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곡선으로 둘러쳐진 돌담들과 아담한 집들이 마치 동화속 소인국 같다. ▲ 푸른 공원과 비닐 하우스가 쳐진 밭과 전원의 주택들 ▲ 드문드문 농촌집들과 밭이 보인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이상향 같은 남국의 땅 제주의 모습이다. 하늘에서 본 제주의 전원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늘 푸른 나무들과 곡선으로 드리워진 돌담장들 그리고 밭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먹거리가 될푸성귀들이 자라고 있다. 이제는 한국인 보다도 더 많은 중국인들이 찾는 섬이 되었지만, 한국의 아름다운 낙원으로 오래오래 잘 보존되길 빌어본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문화유산사진작가,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
▲양양 휴휴암의관음보살과 용왕 그리고 동자 ▲ 휴휴암의 용왕단에서. 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 용왕단을 향하여 마음을 모으고 ▲ 무사와 행운을 빌며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새해가 시작되었다. 그 새해는 사실 사람이 정하기 나름이지만, 그 정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올해 을미년에 들어서 4번째 새해맞이이다. 새해의 기준은 태양과 달의 변화를 보고 사람의 삶의 변화에 따라 정한 것인데, 먼저 태양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겨울철 태양이 가장 낮아지는 날인 동지가 그 첫번째 새해였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작은 설이라고 알기도 하지만. 다음으로 새해의 첫날은양력 1월 1일이 있는데, 이날은 동지로 부터 9~10일 뒤의 날이다. 그런데 이날은 태양의 고도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로마시절 1년을 10달로 쓰다가 12달로 변하면서 어떤 황제때 이날을새해의 첫날로 정하기로 하여 새해의 시작이 되었다. 세번째로 새해의 첫날은 입춘일이다. 입춘일은 24절기중 봄이 시작된다는 날인데, 이날은 태양이 동지로부터 올라오기 시작하여 45일 쯤 지난 날이고, 이제 지구는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날로 이 또한 태양과 관계가 있는 날이다. 이날은 양력으로 언제나2
섭지코지 전경 ▲ 멀리 자연과 함께 보이는 할머니 움막 ▲ 할머니가 자리잡은 섭지코지 모퉁이 ▲ 아름다운 할머니 [한국문화신문 = 최우성 기자] 한국의 보물섬인 제주에는 본토와 다른 이국적인 풍광과 기후로 많은 육지인들이 언제나 찾고 싶은 낙원 같은 곳 보물섬이다. 하지만 예전에 제주는 말을 키우고 살기는 적당하지만 사람은 살기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이 컸고, 실제로 삶이 그러했다. 그런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왔고, 그 사람들이 가꾼 문화는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되어서 이제는 서구문명에 지배당한육지에서는 다 사라진 수많은 전설들을 간직하고 있어 한국의 신화와 전설의 보고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제주에 살던 사람들은 강인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전한다. 한라산의 산신은 설문대할망이고, 그 할머니가 낳은 자식들이 제주를 지배하였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그런 전설을 간직한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여인들의 강인한 삶이 제주를 지탱해온 원동력이었다. 지금도 세계에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해녀라는 직업이 있는 곳이 제주만의 특징이니...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 지금도나이 많으신 할머니가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인 섭지코지의
