업 후 조선총독부 축산과장을 역임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귀가 솔깃했다. 경력으로로 보아 한국의 한우를 잘 아는 인물이다 싶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자니 짐작대로 마쓰마루 씨는 ‘한우의 매력에 빠진 사람’ 이었다. “‘우리 고장에는 시커멓고 키 작은 소가 많아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지방에서는 ‘이전에는 시커먼 소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 누렁소만 길러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의 소는 꺼먼 소로 와규(和牛)라고 하지만 한국소는 누렁소로 한우라고 한다. 지금 일본에 있는 누렁소는 한국에서 건너온 소로 한우는 우수한 소질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소인데 일본인들이 잘 알지 못해 주어진 보물을 몰라보고 무심하게 지내왔다. 목축학자로서 풍부한 소질을 가진 한우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일본의 소년소녀들 그리고 모든 일본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기존에는 명망가들 위주로 휴먼북(사람책)을 모신 적이 있었는데 제가 1년 동안 마을에 나가 주민들을 직접 만나 보니 휴먼라이브러리 내용은 아주 좋은데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휴먼북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휴먼북의 문턱을 낮춰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신규 휴먼북들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그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했습니다. ”이는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임미경 관장의 말이다. 어제(18일) 아침 10시, 서울 노원구청 1층 로비에서는 아주 특별한 전시회 개막식이 있었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관장 임미경) 개관 7주년 기념으로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지난 2년간 열람을 했거나 신규등록된 휴먼북 47명을 소개하는 자리로 <공감은 별책부록>이라는 주제로 전시장이 꾸며졌다. 휴먼북이 뭐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휴먼북이란 ‘사람책’ 이다. 흔히 도서관에 가면 ‘종이책’을 빌려 보지만 노원휴먼라이브러리에서는 ‘사람책’을 신청하여 그 책(?)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는 ‘사람책 도서관’으로 2012년 3월 21일 전국 최초로 개관했다. 휴먼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