▲ 여명이 트기시작하고 ▲ 떠오르기 직전 ▲ 막 떠오른 태양 ▲ 일출봉과각도가 멀어서.. ▲ 억새밭 위에서 ▲ 해녀의 집앞 바다에서 ▲ 해녀의 집 앞에서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제주의 첫 해돋이 지점으로 손꼽히는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해돋이 모습을 직어 보았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문화유산사진작가,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
▲ 홍살문 밖에서 본 홍릉 ▲ 아래에서 본 정자각과 홍릉 ▲ 오른쪽에만 석물들이 있고 왼쪽은 안보인다. ▲ 아래에서 보면 왼쪽이 비었다. ▲ 정성왕후 홍능 정면 ▲ 능의 곡장 위에서 본 홍릉(오른쪽이 휭하다) ▲ 오른쪽이 비어있는 홍릉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양의 서쪽에 위치한 조선왕릉 중에 5기의 왕과 왕비의 능을 일러 서오릉이라 부른다. 그 능의 주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갖가지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어 조선왕가의 역사를 엿볼수 있는 좋은 공부자료이기도 하다. 그런데 왕릉하면 큰 봉분에 멋지고 큰 석물이 있고, 일반묘와는 달리 능의 옆과 뒤로 담장을 치고 능의 앞에는 문인석 무인석 그리고 옆으로는 석양 석호가 호위하며, 가운데 앞으로는 장명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능의 아래에는 정자각(丁자모양의 집)이 있고, 정자각의 앞으로는 넙적하고납작한돌있어 신과 임금이 걸어간다는 신도와 왕도가 있어,언듯 보면 대부분비슷 비슷해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대체적인 모습만 보았을 때 보이지 않는 다양한 모습들이 보이고, 어느 하나 똑 같이 생긴 능은 하나도 없다. 이곳 서오릉에 모셔진 조선의 왕과 왕비의 능들도 다양해서 하나도
삼별초의 이동로. 해상권을 발판으로 재기를 꿈꾸었던 이들의 해로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관공서가 있던 자리에 전시관이 있고,그 입구에 세워진 삼문 항몽 유적 건물지. 그 안에는 발굴된 유물이 전시된 유물관이 있다. 최근에 세워진 고려 삼별초군의항몽 순의비 관아로 쓰이던 건물지의 발굴된 모습(초석들) 패전 후 무너진 토성들을 발굴조사 자료에 따라 현재복원하는 모습 흙을 다짐하면서 토성을 쌓고 있다. 토성을 쌓는 모습 층지어 다짐하는 모습 건물지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그릇들과 나무로 만든 말먹이통(구시) 길이가 3~4m에 이른다 고려청자 파편들. 제주까지 가지고 와서 쓰던 그릇들. 몽골군인들이 제주도 백성을 괴롭히는 모습(벽화) 토성을 쌓기 위해 동원된 백성들의 노역모습 삼별초의항몽 의지를 그린그림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지금부터 700여년전 몽골은 초원에 흩어져 살던 몽골계 유목부족을 통합하여 나라를 건국하였다. 초원에서 시작하여 말과 양을 치며 살던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데 양을 모는데 필요한 도구였던 말을 전쟁의 첨단 전쟁 무기로 만들어 최고의 말타는 기술에기마병 전술을 활용하여 세계 최강의 군대로 조직
▲ 김영갑갤러리 대문 ▲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반겨주는 토우 아가씨 ▲ 갤러리로 들어서는 사람들 ▲ 외로운 김영갑을 연상하는 하루방 ▲ 앞마당을 장식하고 있는 토우들 ▲ 열심히 사진을 찍는 생전모습 김영갑 ▲ 자신의 사진을 고르는 생전 김영갑 ▲ 뒷뜰 후원 산책길 ▲ 살아서 거닐던 뒷뜰 언덕길 ▲ 뒷 뜰 돌위에 자라는 식물 ▲ 주인 잃은 야외 쉼터 김영갑이 벽에 등을 기댄채 있는 듯한 모습 다정한 친구 토우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제주의 자연을 사랑하던 한 남자 김영갑! 제주는 화산섬으로 돌많고 바람많고 여자가 많다. 척박하고 물이 빠져버려, 비가 많이 오지만, 늘 물이 부족하여사람 살만한 땅이 못된다하여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살 곳이 못되는 버려진 땅이엇다. 제주는 비가 많이 와도 바위틈으로 다 새고보니 물이 고이질 않아 벼농사도 지을 수 없어 먹고 살 곡식도 늘 부족했다.... ▲ 무거운 사진도구를 짊어지고 오름을 오르는 김영갑 김영갑은 본래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그런 김영갑은 역마살이 많았던지 넓고 풍요로운 충청도 고향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 저리 카메라를 둘러메고 떠돌며 다니다가 돌많고 바
▲ 바람부는 억새밭 용눈이 언덕 ▲ 용눈이 언덕 아래의 밭과 무덤 밭에는 이제 푸른 새싹들이 움을 틔우고 있다. ▲ 용눈이 언덕에서 본 밭들. 오름에는 억새풀이 아직 자라지 않지만, 밭에는 푸른 풀이 벌써 돋아나고 있다 ▲ 용눈이언덕의 주변 밭과 무덤 ▲ 용눈이오름으로 오르는 오솔길 ▲ 용눈이 언덕의 묘지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화산의 폭발로 지하의 마그마가 분출되면서 굳어버린 화산석들이 가득쌓여서 이루어진 작은 동산 오름! 제주는 온통 지하의 불구덩이 속에서 타다남은 검은 돌들이 숭숭 구멍이 난채로 굳어서 산을 이룬 오름들이 수백개가 있다. 이 오름들은 수 천년 동안 펑퍼짐한 돌산으로 언뜻 보기는 푸른 풀밭으로 밭으로 개간할 수도 있어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작은 호미질 조차 하기 어려운 돌산일 뿐이다. 그런 척박한 땅에 바람에 날려온 끈질긴 억새들이 뿌리를 내리고 귀한 생명의 씨앗을 퍼트리기 시작하였고, 그 푸른 억새밭의 풀을 먹기 위하여 소와 말들의 방목지가 되어, 사철 소먹이 말먹이의 낙원으로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화산이 분출하다 갑자기 멈추어 버리자 중심 분화구는 부풀었다가 폭싹 주져 앉아 움푹들어간 것이 마치 거대한 용이 지하에서 올라오다가
▲ 의상대에서 소나무를 배경으로 본 홍련암 ▲ 의상대에서 소나무 가지사이로 본 홍련암 각자 작은 기왓장을 보시하고 품었던 소원을 적어두었다. ▲ 홍련암 내부에서 기도하는 스님 ▲ 홍련암 관세음보살과 협시들이 3존으로 모셔진 모습 ▲ 홍련암 관세음보살 ▲ 바닷가에 언덕에 있는 홍련암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직접 만났다는 곳에지은 암자가 낙산사 동쪽 바닷가에 위치하는 홍련암이다. 그래서 홍련암 안으로 들어서면 바닥에 깔려있는 마루 가운데 오른쪽에 작은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통해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바위틈으로 끊임없이 출렁이며 드나드는 파도를 볼 수 있다. 그곳이 바로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신라이래 지금까지 많고 많은 스님들과 중생들이 의상대사가 만났던 그관세음보살을 만나고, 그 관세음보살에 의지하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들을 이룩하고자 하루도 빠짐없이 밤과 낮도 구분없이 끊임없이 기도가 계속되는 것이다. 바닷가에 자리하여 위태롭게도 보이지만, 소망을 품은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더욱 마음이 모아지고, 소망이 더욱 간절해지고, 기도를 한 뒤에는 간절한 소망을 이룩하고
야간 조명을 통해솟을대문 쪽 에서 본 원통보전과 7층석탑 빈일루를 지나서 원통보전으로 오르는 응향각 계단앞에서 원통보전 앞에 있는 7층석탑. 자세히 보면 한국전쟁 시 총탄자국이 남아 있다. ▲ 닥종이를 주 재료로 조성한 관세음보살로 그 위에 칠을 한 뒤 금박을 입힌 건칠관세음보살. ▲ 원통보전 관세음보살 측면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낙산사의 많은 관세음보살 조상 중에도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불교에서 아미타불의 좌측 협시불이 보통 사찰의 배치형식이나,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화신으로선하고 악한 모든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참회를 받아주는 보살이기에 그 누구나 부담없이 와서 매달리는보살로 자리 매김되었다. 불교에서는깨달음을 성취한 이를 부처라 부르고 그 깨달음의 성취를 미루고 중생을 구제하는 일을 자처한 이를 보살이라고 부르지만그 중에서도 관세음보살은 가장 많은 중생들이 믿고 찾는 보살이기에 가장 친근한 보살이다. 그런데 그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의 협시불이 아닌 관세음보살만의 집(전각)에 모셔지게 되면 그 전각의 이름은 관음전 또는 원통전 더 높이면 원통보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과 그를 따